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카터 통해 남북 정상회담 추진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7.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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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당총비서 취임식 이벤트로 ‘재초청’ 추진…김정일 “한국 새 정권과 대화하겠다”
북한은 김정일의 당총비서 취임식을 11월이나 12월에 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도쿄의 외교 소식통들은 ‘당총비서 취임식이 빠르면 11월 중, 늦어도 12월 말까지는 열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해 왔다. 서울의 대북 소식통들 역시 이 기간에 공식 취임 행사가 열릴 가능성에 대해 크게 주목하고 있다.

도쿄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우선 11월 중에 취임식을 개최한다는 목표를 정하고 행사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내부 사정이 여의치 않아 12월로 넘어가게 될 경우에는, 김정일의 생모로 젊은 시절 사망한 김정숙의 80회 생일인 12월24일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숙의 80회 생일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정보는 서울의 소식통들도 접하고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11월에 취임식을 할 경우에는 새로운 경축일을 하나 만드는 것이 되고, 김정숙의 생일을 활용하면 기존 명절을 활용하는 것이 된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김정숙 생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대규모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올해의 마지막 명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일, 11~12월에 당총비서 공식 취임

취임식 형식은 당중앙위 전체회의를 여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 정족수는 원래 2백50명 정도이다. 그러나 현재 1백35명 가량이 결원이다. 따라서 북한은 김정일의 당총비서 취임 행사를 계기로 당중앙위원을 새로 임명하고, 또 그 자리를 빌려 김정일이 총비서에 공식 취임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식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를 계기로 북한의 권력 승계 절차가 비로소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지난 10월8일 당중앙위와 중앙군사위원회에 의해 총비서에 추대되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이를 계기로 권력 승계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했으나, 이는 승계 절차의 본격적인 시작일 뿐 마무리 순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총비서 추대와 권력 승계를 동일시한 것은 ‘추대’와 ‘취임’의 용어 차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북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즉 추대란 어떤 사람을 유력한 총비서 후보로 추천한다는 의미이다. 김정일의 경우는 지방당 대표자 회의에서부터 상향식으로 추대 절차가 이루어졌고, 또 북한 권력의 최고 정점이라 할 당중앙위가 공식으로 추대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후보자 추천과 다른 의미가 있기는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후보자 추천에 불과하다. 즉 최종적으로는 김정일이 이를 공식 수락하고 대외적으로 이 사실을 선언하는 절차를 남겨두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한 소식통은, 북한은 절차를 중시하기 때문에 초법적 승계란 있을 수 없으므로 공식 취임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정일이 11월이나 12월에 공식 취임식을 갖게 될 것이라는 최근 정보는, 김정일의 권력 승계가 11월께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그동안의 예측이 크게 어긋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그동안 북한 정보에 정통한 국내외 소식통들은 북한 내부의 준비 상황을 근거로 내세워 권력 승계가 11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런 이유로 지난 10월8일의 당총비서 추대는 상당히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졌으며, 따라서 북한이 이처럼 서둘러 승계 절차를 공식화한 배경에 관심을 기울였었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다양한 분석을 토대로 살펴보면, 북한이 당총비서 추대와 공식 취임을 다른 시기에 나누어 진행하는 데에는 고도의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 김정일이 예상 외로 추대 절차를 일찍 공식화한 것은, 대외 관계에서의 필요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즉 추대 절차를 일찍 공식화함으로써 △대남 관계에서 북한의 운신 폭을 넓히고 △대미·대일 관계를 가속화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대남 관계에서는 한국 대선을 의식해 시기적으로 이를 선점하려 한 흔적이 있다. 또한 김정일이 정상 회담의 파트너로 떠올랐음을 보여줌으로써 이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떠보려 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대미·대일 관계에서는 그동안 `‘주인 없는 국가’와 외교 관계 정상화를 이루기는 어렵다는 미국이나 일본의 주장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김정일이 당총비서에 추대된 이후 미국이 토니 홀 의원 방문 및 농업조사단 파견 등으로 대북 관계 개선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고, 일본 역시 여3당 대표단 파견 등을 계기로 수교 회담 조속화를 위해 움직임을 활발히 하고 있는 데서도 나타난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김정일의 당총비서 취임식이라는 또 하나의 절차를 남겨둠으로써, 대외 관계에서 완급을 조절할 또 다른 카드를 확보해 두고 있었던 셈이다. 당총비서 추대 사실을 대외에 과시함으로써 주변국의 대북 접근을 유도하고, 여기서 이루어진 성과를 보아가며 취임식 시기를 조절하겠다는 포석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앞의 도쿄 소식통은 “김정일 총비서 취임식을 전후해 북한은 △카터 재방북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 △유전 개발 세 가지를 주요한 성과로 추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 카터 방북 내년 1월로 잠정 결정

먼저 유전 개발 문제는 지난 10월7일 도쿄 설명회를 계기로 이미 대외 공식화 작업에 착수했으며, 북한측은 하루빨리 해외 업체와 손잡고 개발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시사저널> 제420호 참조). 또한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은 11월8일로 예정된 일본인처 고향방문단 1진 일본 도착과 11월11일로 예정된 일본 여3당 대표단 북한 방문 등을 계기로 물밑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북한에 지급될 배상금액으로 30억∼80억 달러가 논의되고 있다는 얘기가 최근 흘러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물밑에서 상당한 수준의 논의가 진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당총비서 취임식의 최대 이벤트로 북한이 현재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바로 카터 재방북 문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현재 북한 및 일본 입장과 미국 입장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카터 재방북 문제는 지난 9월께부터 물밑에서 활발하게 거론된 바 있다. 또 한때 10월28일∼11월 초로 방북 일정이 잡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역시 카터 방북에 대해 대단히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측은 카터 재방북 시기를 한국에 새 정권이 결정된 뒤인 내년 1월로 잠정 결정했다. 미국측은 카터가 올해 안에 북한을 방문하게 될 경우, 엠바고 문제나 미사일 문제 같은 북·미간 현안 외에 북·일 수교 교섭 조기화 등 북·일간 현안 등 두 가지 문제밖에 거론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가장 중요한 사안인 남북간 현안을 다루기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카터 방북의 최대 의제로 남북 정상 회담 재추진을 내면적으로 꼽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카터 본인도 김정일의 방북 초청장을 받고 “남북 정상 회담 중재라면 모를까 다른 이유로는 갈 일이 없다”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터센터는 남북 정상 회담 재추진을 북한측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김정일로부터 ‘내년 한국의 새 정권과 정상 회담을 가지겠다’는 답변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국 처지에서 정상 회담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카터가 올해 안에 방북하는 것보다는 내년 1월에 방북해 이 문제를 매듭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한국의 새 정권과 이 문제를 두고 긴밀하게 협의할 것이다. 카터 방북은 미국이 한국의 새 정권에 주는 첫 선물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카터 방북 문제는 사실 미국과 중국의 대북 영향력 경쟁과도 미묘하게 얽혀 있다. 미국과 중국은 그동안 김정일이 공식 취임 이후 첫 외국 지도자로 누구를 만날 것인가를 두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즉 첫 대상자로 카터를 내세운 미국과 강택민 주석을 첫 정상 회담 상대로 해야된다는 중국의 입장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북한은 실로 교묘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카터를 먼저 만나지만 정상회담은 강택민 주석과 처음으로 한다는 방식이다.

북한의 이같은 선택을 주변국에 대한 전략이라고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즉 북한은 올해 안에 대일 관계를 마무리하고, 내년 초 카터 방북을 계기로 대미 관계까지 정리한 다음, 마지막으로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 역으로 미국·일본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선 관계 정상화, 후 견제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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