중국, 군부 지지 없는 강택민 체제 없다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1997.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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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유사시 전면에 나설 가능성…강주석, 인맥 구축 안간힘
중국은 49년 사회주의 체제를 실현한 이래 줄곧 1인 지배 체제에 익숙한 나라다. 따라서 등소평(鄧小平)이 92년 구축한 현재의 집단지도체제는 생소하기 짝이 없고 전통적인 공산주의 통치 수법과도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강택민(江澤民)을 중심으로 한 7인 집단지도체제가 수년 동안 기능할 수 있었던 데는 최고 실력자 등소평이 막후에서 버팀목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등소평이 없는 상황에서도 강택민 체제는 건재할 수 있을까. 대다수 전문가는 그 해답을 강주석이 군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에서 찾는 것 같다. 과거 정치·사회 혼란기마다 해결사 노릇을 해낸 주체가 군부였기 때문이다.

국방 문제 전문가로 70년대 <뉴욕 타임스> 기자와 <워싱턴 포스트>의 도쿄 지국장을 지낸 리처드 할로란씨는 “중국 군부는 예나 지금이나 주요 문제를 결정하는 데 최종적인 중재자 노릇을 해왔다”라고 진단하고, 강택민의 앞날 역시 군부와의 역학 관계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사실 강주석은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갖추었던 모택동·등소평과 달리 군 경력이 없다. 강주석은 혁명 세대도 아니고 직접 전투에 참가한 경험도 없다. 43년 상해교통대학 학생 시절 지하 활동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군복을 입고 직접 혁명 운동에 가담한 적은 없다. 이 점이 그의 결정적 약점이다.

강택민, 인민해방군 보듬기에 진력

군에 확고한 발판을 갖지 못한 그가 군을 다독거리기 위해 얼마나 진력했는가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있다. 89년 10월 등소평으로부터 군사위 주석 직을 넘겨받은 지 정확히 1주일 뒤 강택민은 분리 독립 움직임으로 시끌시끌한 신강자치구의 최전방 초소를 방문했다. 초소에 도착한 그는 병사들이 담요 한장에 의지한 채 겨울 밤을 난나는 말을 듣고,‘병사들이 춥지 않겠나’라고 걱정스레 물었다. 막사 안을 둘러본 그는 배석한 지휘관들에게 병사들의 후생 복지에 각별히 신경쓰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또 뙤약볕이 내리 쬐는 한여름, 강주석은 해군 병사 천명이 근무하는 군함에 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근무하던 이들은 강택민 군사위 주석이 나타났다는 얘기를 듣자 모두 차렷 자세로 경의를 표했다. 이를 본 그는 그 넓은 함상을 잰 걸음으로 휙 둘러본 뒤 바로 군함에서 내렸다. 정상적인 걸음으로 순시하다가는 일사병에 쓰러지는 병사가 나올 수도 있음을 염려했기 때문이라 한다. 또 95년 중·러 국경 지대에 있는 한 언덕배기 초소를 방문할 때는 노구를 이끌고 77계단을 올라간 일도 있다. 비가 억수같이 내려 장화는 물론 옷까지 흠뻑 젖는 것도 무릅쓰고.

이처럼 그는 졸병에서 상급 지휘자에게 이르기까지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군과 거리를 좁히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는 틈만 있으면 일선 부대를 방문하고, 장성으로 진급하는 장교에게 직접 계급장을 달아주는가 하면, 자신의 정적들이 임명한 군 지휘관들은 가차없이 퇴역시켰다. 물론 이러한 일은 그의 후견자이자 최고 실력자였던 등소평이 살아 있을 때 벌어진 것이다. 특히 92년 14차 당대회 때 등소평이 직접 나서 강택민의 최대 견제 세력이던 양상곤(楊尙昆) 군사위 부주석과 양백빙(楊白氷) 군사위 비서장을 제거하고 대신 유화청(劉華淸) 장군과 장진(張震) 장군을 임명해 강주석의 버팀목 역할을 하게 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89년 10월 등소평이 강택민에게 군사위 주석 직을 물려준 데는 이유가 있다. 그 해 6월4일, 북경 심장부인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체제 인사와 학생들의 시위로 중국 지도부는 49년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등소평은 군에 유혈 진압을 명령했고, 결국 유혈 진압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군사위 주석 직을 내놓고 평당원으로 물러났다.

