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집권 2기는 ‘내유외강’
  • 워싱턴·金在日 특파원 ()
  • 승인 199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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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 맞아 內治는 ‘타협과 조정’…국제 문제에는 ‘강력 개입’
집권 2기에 들어갈 빌 클린턴 대통령. 그가 재선된 의미는 무엇이며,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으로서 그는 미국과 세계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 클린턴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민주당 출신으로는 처음 재선된 대통령이다. 민주·공화 양당을 합쳐 보더라도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래 지난 40년 동안 레이건을 빼고는 어느 대통령도 재선되지 못했거나 두번째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런 관점에서 클린턴이 대통령에 재선된 것은 미국 정치에 연속성의 의미를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미국 국민들은 클린턴이 안고 있는 인격과 윤리 문제보다도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무엇이냐를 중시했고, 계속성과 안정을 원했던 것이다.

클린턴·깅리치 “미국의 꿈 이루자” 합창

클린턴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의회가 상·하원 모두 다시 공화당의 수중에 들어감에 따라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을 원만히 이끌 수 없게 되었다. 여소야대는 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국민의 메시지를 확인시켰고, 클린턴 행정부로 하여금 공화당과 함께 일하라는 명령을 내린 셈이다. 그는 의회를 등지고는 ‘21세기로 가는 다리를 놓으려는’ 자신의 비전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치 관측통들은 미국 정치가 앞으로 4년간 매우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시 말해 클린턴은 야당이 점령한 의회를 상대로 타협과 조정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클린턴의 정치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클린턴은 당선이 확정된 직후 정치권을 향해 ‘정파를 떠나 미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보수 혁명을 주도하며 클린턴에 가장 강력하게 맞서온 공화당의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은 과거 자신의 입장과는 다른 말을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미국민을 위한 공동 작업을 하는 데 클린턴 대통령과 공통 분모를 찾기에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골수 보수파의 상징적 인물이 되다시피 한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극단주의를 싫어하는 미국민의 정서를 충분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2년 전 보수주의 돌풍을 일으키며 기세등등하게 하원을 접수한 그가 너무 과격한 정책을 펼치자 국민은 그에 대해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마침내 ‘가장 인기 없는 정치인’으로 낙인찍었다.

이렇게 볼 때 클린턴이 이끄는 민주당 행정부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양쪽의 필요에 따라 첨예한 정책 대결을 피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관측통들은 지난해 후반기와 올 연초에 있었던 정부기관 폐쇄 같은 극단적인 조처는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그렇다고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고분고분하게 나오리라고 본다면 오산이다. 정책 대결에서는 국민의 눈을 의식해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4년 후 대선을 겨냥해 행정부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면서 클린턴을 괴롭힐 것으로 예상된다. 클린턴 행정부의 도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해외 정치 헌금 수수 파문 외에 화이트워터 스캔들, 백악관 출장국 직원 무단 해고, 공화당계 공직자 신원조회 파일 유출 등 의회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거나 시작할 사안이 줄을 잇고 있다.
급진 정책 추진할 가능성 없어

그러면 클린턴 2기에 미국의 정책 기조는 바뀔 것인가. 대다수 전문가들은 국내 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시도했다가 실패로 끝난 건강관리법안을 다시 탁상에 올린다든지, 군사력 증강을 포함한 급진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사실 클린턴이 선거에서 이긴 가장 큰 요인은 지난 2년 동안 미국 정치와 사회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는 딕 모리스 같은 참모의 조언을 받아들여 민주당의 진보적인 입장을 포기하면서 자신을 중도주의자로 자리 매기려고 노력했다. 처음부터 클린턴은 민주당과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공화당의 쟁점을 중화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클린턴이 내건 가정의 가치·복지·법과 질서·범죄 척결 같은 쟁점들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의제였다. 그는 거기에 민주당이 강조하는 환경의 질과 총기 통제, 청소년 흡연 억제 등을 가미했다. 그는 양쪽에서 좋은 것만을 뽑아서 의제로 삼았다.

따라서 지난 대통령 선거를 통해 볼 때 후보의 도덕성과 인격 문제에 대한 신랄한 공격은 있었으나, 사회적인 쟁점에 관한 한 과거와는 달리 양당의 차이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현재 미국민을 괴롭히는 단일 문제가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고 범죄·마약·교육·경제·세금·고용 문제가 골고루 국민의 마음을 점하고 있다. 쟁점에 차이점이 있다면 즉각 추진이냐, 점진 시행이냐 하는 차이일 뿐이다. 그같은 맥락에서 클린턴이 양측을 포용한 중도에서 벗어나 전통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의 정책 노선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국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2002년까지 달성해야 할 연방 예산의 수지 균형, 중산층 가정에 대한 세금 혜택, 복지 개혁안의 성공적인 시행, 모든 어린이에 대한 건강 보험 등 수없이 많다. 그는 교육과 직업 훈련을 통해 중산층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못사는 사람들에게 의료 보험과 사회보장 제도를 통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에 대한 국민적 합의라고 믿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클린턴 역시 마지막 임기이기 때문에 역사에 어떤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국정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미국 어린이들이 8세까지 글을 읽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한 클린턴은 이 공약을 수행하는 것을 그의 ‘역사적 역할’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핵 확산 문제에는 강경 대응 예상

앞으로 수많은 외교 문제와 맞닥뜨려야 할 클린턴은 선거 때문에 유예해 놓은 몇 가지 외교 현안에 대해 곧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선 보스니아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나토 동맹군은 12월 하순까지 평화유지군이 철수한 뒤 어떤 성격의 군대가 주둔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밖에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법 시행 문제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영토 분쟁 해결,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 재선에 대한 입장 등이 클린턴이 당면한 외교 문제다.

지금의 국제 정치는 이념에 바탕을 둔 국가간 대결이 없어진 반면 국지적인 긴장과 분쟁이 있을 뿐인데, 이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없는 실정이다. 사실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게 된 데는 냉전 종식이라는 시대 상황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외교 정책의 초점은 정치·군사 문제에서 경제 문제로 옮겨졌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경제 문제는 상호 의존적인 성격을 가진다. 국제 관계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뚜렷한 모델이나 과학적인 방법이 아직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클린턴이 지금까지의 신중하고 소극적인 개입 정책에서 방향을 바꿔 외교 문제에 적극 임할 것으로 전망한다. 집권 2기라는 자신감과 함께 공화당의 강경한 목소리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그 방향으로 나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클린턴은 핵 확산 문제에 대해서는 경제력을 앞세워 강력하게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미국의 북한 정책이 최근의 무장 공비 침투 사건과 맞물려 강경 기조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의회는 이 사건을 강하게 추궁할 것이고, 이에 부응해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과거보다 강경하게 나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더 많은 전문가들은 클린턴 행정부가 3~4개월쯤 냉각기를 거친 후 북한에 대해 매우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았다.

클린턴의 외교 정책 역시 의회와의 관계에서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 틀림없다. 그의 외교 수행은 의회의 외교 예산 배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공화당이 주도하는 외국 원조 프로그램을 줄이고, 재외 공관을 문닫게 할 정도로 삭감된 외교 예산을 원상 복구하라고 의회에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있기 전 프린스턴 대학의 그린스타인 교수가 ‘선거가 끝난 다음은 정치 협상과 협력 증진의 기간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대로, 클린턴은 국내 정치는 물론 외교에서도 의회와 협상하고, 의회의 협조를 구해야 할 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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