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무기 세일즈, 한반도에 ‘눈독’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7.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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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총리 방한 계기, 군사 협력 활성화 움직임…한국군, 미사일·조기경보기에 ‘눈독’
8월27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방한함으로써 새삼 한국·이스라엘 사이의 경제 협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95년 11월 암살된 라빈 총리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최초로 국민 직선으로 당선된 네타냐후 총리는 강경 보수파인 리쿠드당 소속이다. 그럼에도 지난 1월 헤브론 협정을 체결해, 67년 6일전쟁 때 점령한 요르단 강 서안의 이스라엘 병력을 철수시키는 용단을 내렸다.

네타냐후 총리의 이번 방한은 경제 협력에 적극 나서겠다는 세일즈 외교 성격을 띠고 있다. 때문에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농업과 우편·통신 협력에 관한 양해 각서를 체결하는 일 외에는 현대와 삼성 등 기업을 방문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방한 일정을 구성했다.

한국·이스라엘 경제 관계는 미미하나마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95년 7억1천만 달러(수출 4억2천만달러)였던 교역량은, 96년 7억2천만달러(수출 3억3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와 전자제품. 특히 자동차는 일본산 자동차에 이어 두 번째로 인기가 좋다.

무기 체계의 미국 의존도 줄일 계기

반면 우리는 전자제품과 유기 화학물을 주로 수입하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 대표적인 이스라엘 회사로는 나타핌과 이스라엘항공산업(IAI) 그룹 등이 있다. 나타핌사는 낭비하지 않고 꼭 필요한 양만큼의 물을 농작물에 주는 점적관수(點滴灌水) 시스템을 개발한 회사로 유명한데, 현재 이 시스템들은 한국 농가에 활발히 보급되고 있다.

한국·이스라엘 관계에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군사 협력 분야이다. 95년 8월과 9월 이양호 국방부장관과 윤용남 육군 참모총장이 각각 이스라엘을 방문해 이스라엘제 무기 체계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네타냐후 총리 방한에 이어 오는 9월에는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모데하이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네타냐후 총리 방한이 모데하이 국방장관의 방한을 위한 ‘터 닦기’용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한국군은 미군과 함께 연합군 체제로 운영되므로 무기 체계의 미국 의존도가 심각하다.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값이 싼 무기를 공급하겠다고 해도 시스템이 달라 도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제 무기는 미국산 무기와 호환성이 매우 높다. 또 아랍 국가와 실전을 치르며 개량되어 왔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이스라엘제 무기는 한국군 무기 체계의 미국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조심스레 거론되어 왔다.

현재 한국군 당국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스라엘항공산업 그룹 산하 엘타 전자가 생산하는 조기경보기 ‘팰컨’이다. 팰컨은 레이더와 피아식별장치(IFF)·전자정보(ELINT) 수집 장치·통신정보(COMINT) 수집 장치 등으로 구성된 최첨단 조기경보기로, 미국 보잉사가 생산하는 E767 조기경보기보다 한 세대 앞섰다고 평가받는다. 이 경보기는 위상 배열 레이더를 갖추고 있어, 세계에서 유일하게 360도 전방위를 동시에 탐지할 수 있다.

