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에게 사랑을, 후손에게 희망을
  • 김 당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7.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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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中 접경 지역서 확인한 ‘북한 기근 실상①’/ “아이를 죽 쑤어 판 할머니 처형”
북한동포 돕기운동을 펼치고 있는 다양한 종교·사회 단체 중에서 주목할 만한 단체가 하나 있다. ‘통일 강냉이 모임’(집행위원장 김해석)이 그것이다. 이 모임은 지난 3월 두레 마을(김진홍 목사)과 대구 빈들교회(양희찬 전도사)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피난처(김재오 소장·42쪽 상자 기사 참조) 등이 중심이 되어 북한 동포 기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에서 한 회원의 제안으로 발족했다. 이 제안자는 1년 전부터 북한 식량 상황에 관해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확인하는 일과 함께 북한 동포에게 식량을 직접 전달하는 활동을 수행해 왔다.

따라서 다른 단체들이 성금 모금 및 식량 보내기에 주안점을 맞추고 있는 데 비해 이 단체는 이런 일과 함께 ‘현장 정보 수집 및 전파’라는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여기서 말한 ‘현장’이란 북한 식량난 실태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중국 동북 3성 및 조중(朝中) 접경 지대를 뜻한다. 이 모임의 중국 상근자들은 그동안 탈북한 식량 난민(20여 명) 및 식량 지원차 북한을 왕래하는 조선족을 인터뷰하고, 접경 마을 탐방 및 현장 확인 등을 경로로 해서 정확한 기근 정보를 수집해 왔다. 그들은 그 내용을 ‘북한 기근 정보 ①∼⑥’(96년 7월∼97년 5월 상황)이라는 형식으로 꼼꼼하게 기록해 왔다.
<한겨레> 신문(5월9일자)도 관련 기사에서 ‘통일 강냉이 모임’을 소개하면서 ‘아! 굶주리는 북녘’ 시리즈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그 공로를 인정했듯이 ‘아! 굶주리는 북녘’ 기사도 실은 <한겨레> 신문에 제공된 이 기근 정보 ①∼④를 토대로 취재팀이 현장에 가서 재확인한 것이다. MBC 팀이 4월29일 보도한 북한 식량난 관련 프로그램(‘굶주린 북녘, 두만강 접경지대를 가다’)도 이 모임의 협조로 제작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모임은 북한 식량난의 정확한 실상을 알리고 캠페인 붐을 조성한 숨은 공로자인 셈이다.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기근 정보’

이 기근 정보는 <한겨레> 신문과 MBC 보도를 통해 이미 그 신뢰성이 확인되었지만, 북한 당국과의 관계나 구호 활동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자기 검열’이나 상황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국제 구호기관의 정보에 견주어 현재로서는 가장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시사저널>은 최근 통일 강냉이 모임으로부터 긴급 입수한 ‘북한 기근 정보 ①∼⑥’ 중에서 다른 언론에 미공개된 ‘기근 정보 ⑤’(3∼4월 상황) 및 ‘기근 정보 ⑥’(4∼5월 초 상황)을 우선 두 번에 걸쳐 요약 소개한다. 다만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식량을 구하러 탈북한 정보 제공자들의 신분을 공개하는 데 따를 위험성을 고려해 구체적인 장소와 실명은 감추었다. 다음은 그 정보 내용이다.
“우리 마을서 하루 3명 이상 굶어죽었다”

연길 시와 두만강 접경 마을인 남평에서 조선족 밀무역업자 2명을 만났다. 이들은 남평과 맞은편인 함경북도 무산시 지역을 오가며 밀무역을 하는 사람들로 작년 한 해 동안 열여덟 번 불법 월경해 무산시에 다녀왔다. 이들은 북한군 초소 병사에게 쌀과 물자를 주고, 중국 변방 부대원에게도 돈을 주어 양쪽의 묵인을 받은 상태에서 활동한다고 밝혔다.

“우리가 초소를 통과하는 경우 30∼60분 정도 시간을 주는데, 이때는 짐을 나르느라 양쪽 국경 사이의 강을 오가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부산하게 움직인다. 송이버섯은 가져오면 보통 백 곱절 장사가 된다. 북한 병사들은 여자를 데리고 나오는 것도 묵인해 준다. 북한 변방 부대의 경우 요즘 식량마저 자체 조달해 해결해야 할 상황이어서 돈과 쌀만 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해준다.”