천안문 사태는 사회주의 체제 최후의 보루로서 군부의 역할을 재확인시켜 주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군부의 정치 개입을 활짝 열게 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중국 정부는 천안문 사태 이후 사회 혼란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해마다 국방비를 10% 이상씩 늘렸다. 또 최고 권력 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포함한 중앙 정치 무대에 군 지도자들을 대거 발탁했다. 예를 들어 87년 13차 당대회 때는 당중앙위원회 인사 가운데 군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18.3%였으나 92년 14차 당대회 때는 23.2%로 늘었다.

특히 등소평의 건강이 악화한 94년을 고비로 국방비는 전년 대비 평균 15%씩 증가했다. 이같은 국방비 대폭 증액은 사회적 혼란이나 군장비 현대화 계획말고도 군부의 사기 진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군인들의 급여나 각종 수당을 대폭 인상해 이들의 사기를 올려줌으로써 당에 대한 군부의 충성을 더욱 확고히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강택민 주석은 군사위 주석 직을 물려받은 89년 말 이래 꾸준히 군부를 다독거리는 한편 요직에 자기 사람을 심는 데 주력해 왔다. 현재 군부 내에 대표적인 강택민파로 분류되는 사람은 앞서 말한 대로 군사위 부주석이자 정치국 상무위원인 유화청 장군(81)과 군사위 부주석인 장진 장군(83)이다.

문제는 유장군이나 장장군 모두 군사위 부주석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고령이어서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강주석 처지에서 볼 때 두 사람은 그다지 믿을 만한 인물이 못된다.군·강택민, 대만·홍콩 문제로 충돌할 수도

그 때문에 강주석은 올 가을 열릴 15차 당대회를 계기로 이들을 교체하고 대신 장만년(張萬年) 총참모장과 지호전(遲浩田) 국방부장을 발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만년 총참모장이나 지호전 국방부장은 68세 동갑으로 군부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이 두 인물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면 강주석의 군부 통제력은 확실해질 것 같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강택민은 89년 군사위 주석직 취임 이후 군부와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군부가 주저없이 그의 방패막이로 변신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회의적 시각이 많다. 랜드연구소 마이클 스웨인 아·태연구소장이 최근 <뉴욕 타임스>와 가진 회견에서‘강주석은 혁명 전투에 참가했던 등소평처럼 군부와 광범위한 친분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현재 중국 군부는 등소평의 뒤를 이은 강택민에게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했다. 문제는 앞으로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 군부가 과연 그의 편에 서서 확고한 지지를 계속 보낼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강주석에 대한 군부의 충성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정치적 뇌관은 대만의 독립 움직임과 홍콩의 민주화 문제이다.

군부는, 백년 이상 영국 식민지로 있다가 7월1일 돌려받는 홍콩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 홍콩은 중국에 귀속된 뒤에도 50년 동안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홍콩 주민들이 중국 본토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소요를 일으킬 경우다. 강주석이 이 문제에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일 경우 군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다. 천안문 사태를 놓고 당 지도부가 우왕좌왕할 때 결국 군부가 나서서 해결한 전례가 있다.

대만 문제 역시 골칫거리다. 지난해 3월 대만 총통 직선제 투표를 앞두고 중국 군부가 대대적인 무력 시위를 벌인 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대만이 독립을 꾀할 경우 언제든 무력으로 접수하겠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당시 대만 문제에 유화적 입장을 보였던 강주석에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이었다.

따라서 대만과 홍콩 문제에 관한 한 유화적 태도를 견지해온 강주석이 군부의 강경 입장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관심사이다. 또한 강주석은 유화적인 대미 관계를 주장하지만 군부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 문제 역시 마찰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군 현대화 계획과 관련해 군부의 끊임없는 국방비 증액 요구를 강주석이 무작정 찬성해 줄지도 알 수 없다. 개혁·개방을 적극 지지하는 그는, 아직 취약한 경제 기반을 좀더 확충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의 여력이 국방 부문 이외에도 확산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군부 내에 광범위한 인맥 형성이나 친분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강주석이 이런 국내외적 도전 요인들을 놓고 군부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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