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 대란’ 일으키나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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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천수이볜 총통 ‘독립 행보’ 계속되면 강공 가능성
풍운아 천수이볜(陳水扁)이 다시 돌아왔다. 양안 관계가 순탄하기를 바라온 중국이나 주변국들에게 그의 부활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물론 야당의 재검표 주장이나 ‘총풍 사건’ 의혹 등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기는 하다.

천수이볜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5월20일 총통 취임식을 무난히 치르게 될 경우 세계는 그의 다음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될 것이다. 그동안 공언해온 대로 타이완 독립을 위한 행보를 본격화하느냐, 아니면 그동안의 주장을 접고 새로운 길을 걷느냐에 따라 동아시아 정세가 요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천수이볜의 선택은?:천수이볜이 일단 재집권에 성공한 만큼 극단적인 행동은 피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심지어 그가 이번 총통 선거에서 대륙으로부터의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안’을 제기한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즉 2000년 선거 때 독립을 앞세워 총통에 선출되었지만 막상 집권하고 보니 독립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지지자들에 대한 면피용 제스처가 필요해 국민투표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타이완 독립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인 태도 역시 천수이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특히 총통 선거 기간에 천수이볜이 국민투표안을 강행한 데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해 왔다. 미국은 천 총통의 재선에 대해서도 냉랭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천수이볜이 앞으로 독립을 위한 행보를 계속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국내 한 중국 전문가는 “결국 천수이볜이 독립보다는 대륙과의 사회경제적 교류 확대를 통한 연방제 통일 방안 등 절충안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천 총통 역시 지난 3월25일 “3월20일 선거는 나의 마지막 전투였다. 재선에 대한 압력을 받지 않게 된 만큼 대륙에 대해 더 유연해질 수 있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남창희 교수(인하대·국제정치)는 “양안 관계를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70%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타이완과 중국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돌출 변수 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번 총통 선거 자체의 불안정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득표율 차이가 0.2% 포인트밖에 안되는 데다 야당인 롄잔(連戰) 국민당 주석측이 천수이볜 집권의 정통성을 계속 물고늘어질 경우 천 총통이 방어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남교수는 “원래는 5월20일 총통 취임식 이후 당분간 대륙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으나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궁지에 몰린 천수이볜이 자신의 지지 기반인 타이완 출신 내성인을 결속하기 위해 또다시 독립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났듯이 현재 타이완은 타이완 출신인 내성인과 대륙 출신인 외성인으로 양분되어 있다. 외성인들은 대부분 국민당을 지지하며 경제 교류 등 대륙과의 우호적 관계를 선호한다.

반면 수적으로는 우세하지만 대부분이 서민층과 빈곤층을 구성하는 내성인들은 외성인들이 타이완을 홍콩식의 ‘일국양제론’(중국이 제시한 통일 방안으로 하나의 정부에 두 개의 사회 체제를 인정하는 것)을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 경우 내성인들은 신쟝 위구르 등 중국 내 다른 소수 민족과 같은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독립파인 천수이볜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주변 환경이 불리한데도 천수이볜이 독립 행보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 중에는 중국과 타이완의 일정 문제도 있다. 천수이볜이 타이완 헌법을 개정하고 국호를 변경하는 등 독립 시점으로 제시한 시기는 2006년. 그 2년 후인 2008년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치른다. 천수이볜이나 타이완 내 독립 추진파는 앞으로 2년만 버티면 타이완 독립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계산의 밑바탕에는 올림픽이라는 국제 행사를 2년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이 무력 침공을 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정치 일정이 있다. 오는 12월에 타이완 입법원 선거가 치러진다는 점이다.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에 해당하는 입법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천수이볜은 싫으나 좋으나 독립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수이볜의 개인적 의지와 상관없이 타이완 내성인과 외성인 간의 민족 갈등, 그리고 정치 일정이라는 변수 등이 상호 작용할 경우 독립 투쟁의 불길이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형국이다.

