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안에 든’ 일본의 탐관오리
  • 도쿄/채명석 (cms@sisapress.com)
  • 승인 199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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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공개 조례’덕에 지자체 부정 낱낱이 드러나… 시민단체, 자료 토대로 감시·추적
일본에서도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부정 비리 사건이 잇달아 터지고 있다. 서울특별시와 결연을 맺고 있는 도쿄도는 최근 95년 1년 간의 ‘관관(官官) 접대’에 사용된 식량비(회식비)를 재점검한 결과, 총지출액 2억엔의 64%에 해당하는 1억3천억엔이 ‘부당 지출’이었음을 밝혀냈다.

일본 언론들은 지난 2월 도쿄 감사사무국이 94년 회식비를 가공으로 늘려서 만든 뒷돈 1백35만엔을 감사사무국에 은닉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도쿄도는 청내를 감독·감시해야 할 감사사무국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보도가 나가자 지난 4월 94년도분 회식비·출장비에 대한 자체 점검을 실시했다. 그 결과는 ‘이상 무’로 보고되었다. 그러자 아오시마 유키오(靑島幸男) 도쿄 지사는 자체 점검만으로는 도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번에는 외부 기관인 도쿄도 감사위원들에게 재점검을 의뢰했다.

그 결과 도쿄도 본청 30개 국에서 작년 1년간 7백58건에 달하는 회식비가 지출된 사실이 밝혀졌다. 감사위원들은 기안서·지출명령서·영수증 심사에 그치지 않고 음식점·호텔 등 회식 장소에 대한 추적 조사도 함께 실시했다.

앞서의 회식비 2억엔 중 64%가 부당 지출되었다는 것은 이 감사위원들이 밝혀낸 것이다. 도쿄도 직원들은 회식에 참여한 사람을 늘리거나, 회식 횟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회식비 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도는 회식비 부정 청구 사실이 밝혀진 이후 출장비·택시비·기타 청구비에 대해서도 자체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도쿄도가 지난해에 지불한 택시비는 약 17억엔에 이른다. 출장비는 연인원 1만4천명에게 6억2천만엔이 지불되었다. 만약 도쿄도가 회식비 조사와 같이 이들 비용에 대해서도 정밀 조사를 실시한다면 회식비 부정 청구 못지 않은 엄청난 비리가 드러날 것이다.

호화 접대·가짜 출장비 등 적발

홋카이도 도청에서는 지난해 출장비를 허위로 청구하여 19억엔을 부정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홋카이도 도청은 앞으로 10년간 간부급 직원 봉급에서 매달 일정한 금액을 공제해 이를 반환한다는 방침을 결정한 바 있다.

출장비 부정 청구가 문제가 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홋카이도 도청뿐만이 아니다. 얼마전 후쿠오카 현 국민보건보험과가 95년 출장비를 조작해 천만엔에 달하는 뒷돈을 조달한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로는 당일치기로 출장을 갔다왔으나 1박2일이나 2박3일이 걸린 것처럼 처리하여 직원 회식비 등을 염출한 것이다.

후쿠오카 현 시민단체들은 국민보건보험과뿐 아니라 후쿠오카 현청 전반에서 출장비 부정 청구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정보 공개 조례’란 주민의 청구에 의해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하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제도이다. 아직 정부한테는 그런 의무가 없지만, 47개 광역 중앙 자치단체와 2백98개 기초 자치단체가 정보 공개 조례를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비리가 속속 밝혀지고 있는 것도 이 정보 공개 조례 덕택이다.

관료가 관료를 호화판으로 접대한다는 ‘관관 접대’ 실태나 회식비·출장비 부정 청구 사실이 자꾸 밝혀지고 있는 것은, 시민단체들이 정보 공개 조례에 의거해 관련 자료를 입수하고 세밀하게 조사하여 부정 사실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민단체의 중심이 되는 기구가 2년 전에 발족한 ‘전국 시민 옴부스맨 연락회의’이다. 변호사와 시민운동가 들이 모여 조직한 이 단체는 지금까지 센다이 시의 회식비를 조사하여 ‘관관 접대’ 실태를 처음으로 폭로한 것을 비롯하여, 홋카이도 도청의 ‘가라(空) 출장비 청구’사건, 도쿄도 감사사무국의 ‘회식비 부정’등을 밝혀냈다.

서울시 버스 요금 인상을 둘러싸고 지난 9월 ‘교통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서울시가 버스업계의 적자액을 엉터리로 계산해 버스 요금을 부당하게 올렸다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부정을 감시하고 적발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민단체들의 꼼꼼한 감시 행위가 필요하다. 나아가 일본처럼 지방자치단체들이 모든 정보를 낱낱이 공개하고, 주민이 이를 추적할 수 있도록 ‘정보 공개 조례’ 제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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