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민단·조총련 “우리도 통 크게 만나자”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2000.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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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민단, 조총련에 조건 없는 대화 제의…지방자치참정권 문제가 걸림돌
70만 재일 동포 사회가 민족 분단에 따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갈라선 지 45년이 흘렀다. 조국 정세의 영향을 받아 반 세기 동안 사사건건 대립과 반목을 거듭해온 두 단체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민단 기관지 <민단신문> 편집국은 6월14일 심야에 전해진 남북 공동선언 관련 기사를 싣기 위해 발행일을 이틀 늦추고 철야 작업에 들어갔다. <민단신문>은 1면에 ‘남북 통일의 큰 길 열리다’라는 제목을 달고 모든 지면을 남북 정상회담 관련 기사로 도배했다.

<민단신문>에는 남북 공동선언을 열렬히 환영하는 재일 동포들의 들뜬 목소리도 실렸다. 민단 오사카본부 김창식 단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통일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모든 동포가 가졌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오사카 시립대학 박 일 교수는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민단계 재일 동포 자본이 북한에 적극 진출할 기회가 왔으면 한다”라는 바람을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화해 분위기 고조

조총련과 화해하기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재일본한국인문화예술협회 하정웅 회장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날이 드디어 찾아 왔다. 통일 시대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도 민단과 조총련은 사상과 조직의 벽을 뛰어넘어 하나로 뭉쳐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후다마쓰 대학 유상희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 손을 굳게 잡고 악수했듯이 민단과 조총련도 즉각 수뇌회담을 열어 재일 동포 사회의 장래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남북 정상의 악수는 재일 동포 이산 가족에게도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조국귀환사업에 따라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건너간 재일 동포는 줄잡아 9만3천여 명을 헤아린다. 일본에 살고 있는 가족이 민단에 속해 있는 경우 북한으로 간 재일 동포는 40여 년째 가족과 왕래가 끊긴 상태이다. 또 남한 출신으로 조총련에 속해 있는 동포도 남쪽에 살고 있는 가족과 상면하는 것은 물론 성묘가 불가능하다.

북송선을 탄 형님이 청진에 살고 있다는 재일 동포 홍영기씨는 “가족 중 유일하게 나만 민단 간부를 지내고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 건너간 형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 가슴 아팠다. 북이든 남이든 자유롭게 왕래하는 시대가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친족이 모두 북한에 살고 있다는 이행춘씨는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이산 가족 재회가 실현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올해 일흔 살인 나도 북한에 갈 수만 있으면 꼭 가서 친척들을 만나 보고 싶다. 이산 가족 재회 사업이 계속되어 나한테도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겠다”라고 말했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조선신보>는 6월16일자 신문에 ‘힘을 합쳐 통일 실현을’이라는 제목을 달고 모든 지면을 남북 공동선언과 정상회담 관련 기사로 채우다시피 했다.

<조선신보>는 남북 정상회담 특집호에서 일본의 조총련계 동포가 민족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모습도 소개했다. <조선신보>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제일의 코리아타운인 오사카 이쿠노 곳곳에서 남북 정상회담 모습이 NHK 위성 방송을 통해 전해질 때마다 일제히 환성이 터졌다.

재일 동포 1세인 고치순 할머니(78)는 “오늘은 내가 살아온 날 중에 가장 기쁜 날이다”라고 말했으며, 한정윤 할머니(72)도 “가족들이 살아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렇게 기쁜 일이 찾아올 줄 몰랐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 조총련 도쿄도 아라가와 지부 1세 동포들은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면서 “통일의 그 날까지 살자”라며 박수를 쳤다. 조총련 가나가와 현 쓰루미 지부에서는 뉴스를 듣고 지부 사무실에 모여든 동포들이 ‘재일 조선인들의 미래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질 것’이라며 밤새 축배를 들었다.
조총련계 청년들은 지난 6월19일, 도쿄 제일의 번화가인 신주쿠에서 역사적인 남북 공동선언을 지지 환영하는 ‘재일 조선인 축제’를 열었다. <조선신보> 보도에 따르면, 이 축제에서는 조국 통일 실현을 기원하여 북한의 평양 소주와 남한의 진로 소주를 섞어 만든 ‘통일 소주’를 동포 청년들과 일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 축제의 사회를 맡은 박영이씨는 “새로운 세대들은 통일 문제에 관심이 적다는 말을 흔히 듣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민족을 기둥으로 동포 청년을 한데 묶어 가자”라고 호소했다. “체육·문화 행사 교류로 물꼬 트자”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민단계 동포이건 조총련계 동포이건 서로 만나면 이제는 반목과 질시에서 벗어나 한데 뭉쳐야 한다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나누고 있다. 민단 중앙본부는 이런 재일 동포들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 6월15일 조총련에 화합하자는 제의서를 발표했다.

민단 중앙본부 김재숙 단장은 “조국의 평화 통일에 기여하고 21세기 동포 사회의 통일 실현을 위해 조총련과 아무런 조건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교류해 갈 것을 제의한다”라고 밝혔다. 김재숙 단장은 또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조총련과 함께 남북단일선수단을 환영하고 응원한 역사적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대화를 위해 먼저 민단측 대표를 조총련 조직 중앙에 파견해 교류 내용·대화 방법과 절차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그밖에도 각 지방 본부와 산하단체 간에 자체적으로 벌이는 공동 행사를 적극 환영하며, 와병 중인 조총련 한덕수 의장을 문병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김재숙 단장은 또 재일 동포 이산 가족의 재회를 위해 1991년 민단이 제안한 남북상호방문계획을 다시 제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 움직임은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1972년 7·4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되었을 때, 1992년 남북이 기본합의서에 서명했을 때 두 단체는 화해를 모색하려고 접촉했다. 또 1991년 지바 현 마쿠하리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통일팀이 출전하자 민단과 조총련은 통일응원단을 결성해 선수단 뒷바라지를 함께한 적이 있다.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내년 5월 오사카에서 열린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또다시 통일팀이 결성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민단의 한 관계자는 조총련과 대화를 시작하더라도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우선 남북통일팀 응원 문제나 체육·문화 행사를 함께 치르는 방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서로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민단과 조총련은 최근 재일 동포들에 대한 지방자치참정권 부여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자유당·공명당은 올 1월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민단의 지방참정권운동과 한국 정부의 요구에 두 정당이 호응해 성안된 것이다.

그러나 조총련은 이 법안이 재일 동포 사회를 분열시키고 조총련을 약체화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하며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북한도 각종 매체를 동원해 이 법안이 재일 동포의 동화와 귀화를 촉진해 재일 동포 사회를 분열하고 대립시키려는 정치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한국 국적 동포들에게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면 조총련계 동포들이 국적을 북조선에서 한국으로 바꾸는 ‘국적 변경 러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조총련 조직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김재숙 민단 단장은 “지방참정권 문제는 미묘한 문제이므로, 상대방의 입장을 서로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이 문제에 관해 조총련과 대화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반 세기에 걸쳐 반목과 질시를 거듭해온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도 남북 관계처럼 결코 순탄한 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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