중국의 대응은?:중국에게 타이완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타이완 독립은 중국 분열의 도화선이라는 점에서 중국은 이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지난 1세기 간의 혁명을 거쳐 부국강병의 21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타이완 문제 해결은 중화 민족의 자존심 회복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동안 중국은 타이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부시 정권 등장 이후 미국에 대해 굴욕적일 정도로 저자세 외교를 편 것도 바로 타이완 문제에서 협조를 얻기 위해서였다.

국내 한 중국 전문가는 “9·11 테러 사건과 북한 핵 문제를 통해 미·중 협조 체제를 거치면서 중국은 비로소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라고 지적했다. 즉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한다고 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 릿교 대학 이종원 교수는 “중국이 서두를 이유는 없을 것이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시간은 중국 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내에도 돌발 변수가 엄존하고 있다. 바로 군부이다. 남창희 교수는 “지금 중국 군부는 일종의 흥분 상태이다. 지난해부터 천수이볜이 재선될 경우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군사 프로그램을 가동해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천수이볜의 석연치 않은 승리에 이어 타이완 내에서 대륙 출신 외성인에 대한 테러 사태가 발생할 경우 군부가 이를 명분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 군부가 타이완 문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인민해방군’이라는 명칭이 뜻하듯이 타이완으로부터 인민을 해방하는 것이야말로 중국 군부의 존립 근거인 것이다.
이런 표면적인 이유 외에 더 복잡한 내막이 있다. 중국 군부가 타이완 문제를 자신들의 위상 강화를 위해 활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 체제가 등장하면서 군부는 자기들의 장래에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다. 개혁 개방에 이어 민주화가 진행될 경우 그동안 누려온 특권적 지위를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중국 군부를 1980년 5·17 당시 한국 군부나 태평양전쟁 시기의 일본 군부에 견주는 시각도 있다. 중국 군부는 사회 격변기를 틈타 이미 정치 군부로 변모하여 자신의 권익을 위해 언제든 총을 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장쩌민과 후진타오라는 ‘2개의 태양’이 공존하는 현재의 어정쩡한 권력 구도가 군부로 하여금 운신할 폭을 키워 주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타이완의 독립 행보가 가속화하면 군부는 장쩌민을 앞세우고 후진타오를 몰아낼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후진타오 체제에 대한 군부의 불만과 공격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관측도 있다. 중국의 한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군부는 이번 타이완 총통 선거 기간에 어느 때보다도 행동을 자제해 왔다. 그 배경에는 주로 후진타오 쪽의 젊은 유학파 브레인들이 ‘2000년 선거 때 군부의 무력 시위가 타이완인들을 자극해 결국 천수이볜을 도운 꼴이 됐다’면서 이번에는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자 벌써부터 후진타오에 대한 군부의 불만이 내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후지타오 쪽에서 타이완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동안 타이완 문제 해법을 논의할 때, 군부는 해상 봉쇄를 통한 타이완 고립화와 무력 침공 등의 강경한 입장이었던 데 반해 후진타오는 미국을 통한 외교적 압력이라는 온건론을 펴왔다. 그러나 천수이볜의 독립 행보를 무력화하지 못하면 실각할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에 후진타오가 도박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 내에는 올해 안에 천수이볜의 독립 의지를 꺾어 놓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감돌고 있다고 한다. 연말 타이완 입법원 선거 이후에는 손을 쓸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베이징에는 ‘2004년 5월 천하 대란설’이 유포되어 있다고 한다.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은?:국내의 중국 전문가는 “앞으로 한반도 정세는 타이완 문제와 맞물려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지적했다. 중국·타이완 사이에 긴장감이 높아질 경우 당장 6자 회담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타이완 해협 상황이 심각한 지경으로 발전할 경우 미국이 되었건 중국이 되었건 한반도에 ‘제2 전선’을 구축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한반도에 분란을 조성해 미국을 여기에 묶어 놓고 그 사이에 중국이 타이완을 공격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반대로 미국이 중국의 주의력을 분산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분란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50년간 한국전쟁을 둘러싸고 전개되어 온 강대국 음모론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다.

모든 위기에는 항상 기회가 뒤따른다. 남북한 지도자들이 천수이볜이 몰고올 태풍의 위력을 감지하고 미연에 대처할 수 있다면 현재 양안 긴장이 기회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핵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운으로부터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보호하기 위해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야 할 필요성이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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