엘타 전자는 보잉 707기를 토대로 팰컨 경보기를 제작해 94년 칠레 공군에 공급했다. 95년 여름, 공군을 주축으로 한 한국군 장교단은 칠레를 방문해 이 경보기를 살펴보고, 한국은 보잉 707기보다 내부가 더 큰 보잉 767기를 토대로 팰컨 경보기를 제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게 할 경우 비용은 엄청나게 높아진다. 일부 관계자들은 한국 공군이 중고 보잉 767기를 구입해 이스라엘에 제공하면 대당 3억 달러 선에서 팰컨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공중 조기경보기 도입 사업’(E-X)은 ‘차기 주력 전투기 도입 사업’(F-X) ‘공중 급유기 도입 사업’(K-X)과 더불어 한국 공군이 추진하는 가장 핵심적인 전투력 증강 사업이다. 그러나 국방부와 합참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육군측이 예산 부족을 내세워 도입 시기를 연장하려고 해, 세 사업 모두 소강 상태에 빠져 있다. 한국 공군의 조기경보기 도입 사업에는 팰컨 외에도 미국의 E767과 스웨덴의 에리아이가 경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공군은 이스라엘의 라파엘사가 제작하는 ‘팝 아이’ 공대지 미사일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전투기에 장착하는 이 미사일은 명중률이 94%로 세계 최정상급이다. 목표 건물의 문을 정확히 뚫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여서 적의 발전소나 미사일 기지·교랑·벙커 등을 파괴하는 데 적합하다(라파엘사 자료 근거). 팝 아이 미사일은 이스라엘 공군은 물론 미국 공군에도 공급되어 있어, 미국과 연합 작전을 하는 한국 공군이 사용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삼성그룹이 도입을 검토한다고 미국 언론에 보도되었던 라파엘사의 함대공 미사일 ‘바락’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 미사일은 함정을 위협하는 초음속 전투기와 미사일·스마트탄·무인 항공기(UAV) 등을 요격하므로, 함정용 패트리어트라고 할 수 있다.

바락 미사일의 핵심은 무게가 22㎏인 탄두이다. 이 탄두는 목표물 근처에서 자폭하는데, 이때 생기는 수많은 파편이 적기와 적의 미사일을 때려 폭파한다. 바락 미사일은 함정 장착에 편리하도록 수직 발사통 안에 8기씩 들어가게 설계되어 있다.

이스라엘항공산업 산하 마랏사 등이 생산하는 무인 항공기(UAV)는 한국 육군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항공기는 조종사가 타지 않은 상태에서 애초 입력된 항로대로 비행하거나 원격 무선 조종에 따라 비행하는 것으로, 적진을 정찰하는 데 탁월하다. 이 항공기에 해상도가 뛰어난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하면, 10여 분 전 적진에서 일어난 각종 상황을 훤하게 볼 수 있다.

각종 영상 정보(IMINT)를 수집하는 첩보기들은 대개 고공으로 비행하므로, 스틸 사진과 같은 정지 화면을 주로 제공한다. 또 구름 등 렌즈를 가리는 장애물 위에서 촬영해야 하므로, 판독기를 거쳐야만 필름 해상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무인 항공기는 구름 밑으로 비행하고 비디오 촬영을 할 수 있어, 필름을 회수하는 즉시 동화상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스라엘, 미국보다 먼저 무인 항공기 개발

이스라엘은 미국보다 훨씬 먼저 무인 항공기 개발에 착수해 이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유사시 무인 항공기를 대규모로 띄워 적의 레이더를 교란하거나 폭탄을 달아 적진을 공격한다. 평시에는 농약 살포기를 달아 공중 방제 작업을 펼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뒤늦게 무인 항공기의 가치를 깨닫고 대우중공업이 중심이 되어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비조(飛鳥)로 명명된 이 무인 항공기는 발사·회수 과정에서 실수가 반복되어 개발이 지지부진하다. 대우중공업과 육군은 지난해 열린 서울 에어쇼 때 언론에 잠깐 비조를 공개했으나 비행에 자신이 없어서인지 일반 공개는 취소했다.

94년 10월 제네바에서 북한 핵 문제가 합의되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북한 미사일 문제로 고민했다. 87년 북한은 사정 거리 3백40㎞인 스커드B 미사일 백여 기를 이란에 수출한 데 이어, 91년 사정 거리 5백㎞인 스커드C를 이란과 시리아에 수출했다. 93년쯤에는 사정 거리 천㎞(최근에는 1천3백㎞로 늘어났음)인 노동1호 미사일을 이란에서도 생산키로 합의했다. 이란은 노동1호로 이스라엘을 가격할 수가 있다. 때문에 정보기관 모사드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대표들은 북경에서 북한과 접촉하며 중동 국가에 대한 미사일 수출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측에 따르면, 제네바 합의 직전 이스라엘은 북한 미사일 문제 해결을 모두 미국측에 떠넘기고 북한과 접촉을 중단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한국과의 경제 협력 문제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공동의 적을 염두에 둔 만큼 네타냐후 총리의 방한은 한국·이스라엘 간의 군사 협력을 활성화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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