이들은 “우리가 말해도 당신들은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다 말하지는 않겠다”라고 하면서도 처참한 북한 사정을 이렇게 증언했다. “종자마저 바닥이 났다. 감자를 밭에 심어놓고도 바로 다음날 가서 파 먹고 마는 정도이다. 소나무 껍질을 하도 많이 벗겨서 작년부터 당국은 소나무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껍질을 벗겨 먹더라도 한쪽 부분만 벗겨먹으라고 감시원을 배치했다. 소나무 껍질도 이제 아랫도리 부분은 다 벗겨 먹어서 윗 부분을 먹어야 하는데 너무 굶어서 힘이 없는 사람은 나무에조차 오를 수 없어 이마저 먹지 못하는 형편이다.”
함북 ○○에서 온 한 북한 청년(31)은 94년에 월경했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때 돌아갔다가 옷차림이 너무 좋은 것이 의심을 받아 사회안전부에 붙잡혔다. 이 청년은 심문 중에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오른쪽 귀가 멀고 뇌에 이상이 생긴 탓인지 언어 및 신경 장애가 있었다. 이 청년은 그때는 배가 고파 중국 친척집에 가면 좀더 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두만강을 헤엄쳐 건넜는데 이번(96년 8월)에는 ‘굶어죽지 않기 위해’삼합 해관(세관) 다리 밑으로 헤엄쳐 건너왔다고 말했다. 그 이후에도 몰래 월경해 회령시를 다녀온 적이 있는 이 청년은 인육을 판 사실을 증언했다.

“우리 마을 총인구는 2천4백명쯤 되는데 내가 떠나던 당시 굶어 죽어 나간 사람이 하루 평균 3명 이상이었다. 우리 마을에서는 어린애를 잡아 죽을 쑤어 판 할머니가 붙잡혀서 처형당했다. 어느날 그 할머니에게 빚을 준 동네 사람 2명이 빚 받으러 할머니 집에 갔다가 부엌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와중에 한 아저씨가 넘어지면서 솥뚜껑을 밀치게 되었는데 그 안에서 어린애 머리와 손목이 삶아지고 있었다. 한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다른 아저씨는 토하면서 겨우 그 집을 기어나와 신고했다.”

4월1일 밀매업자들이 말한 북한 처녀 매매 사실을 한 신문 기자와 함께 확인하기 위해 연길 시 공원에서 다른 사람을 시켜 신분을 모르게 접근해 북한 처녀 2명을 사는 데 ‘성공’했다. 혜산과 무산에서 탈출해온 북한 처녀 2명을 판 사람들은 북한과 밀무역을 하는 조선족들이었는데, 1명당 인민폐 만원(한국돈 1백10만원)을 지불했다. 협상 과정에서 이들은 이전에 적어도 20명 이상을 팔아 넘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거래가 끝난 이후에도 이들은 북한 처녀 5명이 대기하고 있다면서 더 사겠느냐고 제의했다.
대도시도 6개월 이상 배급 중단…강원도 지역은 소금도 없어

남평 등 조중 접경 마을에서는 북한 처녀 인신 매매가 최근 4∼5개월 전부터 새로운 현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 아주 확실해 보였다. 남평에서는 흑룡강성에서 북한 아가씨를 사러 종종 오는 장사꾼들을 직접 목격했다. 매매 경로는 △조선족 밀무역업자의 북한 불법 월경 △북한 처녀에게 제의(밥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조건) △수락 △국경 통과(북한 병사에게 묵인 대가로 양식 및 뇌물 제공하고 중국 변방 부대에도 뇌물 제공) △중국 변방 지역 대기 △연길 및 내륙 지방으로의 매매 순서로 진행된다. 탈북한 북한 여성의 경우 탈북 사실이 알려지면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으로 압송되어 처벌받기 때문에 대개가 다 시키는 대로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북한의 친척에게 양식 전달차 중국 도문 맞은편의 남양역에 다녀온 조선족 아주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기차가 북한 내륙의 한 지점으로부터 15일 만에 도착했는데, 오는 도중 기차 안에서 8명이 굶어 죽었다. 북한의 대도시 중 하나인 청진시마저 배급이 완전 중단된 지 6개월 이상 되었다고 한다. 북한의 각 도·군당(黨) 관리들은 6∼7명씩 조를 짜 중국에 와서 양식을 구하려고 애쓰는 등 식량 조달에 정신이 없다. 한 예로 강원도 지역은 소금마저 떨어져 주민 일부는 바닷물을 양동이에 받아 소금을 만들어 쓰지만 대부분은 그마저 불가능한 형편이라고 한다.

북한 중앙 당국의 식량 배급 체계가 작동하지 못하자 이제는 각 도·시·군·직장(기업소) 단위 별로 식량을 자체 조달하도록 책임이 떨어졌다. 강원도 당국 무역국장은 어떻게든 소금 천t(2만달러 상당)을 구하러 중국에 왔으나 돈이 없어 석달째 구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일시 귀국했다가 <시사저널>에 ‘북한 기근 정보’를 건네주고 다시 연길로 간 통일 강냉이 모임의 한 관계자는, 돌아가서 맨 먼저 할 일은 소금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는 강원도 지역에 소금 천t을 건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싸고 많은 양을 신속히 전달 △모금 전액 전달(활동비 자비 부담) △북한 정권이 아닌 백성에게 전달 △남한 형제가 보낸 것을 주지 △비정치·비이념·인도주의 등 ‘통일 강냉이 5대 원칙’을 지키면서 기근 정보 수집 및 유통, 식량 모금 및 직간접 전달 작업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이 ‘식량 보급투쟁 게릴라 모임’의 관계자는 “최대 현안은 북한 기근 정보를 정부가 독점하는 것을 깨고 정확한 정보를 유통시켜 여론의 압력으로 정부 정책(대량 지원 불가 및 지원 창구 단일화)을 바꾸게 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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