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조건 / 인도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4.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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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람 잡는 ‘다우리’
지난 2월 초, 인도 하이드라바드에 사는 한 가정 주부(25세)가 자기 집에 불을 질러 자살했다. 결혼한 지 1년 반 된 그녀는 임신 7개월째였다. 경찰이 밝힌 자살 원인은 시댁 식구와 남편의 학대. 시댁 식구와 남편은 두 달 전부터 다우리(결혼지참금)로 5만 루피(약 1백35만원)를 더 가져오라고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고 한다.

인도의 뿌리 깊은 악습 ‘다우리’는 아직도 수많은 인도 여성을 죽음의 길로 몰아세우고 있다. 인도 여성단체의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매년 여성 2만5천명 이상이 다우리 때문에 사망한다. 결혼지참금을 마련해야 하는 아버지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목을 맨 시골 처녀, 다우리를 제대로 가져가지 못해 구박받다가 자살하거나 심지어 시댁 식구에게 살해당하는 새댁들이 적지 않다.

지난 2월 초 인도 북부 우타르 프라데쉬에 있는 알리가흐 무슬림 대학의 비스할 마고 교수 팀이 발표한 자료를 보자. 이 연구팀은 지난 5년 동안 이 대학 병원을 찾아온 환자 1천2백 명을 조사한 결과, 3백84건(32%)이 임신한 18~25세 여성이 화재로 희생된 사건이었다고 밝혔다. 다우리 때문에 괴롭히는 시댁 식구들을 피해 스스로 불을 질렀거나 살해된 경우였다.

다우리 때문에 세상 구경을 못하는 여자 아이들도 허다하다. 시골에서는 딸이 태어나면 산모가 아기를 베개로 눌러 죽이거나 목을 조르고, 도시에서는 태아 감별을 통해 사산시킨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뭄바이 거리에는 ‘미래에 다우리로 지출될 5만 루피를 아끼려면 5백 루피짜리 성별 테스트를 받으라’는 광고 문고가 버젓이 내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인도 정부는 이 악습을 뿌리 뽑기 위해 1961년에 다우리 반대 법안을 제정하고, 1983년부터는 다우리에 따른 폭력을 법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1994년부터는 초음파 성감별을 금지했지만 관습을 상대로 한 법의 승리는 아직 멀어 보인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우리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처벌받은 남편이나 시댁은 드물다.

요즘 인도 중산층의 경우, 결혼 지참금으로 20만∼100만 루피까지 건네진다고 한다. 여기에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살림살이가 얹히는 것은 물론이다. 예비 신부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물론 인도 전지역에서 다우리가 문제 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들이 연애 결혼을 선호하면서 다우리 풍습도 조금씩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카슈미르·우타르 프라데쉬·비하르 등 북부 인도에서는 관습의 벽을 뛰어넘기가 아직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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