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신흥 종교 ‘사이언톨로지’ 논란
  • 베를린·金鎭雄 통신원 ()
  • 승인 199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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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미국산 신흥 종교 ‘사이언톨로지’ 강력 제재…미국·유엔·EU “박해” 반발
지난 1월9일 파리에서 발행되는 일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는 미국의 쟁쟁한 문화·예술계 인사 34명이 헬무트 콜 독일 총리의 종교 정책을 비난하는 전면 광고가 실렸다. 그들 가운데는 영화배우 더스틴 호프만·골디 혼,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콘스탄틴 가브라스, CNN 시사 대담 프로 진행자 래리 킹, 작가 고르 비달·마리오 푸조·티나 시내트라처럼 유명한 인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미국에서 생겨난 신흥 종교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와 그 신도들이 독일에서 탄압받고 있다며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콜 총리에게 촉구했다.

‘신이 없는 종교’ 사이언톨로지

특히 이들이 공개 서한을 통해‘30년대에 유태교도가 독일에서 탄압받았다면 오늘날에는 사이언톨로지 신도가 탄압받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공개 제기되자 독일 정부는 물론 독일의 야당·언론까지 일제히 반발하며, 이는 나치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콜 총리는 공개 서한을 보고 독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례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사이언톨로지는 미국 공상과학소설 작가인 론 허바드가 54년 캘리포니아에 세운 신비적 색채가 짙은 종교로서, 모든 사람이 정신적·심리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운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면‘청정’상태에 이르고, 다음으로는 육체로부터도 자유로운 완벽한 정신적인 자유 상태, 즉‘테탄(Thetan)’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E-Meter를 이용한 심리 측정부터 시작해 수십 단계의 수양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이언톨로지가 신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이 수양 과정에 참여하려면 상당한 액수의 수련회비를 내야 하는데, 이 점이 독일에서 영리 단체로 간주되어 제재를 받는 이유이다. 또 체계적이고 집단적인 수양 방법과 엄격한 조직 관리로 신자들을 세뇌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현대 심리학적 기법을 기반으로 하여 완전한 인간 해방을 부르짖는 사이언톨로지는 ‘과학 종교’라는 독자성을 표방하고 있다. 여타 종교와 달리 ‘신이 없는 종교’라는 점이 특이하다. 사이언톨로지를 종교로 인정하는지 여부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93년에 종교 단체로 공식 인정받았지만, 독일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도 논란을 벌이고 있다.

이 미국의 신흥 종교가 독일에 상륙한 73년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독일에 안착한 사이언톨로지는 73년 뮌헨에 처음 교회를 세운 뒤 급속히 세를 확장해 현재는 베를린 등 10개 주요 도시에서 3만여 신자를 확보했다. 이 종교 단체에 대해 독일 정부가 간섭하기 시작한 것은 90년 이후부터이다. 93년 함부르크 법원은 그동안 사이언톨로지에 적용해온 공익 단체 자격을 박탈하고, 영리 단체로 등록하라고 판결했다. 신자들에게 사이언톨로지 관련 서적 판매와 수련 과정 참가비 등을 받아 매년 수백만 마르크씩 수입을 올리는 사이언톨로지를 공익 단체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이언톨로지에 대한 반감 갈수록 확산

이 판결에 따라 사이언톨로지가 종교 단체로서 누려온 면세 혜택을 취소당하자, 그 여파는 이 종교가 뿌리 내린 독일내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나아가 연방헌법수호위원회는 93년부터 사이언톨로지를 아예 요주의 대상에 포함했다. 국가 안녕 및 질서를 위협하는 극단적인 정치 단체나 범죄 단체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이 기관의 업무임을 감안할 때, ‘요주의 단체’로 분류했다는 것은 사이언톨로지를 사실상의 범죄 단체로 규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이언톨로지 신자들에 대한 개별적인 박해도 계속되었다. 독일의 주요 정당들은 92년부터 이 종교 단체 가입자의 입당을 금지했는가 하면, 바이에른 주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공직 임명에서 사이언톨로지 신도를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사이언톨로지에 대한 독일 국민의 반감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신도들의 정치적 야욕을 경계하고 있고, 경제인들은 종교를 빙자해 이들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종교인들은 이 단체의 사이비성을, 사회 단체는 특히 청소년들의 인간성을 파괴하고 세뇌하는 집단으로 사이언톨로지에 대한 경각심을 부각해 왔다. 이와 관련해 연방 가정·청소년부는 <사이언톨로지의 조직·위험성·목적·책략>이라는 소책자까지 발행해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베를린 사이언톨로지 교회 라이문트 스피라 공보담당관(32)은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사이언톨로지에 대한 독일 당국의 조처는 과거 나치가 유태인 탄압을 시작했던 초기 단계와 유사하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93년 사이언톨로지측이 만든 <증오와 선동>이라는 홍보용 팜플렛을 증거 자료로 제시했다. 여기에는 나치의 대표적 선동 수단인 <데어 스튀르머> 신문이 반유태인 선동을 위해 실었던 시사 만평과, 그동안 일부 언론이 이와 흡사한 표현으로 사이언톨로지를 비판한 내용을 나란히 비교해 놓았다.

독일내 반사이언톨로지 분위기와 달리 종교로서의 합법성을 인정한 미국내 반응은 고무적이다. 스티븐 화인스타인 교수(위스콘신 대학·역사학)는 지난해 8월 <독일의 반유태인, 반사이언톨로지 선전 수단으로서의 예술>이라는 책을 출간해, 독일에서 벌어지는 반사이언톨로지 캠페인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 국무부·유엔인권위원회·유럽연합(EU) 등도 보고서를 통해 독일의 반사이언톨로지 정책을 경고한 바 있다.

사이언톨로지를 둘러싼 갈등은, 무엇보다도 미국과 독일간 현격한 문화 차이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질적인 종교 집단이 융합되어 있고 국가와 교회의 분리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미국과, 종교세를 거두어 교회에 배분하는 등 국가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일의 교회 문화는 서로 이질적인 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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