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포로 북한 생존, 클린턴은 알고 있다
  • 워싱턴· 김재일 특파원 ()
  • 승인 1996.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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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실종자 가족 연맹, 증언·증거 제시…미국 정부는 부인
지난 6월20일 오후 1시 미국 하원 래이번 빌딩 2212호에서는 ‘북한에 있는 미군 포로에 관한 책임’이라는 명칭을 내건 청문회가 열렸다. 하원 국가안보위 군인소위가 주관한 이 청문회가 하원에서 열리기는 근 40년 만에 처음이었다. 로버트 도넌 위원장은 “우리는 북한 영화에 나온 대로 적어도 자진 월북자 4명이 북한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국방부는 이 사실을 오래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나 지난해 한국 언론이 이 사실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이를 공식 인정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국무부와 국방부에 진상 공개를 촉구했다.

 
그는 한국전쟁 때 포로로 붙잡혀 43년간 노예 노동에 종사한 조창호 소위가 94년 북한을 탈출한 경우를 예로 들어 미군 포로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한때 옛 소련권의 고위직 정보 장교였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장군으로부터 한국과 베트남에서 붙잡힌 미군 포로들이 제3국에 이송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증언자로 청문회에 참석한 데이비드 브라운 국무부 한국과장은 “미군 포로가 생존해 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미국 정부는 아직까지 미국인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북한에 억류돼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었다”라고 증언했다.

앨런 리오타 국방부 POW/MIA(미군 포로 및 실종자) 담당 부국장은 증언을 통해, 우리는 60년대에 미군 4명이 북한으로 탈주해 지금 거기 살고 있음을 안다고 말했으나, 미군 포로가 북한에 억류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보도가 북한 선전 영화인 <이름없는 영웅들>에 나온 미국인들과 연결돼 있다. 실종자들이 이 영화에 나온 사람들과 닮았기 때문에, 혹은 영화 출연자들이 미군 포로로서 영어 교관으로 종사하고 있다는 일부 보도 때문에 전쟁 포로가 북한에 있다는 보도가 나온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국방부 POW/MIA 미·러시아 공동위원회 맬컴 툰 공동위원장은 미군 포로가 옛 소련에 이송되었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나는 특히 한국전쟁 때 소련 지도층이 그들의 정치·군사적 목적을 위해 미군 포로들을 데려 갔을 것으로 믿고 이 문제를 추적해 왔다. 그러나 불행하게 아직까지도 미군 포로가 소련 땅으로 압송됐음을 입증할 단서를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CIA 보고서 “미군 포로 생존 가능성”

이처럼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한결같이 미군 포로 및 실종자가 북한에 살아 있을 가능성을 부인한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은 미군 포로들이 북한에 살아 있다고 주장하고, 이들을 송환하는 데 ‘미온적인’ 정부의 태도를 비난한다. ‘미군 실종자 송환을 위한 전국 가족 연맹’의 돌러레스 알폰드 의장은 이 청문회에서 매우 공격적인 증언을 했다.

“한국전쟁 미군 실종자 가족들은 53년에 북한이 미군 포로 전부를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족들은 이들을 송환시키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미국 정부는 이 요구를 무시했다. 도넌 위원장, 당신은 미군 포로들이 그곳에 있음을 알고 있다. 페리 국방장관, 그리고 대통령도 그것을 알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원조를 필요로 한다. 그들이 미군 포로를 즉시 돌려주는 조건으로 원조해 줘라.”

