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부한, 북일 관계 정상화 시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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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7.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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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았던 잠수함 침투 사건은 미국의 작전에 따라 북한의 전략적인 소득으로 일단락되었다. 북한의 직접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선행되지 않는 한 대북 지원과 경협은 물론 경수로 사업과 4자 회담 개최 제의까지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던 우리 정부는 3일 만에 마닐라에서 미국에 무장 해제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북한은 피해 당사자인 한국과는 무관하게 미국과 직거래해 유감을 표시하는 사과 제스처로 사태를 종결시켰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전되지 못한 미·북한간 현안들을 일괄 타결하는 소득을 얻어냈다. 미국 곡물 메이저 카길사의 구상 무역 방식에 의한 50만t 식량 지원, 경제 및 무역 제재 완화 조처, 미·북한 준고위급 회담 개최, 경수로 사업 정상 진행 등의 핵심 사항들이 합의되었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의 분노와 소외감을 달래는 과정에서 두 가지를 약속했다. 하나는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4자 회담을 위한 3국 설명회를 개최토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과 합의하는 과정은 한국의 처지나 요구가 사실상 배려되지 않은 채 진행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과 방식이 그러했고, 3자 설명회의 초점은 한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북한 준고위급 회담에 맞추어져 있다. 아울러 4자 회담 개최 문제에도 원래 목적인 남북한 직접 대화가 명시되지 않았다.

지금 미·북한 관계는 잠수함 사건 이전보다 훨씬 진전된 단계이다. 최근의 흐름을 살펴보면 다양한 형태의 협상 라인이 가동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과 빌 리처드슨 하원의원 및 로드 차관보,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과 찰스 카트만 국무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 허 종 순회 대사와 스티븐 보스워즈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 이형철 미주국장과 마크 민튼 국무부 한국과장 라인과 유엔대표부 한성열 공사, 새로 취임한 윤택영 공사 및 황봉수 참사관 등 실무 연락 대책팀들이 주요 현안들을 협의해 왔다. 한·미 관계보다 오히려 미·북한 관계가 활발하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97년 들어북한 관계가 정상화하는 틀이 형성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필자가 1월16일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에서 만난 고위 당국자는 현재의 미·북한 관계가 만족스럽게 진행되고 있으며, 미·북한 준고위급 회담에서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가 매듭지어질 것이고, 미국이 요구하는 미사일 회담 및 미군 유해 송환 문제도 양국이 우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합의될 것임을 암시했다.

대북 관계에서 ‘한·미 공조’ 환상 버려야

연초에 미국을 방문한 허 종 순회 대사는 방미 목적이 경수로 사업 협의라고 밝혔지만, 실제 활동은 준고위급 회담을 위한 협의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준고위급 회담에서는 여러 가지 정치 현안들이 다루어질 전망이다. 이것은 미·북한 관계 진전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배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한국 정부도 더 이상 대북 정책에서 한·미 공조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미·북한 간의 직거래를 차단하려는 전혀 현실성 없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4자 회담을 위한 3자 설명회 개최는 처음부터 미·북한 준고위급 회담과 병행하는 조건으로 협상되어 왔다. 한국 정부는 3자 설명회와 준고위급 회담을 별개 사안으로 하여 설명회 결과에 따라 미·북한 회담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잠수함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서 우리는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의 북한 정책이 한반도에 대해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는 중국·일본·러시아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둘째, 한국의 체면을 최소한으로 살려줌으로써 미국의 대북 관계 개선 일정을 추진하는 데 장애가 제거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동북아에서 주도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지역 안보의 핵심 사안인 한반도 문제의 국제적 이니셔티브를 강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이를 위해 미·북한 연락사무소 개설을 가능한 한 앞당겨 북한을 워싱턴 영향권에 편입함으로써 97년은 미·북한 관계 정상화의 해가 될 전망이다.

미국은 미·북한 관계 진전 및 곡물 수출 결정과 관련해 전개되고 있는 중국의 대북 식량 지원 강화(매년 50만t씩 지원) 움직임과 일본의 대북 경협 및 식량 지원 협상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국제 단체의 북한 지원도 적극 도울 방침이다.

미국은 또한 북한의 점진적인 개방과 개혁이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신임 국무장관 내정자나 동아태 차관보 등 핵심 외교팀의 설명을 통해서 이러한 미국의 시각과 정책을 읽을 수 있다.

97년 한반도 상황은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미·북한 관계 정상화에 따라 북·일 관계가 진전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북·일 간에도 비밀 커넥션을 포함해 여러 형태의 협상 채널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영향력 확대 및 패권 정책 그리고 러시아까지 가세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외교 초점은 탈냉전 체제에서의 영향력 확대라고 하는 자국 이해 관계 확보에 맞추어져 있다. 제2기를 출범시키는 클린턴 행정부는 자신감을 갖고 미국의 지원에 따라 북한이 국제 사회에 연착륙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적어도 북한의 연착륙에는 동북아 4강이 이해 관계를 같이하고 있으며, 이것이 국제 사회의 북한 정책 기조이다.

한국의 현 정부가 펼친 북한 정책은 정권의 정치적 수단과 가치에 발목이 잡혀, 다시 말해서 국내의 정치적 요구에 따라 북한 봉쇄와 대결 위주의 정책을 유지하면서 한편으로는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일관성 없는 정책이었다. 탈냉전 시대에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냉전적 사고로 국제 사회로부터 지지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일방적 북한 봉쇄 노력을 지속하는 것은 현실 외교가 될 수 없고 효과도 없다. 북한 정권이 한국 배제 전략을 버리지 않고 사회주의 통일 노선을 고수하는 한 미·북한, 북·일 관계가 개선된다 해도 현재와 같은 대립 상황에서 남북 관계가 실질적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 정권은 현 한국 정부와 통일 문제 논의뿐 아니라, 정치 협상 및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분명히하고 있다.

당국간 대화보다 민간 교류 증진을

따라서 미국이나 중국의 영향력이나 압력을 통한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대북 접근은 북한의 체제나 정권을 위협하지 않고 신뢰를 구축한 바탕 위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 관계를 경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 협력 관계로 발전시키는 노력이 선결 과제이다.

문민 정부 출범 후 대북 관계에서 한국의 정책이나 카드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채 미국에 종속된 틀을 벗지 못하고 미국의 구도대로 끌려다니는 듯이 비쳐 북한으로 하여금 ‘통미 봉남(通美封南)’의 틀을 강화시켜 주는 구실만 제공해 왔음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솔직한 표현을 쓴다면, 남북 관계의 새로운 진전은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주변국 모두가 같다. 이러한 흐름을 기초로 하여 북한 정책의 방향을 세워야 할 것이다. 한·미·일 공조 체제 타령보다는 국내외적으로 상실된 북한 정책에서 한 가지라도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가능성 없는 당국간 대화 노력보다는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고 국제 사회와 연대해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난해결을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최근 변화하는 북한 외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체 사상 논리에 입각한 북한 외교의 폐쇄성이 통일 문제에 대한 주변국들의 이해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4강 외교에 아주 적극적이다. 물론 한국을 의식한 정치적 목적이 내포되어 있지만, 어쨌든 국제 사회 진출에 적극성을 띠고 있다.
빌 리처드슨 의원이 유엔 대사에 지명된 것을 기뻐하는 북한 외교팀을 보며, 우리 외교의 방황이 금년에는 멈추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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