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대생들 "몸 팔아 학비 마련"실태
  • 런던·韓准燁 편집위원 ()
  • 승인 1998.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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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섹스 서비스로 돈 버는 여대생 급증
5월 첫째 주말 오후 한가로운 봄날, 영국 동남부 항구 도시 브라이튼에 있는 서섹스 대학 교정. 캠퍼스 잔디밭에 삼삼오오 짝지어 둘러앉은 남녀 대학생들은 뱅크 홀리데이(은행의 휴무로 인한 공휴일)인 월요일까지 내리 이어지는 황금 연휴 사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놓고 이야기꽃이 한창이다.

그러나 이 대학 2학년생 제시카(가명·21·영문학 전공) 양은 은행 대출로 가까스로 메워 온 방값과 식비 등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일자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오후 강의가 끝나자마자 제시카는 교정을 급히 빠져나와 근처 신문 판매점에 들러 지역 신문들을 펼쳐 본다. 브라이튼 시 지역 신문인 <코메트> 7면에는 콜걸을 전화로 연결해 주는 중간 소개소·마사지 미용원·호스테스 바·스트립 클럽 등의 구인 광고가 즐비하다. 제시카가 붉은 사인펜으로 동그라미를 친 한 광고 문안이 클로즈업된다. ‘…시간당 100파운드 이상 보장. 에어 호스티스(스튜어디스)·간호사 환영. 특히 무경험 여자 대학생 특별 우대….’

“대도시 매춘 업소 종사자 40% 이상이 여대생”

이상은 지난 6월 첫주에 BBC가 방영한 주말 시사 고발 프로 <몸 파는 대학생들>의 들머리 장면이다. 이어서 런던 시내 한 마사지 미용원에 들어서는 제시카의 뒷모습을 카메라 렌즈가 뒤따른다. 얼굴을 판별할 수 없도록 한 특수 조명에 카메라를 조작해 어둠 속에 묻힌 제시카가 불 꺼진 마사지실에서 기자에게 털어놓는 증언이 담담히 이어진다. “나는 언제나 손님들에게 내가 학생임을 떳떳하게 밝힌다. 학생이라는 점이 고객들에게는 신선하고 마음도 편한 모양이다. 학생들에게 몸값이 아니라 장학금이나 자선 기부금을 지불했다고 자위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죄의식을 덜고자 하는 것이 고객의 심리가 아닐까?”

BBC의 민완 사건 여기자 수 로버트는 이 프로를 제작하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내고 취재원을 물색했다. 그 결과 제시카를 비롯한 여자 대학생 3명과, 놀랍게도 여성 고객으로부터 에스코트 겸 몸값으로 적잖은 생활비를 받고 있다는 남자 대학생 2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이 신분 노출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홍등가 진출 실상을 생생하게 털어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이들은 일반 사회가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대학생 매춘 추문을 정치 쟁점화해서, 노동당 정부의 잘못된 대학 복지 및 교육 정책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현재 시간당 1백50파운드 이상 벌고 있는 제시카의 과감한 고백은, 기성 세대의 성 모럴·윤리관·가치 판단이 이미 낡았으며, 학업을 계속하면서 생활을 꾸려 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겠다는 요즘 대학생들의 자기 중심적 견해를 대변한다. “학년 초 커피 숍에서 일했을 때는 1주일 내내 밤일을 해도 고작 백 파운드 벌이였다. 공부에 지장이 많았고 빚만 늘었다. 이 마사지 서비스가 현재로서는 가장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금전적 고통도 해결하는 방법이다.”BBC 프로가 나가자 영국 언론들은 그동안 자제해 온 대학생들의 매춘 및 섹스 산업 실태를 앞다투어 폭로하기에 바쁘다. 대부분의 정론지는 블레어 노동당 정부가 집권 1년 동안 추진해 온, 등록금을 비롯한 대학 재정과 교육 정책의 전면 수정 및 개혁이 대학생들을 경제 위기에 몰아넣어 매춘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대도시 대학생들의 홍등가 진출이 지난 1년 사이에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호스테스 바·스트립 클럽·마사지 미용실 등 매춘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 가운데 여자 대학생이 이미 40 % 선을 넘어섰다는 그동안의 소문이, 학생들과 섹스 산업 관계자들의 증언으로 이번에 확인되었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인 브라이튼 시 지역 신문 <브라이튼 리포트>의 보도는, 대학 당국과 학생회는 물론 정부측에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이 지역 서섹스 대학과 브라이튼 대학에서만도 여대생 3백∼4백 명이 매춘은 물론 성인 사회의 각종 섹스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 <브라이튼 리포트>의 내용이다.