그러면 왜 이 시점에서 갑자기 미군 포로와 실종자 문제가 떠올랐는가. 이는 미국과 북한이 이 달 중순부터 미군 유해 공동 발굴 작업에 들어감에 따라, 이 사안과 맞물려 죽은 사람의 시체보다도 산 사람에 대한 관심이 우선이라는 여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3월 말 국방부 POW/MIA국에 근무하는 한국계 미국인 이인성씨의 내부 보고서가 미군 포로와 실종자의 북한내 생존 가능성에 관한 쟁점에 불을 붙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 보고서에 북한에서 미국인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여 ‘적은 수의 망명자’와 ‘10~15명의 전쟁 포로’등 두 가지 부류로 분류해 적었다. 60년대 군부대를 탈영한 자진 망명자는 래리 앱시어·제임스 드레스녹·제리 패리시·찰스 젠킨스이다. 두 번째 부류는 전쟁 포로로, 특히 한국전쟁 때 붙잡힌 미군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씨는 보고서에서 루마니아인들과 북한으로부터 탈출한 사람들의 목격담 등 수많은 증언을 감안할 때 북한에 미군 포로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의 보고서가 나오기 전에도 지난 40여 년간 북한이 미군 포로를 억류하고 있을 가능성은 계속 제기되어 왔다. 한국전쟁 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군 포로에 대한 공식 성명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그는 55년 전몰 장병 기념일에 “우리는 미군 포로들이 어디에 억류돼 있는지 알기 위해 중국 공산주의자들과 길고도 진지한 협의를 계속해 왔다. 소수가 돌아왔으나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80년 4월 작성된 중앙정보국(CIA) 문서에는 평양 근교에서 미국인 2명이 목격되었고, 월맹에서 잡힌 미군 조종사 10명이 북한으로 이송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적혀 있다. 또 88년 3월 중앙정보국은 한국전쟁 포로로 보이는 백인 11명이 79년 가을 평양 북쪽 집단 농장에서 목격되었다는 보고를 접했다.

89년 2월 국방부 문서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는 단서를 달고 북한내 미군 포로에 관한 뜬소문을 담고 있다. 문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미군 포로 11명이 인민군 외국어 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들은 55~60세로 북한말을 유창하게 하고 북한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있다. 그들 모두 북한 여자와 결혼해 자녀를 두고 있다. 그들에게는 자유로운 여행이 허용되지 않으며, 가끔 유적지나 금강산 같은 관광지에 안내를 받아 방문한다는 것이다.

한 국무부 문서 역시 뜬소문 수준의 첩보를 담고 있다. 아직 ‘미국인 몇 사람이 거기(북한)에 살고 있으나’ 북한 정부는 그들이 나가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그들은 ‘어딘가에 격리되어’ 있다. 문서에 따르면, 그들은 한국전 포로들인 듯하나 몇명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미군 포로의 동생인 로버트 듀머스의 증언은 더 생생하다. 제19 보병연대 24대대 소속이었던 그의 형 로저 듀머스는 50년 11월 북한 안주에서 중공군에게 붙잡혔다. 53년 8월 그와 함께 있다가 석방된 바비 캐루스에 따르면, 그들이 ‘자유의 마을’로 석방되기 위해 트럭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중국 경비병이 듀머스를 데리고 가버렸다. 56년 그는, 한국에서 북한군에 붙잡혔다가 풀려난 월터 엔범에 의해 평양 감옥에서 목격되었다. 엔범은 제5호 수용소에서 듀머스뿐 아니라 석방되지 않은 미군 포로 25명을 만났다고 밝혔다.

79년 AP 통신은 동생 듀머스에게 평양의 제5호 수용소와 석방을 기다리는 포로들을 담은 사진 2장을 보내왔다. 이 사진에서 형 듀머스와 다른 몇몇 포로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동생 듀머스는 2년 전 이 사진을 POW/MIA국 마티 위스더 대령에게 보냈고, 담당자는 그 사진을 모든 퇴역 군인 기관에 보내 전쟁 포로의 신원을 확인하게끔 하겠다고 말했으나 여태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93년 7월 그는 뉴욕에서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대사를 만나 형의 행방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박대사는 형의 사진을 달라고 했다. 듀머스씨가 건넨 사진은 평양에 보내졌다. 그는 최근 그 사진을 언젠가 돌려받을 것이라는 전갈만을 받았다.

미국 정부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북한에 미군 포로가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국방부나 국무부의 입장도 따지고 보면 북한이 워낙 폐쇄 사회여서 그들의 생존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지 ‘미군 포로가 북한에 없다’고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 움직임과 더불어 그 궁금증은 머지 않아 풀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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