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사창가에 몰려드는 동유럽 여성들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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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돈 쥐려 서유럽 사창가로 몰려… 수입 쥐꼬리, 업주·범죄조직만 ‘떼돈’
 
‘젊고 예쁜 아가씨 구함. 엄청난 돈을 벌며 외국에서 호스테스로 일할 분.’ ‘스위스의 나이트클럽에서 댄서나 호스테스로 일할 분. 고소득 보장.’

헝가리 신문을 펼치면 날마다 이런 광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댄서를 구한다고 하면서도, 춤을 잘 추지 못해도 좋다는 것이다. 외국어를 몰라도 좋다. 실제로 이들이 외국에 나가서 할 일은 춤추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광고는 매일 1천5백달러를 벌 수 있다고 선전한다.

드러내 놓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매춘과 관련되어 있다. 헝가리 경찰이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 광고들을 조사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지난 4년간 헝가리의 범죄율은 2배로 늘었는데, 예산은 5분의 1로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경찰이 못본 체하는 수밖에 없다.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서유럽에 온 여성들은 대개 사창가로 빠진다. 현재 서유럽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외국 여성은 대략 20만∼50만명. 이들은 대부분 25세가 안된 여성이고, 그중에서도 15∼18세 소녀가 가장 많다. 정부간 기구인 국제이민기구(IOM)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성병을 앓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국적인’ 섹스를 즐기려는 고객들의 강요에 못이겨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섹스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일의 베를린 경찰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이들이 하루에 버는 돈은 대략 3백50달러지만, 정작 이들이 손에 쥐는 돈은 14달러 정도밖에 안된다.

 
서유럽 매춘 여성 80%가 외국인


90년 이전 서유럽 사창가로 몰려든 외국 여성은 아프리카·중남미·아시아 여성이었다. 아프리카의 가나·나이지리아·모로코, 중남미의 브라질·콜롬비아·도미니카, 동남아시아의 필리핀·태국 여성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데 90년 동유럽의 사회주의 정권들이 무너지고 ‘철의 장막’이 걷히자 상황이 달라졌다. 동유럽 여성들이 대거 서유럽으로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동유럽 출신 여성들이 서유럽 사창가를 장악하게 되었다.

10%가 넘는 실업률과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서유럽 국가들은 섹스 산업이 이상 호황을 누리고 동유럽 여성들의 밀입국이 꼬리를 물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제이민기구도 팔을 걷어붙였다. 이 기구는 지난 6월10∼11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여성 인신매매’라는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국제이민기구는 이 회의에서 <유럽연합 국가들에서의 여성 인신매매:특징과 경향, 정책 사안들>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외국 여성, 특히 동유럽 여성들이 어떻게 서유럽으로 밀입국해서 사창가로 흘러드는지, 이들이 실제로 어떤 생활을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서유럽에 몰래 들어가 사창가로 빠진 외국 여성들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 결과 독일에서는 매춘 여성의 75%를 외국 여성이 차지하고 있고,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는 거리에서 호객하는 여성의 80%가 외국 여성이다. 비엔나의 섹스 클럽에서 댄서나 호스테스로 일하는 여성의 80% 정도가 외국 여성이고, 네덜란드에서도 매춘 여성의 3분의 1이 서유럽 밖에서 흘러들어온 여성이다.

90년 이후는 동유럽에서 밀입국한 여성들의 숫자가 급증했다. 한 예로 벨기에에서는 전보다 2배, 네덜란드에서는 전보다 3배로 늘어났다. 이런 경향은 94년 네덜란드의 비정부기구(NGO)인 ‘여성 인신매매에 반대하는 네덜란드 기금(STV)’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STV가 지원하고 있는 외국 여성 1백55명 가운데 1백8명(69%)이 동유럽 출신이고, 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 출신 여성은 47명에 불과했다. 아시아나 중남미 여성들과 달리 동유럽 여성은 나이가 어리고 미혼인 데다가, 교육 수준이 높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동유럽은 이제 ‘영계’공급지 노릇을 하는 셈이다.

 
브로커들, 1명 ‘팔면’ 7백달러 벌어


이 여성들은 한결같이 불법 입국한 처지이기 때문에 자기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게다가 이들은 아주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보건 의료상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유럽 사창가는 AIDS를 확산시키는 진원지가 되고 있다. 국제이민기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여성들은 대부분 건강 에 문제가 있고, 특히 10대 소녀들은 자기가 처한 위험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에는 서유럽에서 떳떳한 직장에 취직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자기가 섹스 관련 산업에 종사하게 되리라는 점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자기가 임금도 제대로 못받고, 여권과 신분증을 빼앗긴 상태에서 이 업소에서 저 업소로 물건처럼 팔려다니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동유럽 여성들의 ‘돈’욕심과 서유럽 남성들의 ‘성욕’을 이어 주는 사람들은 브로커들이다. 베를린 경찰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폴란드 여성 1명을 서유럽 사창가로 팔아넘길 때 브로커가 챙기는 돈은 대략 7백달러 정도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국경 검문소에서 검색을 강화하지만, 동유럽 여성들의 밀입국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동유럽 여성은 대부분 비자 없이 서유럽으로 관광을 갈 수 있다. 거리가 가까워 비용이 얼마 들지 않고, 외양도 비슷해 분간하기 어렵다. 게다가 서유럽 경찰들은 마약이나 무기 밀매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여성을 거래하는 것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설사 당국에 적발되더라도 처벌이 가볍다. 외국 여성을 밀입국시키다 적발될 경우,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는 최고 1년형밖에 안되고, 스위스에서는 최고 3년이다. 폴란드에는 이것을 규정한 법이 없고, 체코에서는 경범죄로 분류된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 유발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으므로 동유럽 범죄 조직들이 이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갖가지 방법을 강구해 동유럽 여성들을 합법적으로 송출한다. 이들이 흔히 쓰는 방법은 학원이나 예술 단체·관광회사 따위를 차려놓고, 어학 연수생·직업 훈련생·댄서·관광객으로 위장시켜 내보내는 것이다. 필요할 경우 여권을 위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크고 작은 범죄 조직이 밀입국에 개입하자 오스트리아는 범정부 차원의 실무 그룹을 구성했다. 여기에 참여하는 관리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폴란드와 독일의 사창가에 동유럽 여성들을 공급하는 루트는 러시아 범죄 조직들이 장악하고 있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사창가는 우크라이나 조직이, 이탈리아 사창가는 러시아와 알바니아 조직이 장악하고 있다. 네덜란드 사창가에서도 동유럽의 인신 매매범들이 점차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네덜란드 정부는 94년 5월부터 남부 국경 지대에 특수 경찰을 배치해 외국인 밀입국을 방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 매춘 시장을 둘러싼 브로커 조직 간의 세력 다툼이 살인을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서유럽 각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감과 인종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국가간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피해자는 바로 당사자이다. 돈을 벌려고 서유럽 사창가로 빠져들었다가 그곳에서 매맞고 착취 당하는 일은 너무 흔하다. 여권과 신분증을 빼앗기고 덫에 걸린 새처럼 꼼짝 못하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수모를 겪고 혹사 당하면서도 이들은 목돈을 쥘 꿈을 꾸며 참고 견디지만, 정작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쥐꼬리만큼밖에 안된다.

육체적·정신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들이 과거를 잊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들이 서유럽에서 추방되어도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설사 돌아간다 하더라도 소득원이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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