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기 교수
  • 도쿄·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1996.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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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문가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 인터뷰/“日, 북한에 쌀 30만t 지원 가능”
 
일본 게이오 대학(慶應義塾大學)의 한반도 전문가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교수에 대해 국내의 한 북한 전문가는 “그는 그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평한 적이 있다. 마사오 교수가 일본 정부의 북한 정책이나 한반도 정책 결정 과정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두고 한 말이다. 북·일 수교 교섭 재개 문제가 관심을 끌던 지난 3월 그는 외무성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팀을 이끌고 북한을 전격 방문해 막후 영향력을 입증했다. 지난 6월에는 일본을 방문한 북한 외교부 이철진 과장 및 평화군축연구소 팀과 북일 수교 회담 재개와 관련해 깊이 협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새로운 현안으로 떠오른 북·일 수교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게이오 대학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북·일 수교 교섭 움직임이 막후에서 활발하게 진행된다는 인상을 주더니 최근에는 뜸해진 것 같다. 그 이유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본의 사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하시모토 내각의 대북 접근 시각이 무라야마 정권과는 대단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나?

무라야마 정권은 북한과의 수교 교섭을 서둘렀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이후 일본은 북한에 두 차례 쌀 지원을 했는데, 쌀 지원이 이루어지면 수교 교섭이 10월께 시작될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의 쌀 지원 정책이 실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쌀만 주고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북한이 수교 교섭에 소극적이었다는 것인가?

그렇다. 나도 이 부분을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아마 미국과의 교섭에 집중하느라 그랬던 것 같다. 올해 들어와서는 북한이 적극적인데, 이번에는 일본의 사정이 많이 변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변화인가?

우선 쌀 지원 정책이 실패하면서 이를 추진했던 정치인들의 입지가 축소됐다. 또 주택금융회사의 비리 문제도 있어 수교 교섭의 창구가 정치인들로부터 총리관저나 외무성으로 넘어가게 됐다. 북한도 김용순을 중심으로 한 당쪽 인물들로부터 외교부 쪽으로 교섭 창구가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의 가장 큰 변화는 무라야마에 비해 보수적이고 북한보다는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하시모토 정권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번 제주도 정상회담에서 하시모토 총리가 4자 회담에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야 북한과 교섭을 재개하겠다고 공표했는데, 이것이 지금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하시모토 정권 들어와서 대북 자세가 강경해졌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북한과의 수교 교섭 재개도 요원한 것 아닌가?

그것은 그렇지 않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일본은 어떤 계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계기란 무엇인가?

지금 남북한과 미국 사이에 교감이 오가고 있는 3자 설명회가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3자 설명회가 이루어지면 북·일 수교 교섭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설명회가 시작되면 남북간에 어느 정도의 접촉이 이루어질 것이고, 하시모토 총리의 4자 회담 전제 조건도 충족된다. 지난 6월 일본을 방문한 북한의 평화군축연구소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들도 내 얘기를 경청했다.

수교 교섭이 재개된다면 그 시기는?

지금 추세대로라면 3자 설명회가 8월께면 가능할 것이고, 그러면 수교 교섭은 10월이나 11월쯤이면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만난 다른 전문가들 얘기로는 9월 이후면 일본도 중의원 선거 기간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북한과의 수교 교섭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는 얘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수교 교섭을 타결하는 것이라면 부담스러울지 모르나, 단순히 교섭을 재개하는 것은 외무성이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번 여름에 내린 집중 호우로 한국도 큰 피해를 당했지만 북한도 상당한 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추가 쌀 지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가?

충분히 가능하다. 세계무역기구 체제에서 일본은 매년 50만 t 이상의 쌀을 수입하고 있는데 그중 20만 t에서 30만t은 자체 처리가 곤란하다. 3자설명회가 이루어져 한국의 대북 쌀 지원이 본격화되면 올 가을까지 일본이 20만 t에서 30만 t을 북한에 지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북한이 빨리 설명회에 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3자 설명회가 이루어지면 곧 4자 회담 성사 문제가 대두될 것인데, 개인적으로 어떻게 전망하나?

4자 회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어느 나라도 중국의 참여를 희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하기를 원하고, 한국은 북한과 대화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4자 회담이 아니라 3자 회담, 즉 남북한과 미국의 2+1 형태로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3자가 모두 둘러앉아 회담하는 방법과, 미·북한 대화와 남북대화를 병행하는 `‘더블트랙 방식’ 즉 변형 3자 회담 형태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3자 회담이 발전하면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김영삼 대통령하고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이 다음 정권에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중재하는 정상회담 방식, 즉 카터 정권 당시 캠프 데이비드에서 중동 평화회담을 중재했던 방식이 원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3자 회담의 주의제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핵심은 역시 평화체제 구축 문제다. 나는 북한의 생존 전략을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첫째는 미국으로부터의 안전 보장, 둘째는 남북 기본합의서 체제를 통한 연방제 통일(실제로는 평화공존체제 구축), 그리고 세번째가 경제 개방을 통한 경제 재건 전략이다. 3자 회담에서는 주로 한반도에서 미국이 조정하는 문제가 집중 논의될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우선 북한은 미국에 대해 앞으로 남북한을 동등하게 대해 달라고 할 것이다. 이는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역할 조정과 관련해 구체적인 사안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문제인데, 기존 대북 억지력이 아니라 전쟁 억지력, 즉 PKO(유엔평화유지군)와 같은 평화유지군으로 성격을 전환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주한미군이 성격 전환한다면 한국내 주둔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91년에 현 태국 주재 북한대사인 이삼로씨가 국제학술회의에서 그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 그 뒤 개인적으로 알아보니까 북한 내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상당한 수준의 합의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으로 북·일 수교 교섭이 재개되면 회담의 형식이나 쟁점 사항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는 예비 회담 형식이었으나 올 가을부터는 본격적으로 수교 회담이 개시되는 것이다. 쟁점 사항은 역사 인식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핵심은 역시 돈 문제다. 내 생각으로는 65년 한일조약 때 한국에 지원된 5억달러에 그 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25억에서 30억달러 수준과 전두환 정권 때 40억달러 차관 제공을 합쳐 약 70억달러 수준이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일본은 미·북한 관계 및 남북관계와 속도를 맞추기 위해 기본 조약 문제, 경제 문제, 국제 문제, 기타 문제 등 기존 네 가지 의제를 일괄적으로 협의하자는 입장을 취할 것이고 북한은 회담 타결을 앞당기기 위해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북·일 수교 회담 재개 이후 일본 기업의 북한 진출이 빨라질 것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그것은 오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상호보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자금이 진출해 북한의 인프라 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져야 한국 자본의 본격 진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북한측에도 하고 싶은 얘기는, 북한의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한국과의 협력이 필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의 진출뿐 아니라 하다 못해 북한이 자본주의 국가와 교역을 하고 싶어도 아직은 시장 개척 등에서 서투를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분야에서도 한국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진· 선봉도 한국 기업이 들어가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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