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국은 내 이웃 나라를 탐하지 말라”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6.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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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국의 동유럽 국가 나토 가입 추진에 강력 반발…제2의 냉전 시대 올 수도
99년 4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창설 50주년을 맞는다. 2차대전 이후 옛 소련의 위협을 막기 위해 창설된 이 기구를 위해 현재 미국은 한 가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 바르샤바조약기구(WTO)에 소속되었던 동유럽 국가들을 나토에 편입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난 10월22일 대통령 선거 유세 막바지에 클린턴 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그같은 사실을 알렸다. 구체적으로 나라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체코·폴란드·헝가리가 가장 먼저 가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러시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러시아 하원은 나토 확대가 80년대 초의 냉전 상황을 다시 부를 수 있는 위험한 조처라며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12월2∼3일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의에서도 러시아는 반대 입장을 되풀이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을 대신해 회의에 참석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는, 나토가 확대되면 유럽이 또다시 분리될 것이라며 제2의 냉전 사태를 예고했다.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은 나토가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기구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한테도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러시아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이틀 간의 회의에서 양측 대표는 평행선만 달리다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러시아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나토 확대에 반대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지난해 5월 러시아의 정계·관계·언론계·학계 지도급 인사 40여 명이 특별 팀을 구성해 작성한 <러시아와 나토>라는 문서가 잘 정리해 주고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러시아가 나토 확대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립감 때문이다.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편입되면, 서방의 영향력은 러시아 코밑에까지 미친다. 방대한 영토를 보전하기 위해 완충 지대를 마련하는 정책을 추구해 온 러시아로서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의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은 나토에 편입되기를 갈망한다. 폴란드·헝가리·체코는 물론이고 루마니아·불가리아·슬로바키아도 하루바삐 나토에 편입되기를 원한다. 이들에게 나토 가입은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서방 세계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고, 서방의 지원까지 기대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들에게 최선의 방책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는 것이지만,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 차선책으로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강경 민족주의 세력 자극할 가능성

이들 국가가 대거 나토에 가입할 경우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신규 회원국을 받아들이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서유럽 국가들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나토에 회원국 여섯 나라를 새로 받아들이는 데는 대략 1백25억달러(약10조원)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재정 적자에 시달리면서 그같은 부담을 자초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서방 언론들이 성급한 나토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나토 확대가 러시아의 강경 민족주의 세력을 부추길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러시아 국민의 민족 감정을 이용해 반서방 노선을 취할 것이다. 사실 러시아 국민은 나토 확대에 거의 관심이 없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5% 정도가 나토 확대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나토 확대 조처가 실제로 이루어질 경우, 국민은 강경 민족주의 세력한테 기울 것이다. 소련이 해체된 후 심각한 경제난과 국가 위신의 실추를 경험한 러시아 국민한테 좌절감을 안겨주어 심각한 위기 상황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서방 국가들이 나토 확대를 추구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러시아 전문가들은 나토 존속이 서유럽 국가들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꼽는다. 미국은 나토 체제를 통해 유럽에 미군을 주둔시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독일 역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나토 확대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통일 이후 독일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아줄 안전판으로 미국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므로 나토가 계속 존속하기를 바란다.

서유럽 국가들의 그같은 목적은 러시아의 국익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나토가 동유럽 국가들을 받아들일 경우 러시아는 안보상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국민은 더욱 깊은 좌절감을 느낄 것이며, 내정은 불안에 빠질 것이다. 유럽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나토 확대가 오히려 유럽의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 지도자들은 미국이 급박하게 나토를 확대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전유럽을 포괄하는 집단 안보 체제를 구축하자고 제안한다. 지난 12월2일 리스본 정상회담에서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제기한 것도 나토 대신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다른 국가들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했다. 우선 미국은 러시아가 참여해 자신들의 주도권이 침해되는 것을 꺼린다. 동유럽 국가들은 또다시 러시아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고, 조직이 지나치게 커질 경우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았다.

서방 언론도 ‘나토 확대’ 반대

현재 양측의 주장은 팽팽하게 맞서 있다. 타협하기 힘든 주장들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전문가들은 나토를 무리하게 확대할 경우 생길 부작용을 걱정한다. 계속 나토 확대 정책을 추진하면 러시아내 강경파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 분명하고, 이들은 반 서방 노선을 추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러시아가 추진해온 시장 개혁은 위기에 처할 것이고, 서방측과 군축 협상도 불가능하게 된다. 새로운 군비 경쟁이 일어나고, 러시아 경제는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유럽에서 밀려난 러시아는 냉전 시절 우호 관계를 맺었던 중동·아시아·남미 국가들과 관계를 복원할 것이다.

아울러 러시아는 옛 소련의 일원이었던 공화국연합(CIS)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할 것이다. 벌써부터 이들 국가와 새로운 형태의 안보 동맹을 결성하는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이 국가들은 현재 한결같이 심각한 정치·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비용의 대부분은 러시아가 부담해야 한다. 가뜩이나 힘든 러시아로서는 엄청난 짐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는 이렇게 해도 세력 균형이 서방 쪽으로 기운다고 판단되면, 핵무기 사용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최근 러시아의 로디오노프 국방장관이 “나토 확대를 강행하면, 핵미사일을 배치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힌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나온 최악의 처방이다.

러시아는 과연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게 나토 확대가 불가피한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촉구한다. 사실 냉전이 종식된 상황에서 나토가 존재할 이유가 없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존속하기로 결정했다면 최소한 그 목표는 실질적인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마치 나토 확대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러시아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성급하게 강행하는 것은 오히려 유럽의 안정만을 해칠 뿐이라고 강조한다.

외교안보연구원 고재남 교수는 나토 확대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선 러시아는 자기네가 제외되거나 자기들한테 특별한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 나토 확대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둘째, 유럽안보협력기구를 21세기 범유럽 안보 질서의 중심 기구로 발전시키고, 셋째, 자국의 영향권 아래 있는 공화국연합 국가들을 ‘평화를 위한 동반자 계획(PEP)’에 적극 참가시켜 유럽 안보·경제 질서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나토가 원래 PEP 프로그램을 추진한 것은 △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된 후 동유럽에 발생한 안보 공백을 메우고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꺼리는 러시아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이들 국가와 토론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현재 PEP에는 16개 나토 회원국을 제외한 27개 유럽 국가가 가입해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5월 여기에 정식 가입했다.

나토 회원국들은 PEP 가입을 나토 가입의 전 단계로 받아들이는 반면, 러시아는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막고, 이를 토대로 현재의 나토 체제를 범유럽 안보 기구로 변화·발전시키려고 한다.

현재 미국의 성급한 나토 확대 방침에 대해서는 서방 언론과 학계도 비판론을 제기하고 있다. 급하게 서둘렀다가 오히려 유럽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토 50주년은 겨우 2년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과연 클린턴은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과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나토 확대에 매달릴 것인가. 나토 50주년이 가까워질수록 클린턴의 나토 정책에 대한 비판은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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