이같은 언론의 충격적 폭로 보도에 대학 교수와 학생회는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았다. 미들섹스 대학의 로저 메추 사회학 교수는 오히려 ‘대학생들의 학교 밖 섹스 산업 참여 실태’에 관한 자신의 최근 연구 보고서에서, 영국 청소년들이 혼전 섹스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이에 대한 사회 전반의 지나친 관용이 상업주의적 대중 매체의 ‘섹스 상품화’ 전략과 맞물리면서 건전해야 할 대학 사회조차 이제는 섹스 산업의 손길을 허용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영국 사회의 혼전 섹스는 심지어 초등학교 학생들에게조차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해 말 현재 10대 미혼모가 20세 이전 출산 여성의 87%를 차지했다. 실제로 세계에서 10대 미혼모 비율이 가장 높은 사회가 영국이기도 하다.

런던에 있는 20여 대학을 대변하는 런던대학총연합학생회 신문 <런던 스튜던트>도 그동안 캠퍼스에 소문으로만 떠돌아다니던 대학생 매춘, 포르노 필름 출연 등의 진상이 언론의 추적 보도로 공식 확인된 것은 이제 더 이상 부인하지 못할 만큼 병든 대학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 보인 것이라고 보도했다. 동료 학생들이 몸을 파는 매춘 대학생은 바로 일그러진 자신들의 자화상이라고 자인하고 나선 것이다.“노동당 정부의 학생 복지 축소가 원인”

자책과 우려 속에서 학생회 관계자들은 정부의 학생 복지 및 대학 교육 정책을 겨냥해 일대 반격을 가하고 있다. 전국 대학총연합학생회 회장은 대학생 매춘 문제를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돌렸다. 즉 지금까지 국가가 부담해 온 대학 등록금 제도가 올 가을부터 폐지되고 기숙사 비용 등 생활 보조금 혜택이 대폭 삭감되는 대신, 추후 상환 부담이 큰 융자금 대출 제도가 시행되면서 학생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부 학생들의 홍등가 진출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런던의 전체 학생 3분의 1이 파트 타임 일자리를 가졌으나, 평균 천 파운드 이상 은행 빚을 지고 있는 대학생이 전체의 3분의 2에 이른다는 것이 런던대학총연합학생회측의 주장이다. 또 에든버러 대학 학생회는, 스코틀랜드 지역 대학생들의 은행 초과 대출이 평균 2천3백 파운드 기록하자 일부 극빈 학생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간파한 매춘 소개업소들이 학생들의 재정 상담역을 맡는 웃지 못할 희극도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상황은 98∼99학년이 시작되는 오는 9월이면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왜냐하면 학생 1인당 평균 천 파운드에 이르는 등록금이 새로이 부과되고, 국가 보조금이 대폭 삭감되어 생활비도 은행 대출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빈 계층의 대학 및 고등학교 진학률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대학생 매춘은 정치 문제로도 비화했다. 야당인 보수당은 노동당 정부의 대학 및 고등 교육 정책 개혁이 대학생 매춘 파문을 불러왔다면서, 학생 단체와 연대해, 대학 등록금 학생 개인 부담제를 도입하고 생활 보조금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관련 법안 통과를 저지하는 데 적극 나섰다. 노동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대학생과 학부모에게 등록금과 생활비를 직접 떠넘기기보다는, 고소득 계층에 대한 소득세율을 인상해 부족한 교육 재원을 충당하라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 구제 금융 한파와 환율 고통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유학생들을 위해, 새 학년이 시작되는 9월부터 4백35명을 선정해 특별 장학금 1백10만 파운드를 지급키로 했다. 한국 이외에 인도네시아·태국 등 경제난에 시달리는 다른 아시아 국가 유학생에게도 올해 6백만 파운드가 장학금으로 지급된다.

이같은 학자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이들 국가의 경제가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 경우, 영국의 홍등가에 아시아 유학생들이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한국과 일본인이 경영하는 런던 시내 곳곳의 가라오케 클럽에 한국·일본·태국 등 아시아 출신 여성들이 등장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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