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금광 발견' 희대 사기극 전모
  • 마닐라·김진화 (언론인) ()
  • 승인 1997.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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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금세기 최대 금맥’ 발견 사건, 조작극으로 밝혀져…진실 오리무중
95년 10월 캐나다 캘거리 시에 있는 소규모 광산회사 브렉스(BRE-X)는 세계 광업계가 깜짝 놀랄 만한 빅 뉴스를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칼리만탄(보루네오) 섬 동북부 밀림 지대인 부상(Busang)에서 금세기 최대의 금맥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인도네시아 동력자원부는 부상 일대에 금맥이 4천만 온스 깔려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발표 때마다 3~4개월에 한 번씩 불어나던 매장량은 96년 5월 초에는 2억 온스(5백60만kg), 시가로 7백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광맥으로 평가되었다. 이는 2년 전 처음 발표했을 때의 2백50만 온스보다 80배나 늘어난 것이다.

‘20세기 최대의 금맥 발견’이라는 이 엄청난 소식은 캐나다·미국·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와 함께 이름 없던 브렉스사 주식도 몇십 센트에서 작년 5월에는 2백달러까지 치솟았다. 이 회사 회장과 부회장은 주식을 전매해 순식간에 각각 2천만달러와 2천9백만달러를 거머쥐었다. 금광 현장 책임자 구즈만도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

밖에서 금가루 가져다 금광석 날조

그런데 지난 5월2일 미국의 광산 컨설턴트 스트라턴 미네랄 서비스사가 1백20쪽 분량에 이르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인도네시아 정부에 제출했다. 부상 금광에서 발견된 금의 매장량, 순도, 금맥 분포도가 모두 허위이며, 지금까지 부상에서 채굴한 금광석은 모조리 외부에서 들여온 금가루를 교묘히 첨가한 뒤 화학 처리해 날조했다는 것이다. 지상 최대의 금광 발견 사건이 지상 최대의 사기극으로 드러난 것이다.

아직도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고 있는 부상 금광 미스터리에는 돈벌이에 혈안이 된 4인의 집념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우선 캐나다 출신 무명 사업가 데이비드 웰시. 브렉스사 회장이기도 한 그는 93년까지도 신용카드사에 만달러 빚을 졌을 정도로 빈털터리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 이름인 브렛(Brett)과 탐사(Exploration)라는 뜻을 합쳐 현재의 브렉스라는 회사를 차린 뒤 주머니에 남은 7천8백달러를 들고 노다지가 있다는 부상으로 찾아가 일생 일대의 모험을 결행했다.

역시 캐나다인으로 브렉스사 부회장 겸 광산 전문 지질학자인 존 펠더호프. 그는 파푸아뉴기니에서 금광을 발견하는 등 동남아 광업계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부상 금광 개발의 총책임자인 그는 이 광맥을 놓고 ‘20세기 최대의 금맥 발견’이라고 큰소리쳤다.

세번째 인물은 모하메드 봅 하산. 인도네시아 최대 갑부 중 한 사람인 그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장녀와 장남을 제치고 브렉스사 주식 30%를 무상으로 받아낸 목재 재벌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마이클 구즈만이다. 부상 광산 현장의 광산 전문가이자 지질학자인 그는 펠더호프와 함께 광석 견본 채취와 실험 책임을 맡은 인물이다. 10여 년간 보루네오 섬의 밀림을 헤맨 광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그는 ‘필리핀의 인디아나 존스’로 통한다.

이 4명 가운데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쥔 구즈만은 지난 3월18일 저녁 부상 광산 사무실에서 3백50㎞ 떨어진 사마린다라는 마을에 사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날 마을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말했다. 밤낮으로 광산일에 매달려 집에 자주 갈 수 없었던 구즈만은 20세 연하인 인도네시아인 아내 릴리스와 결혼 기념일을 함께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날 오후 구즈만의 아내는 남편이 헬기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기극 현장 책임자 의문사해 혼란 커져

구즈만이 자살한 지 이틀 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발행되는 한 일간지는 처음으로 부상 금광의 금 매장량이 과장되었다는 기사를 실었다. 보도가 나간 지 3일 후 금광 주식에 투자한 미국의 프리포트 광업사는 조사 결과 부상에 금맥이 전혀 없다고 발표했다. 이 순간부터 브렉스사 주식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구즈만의 죽음은 세계 광업계를 뒤흔들었던 ‘세기의 사기극’을 더 깊은 미궁으로 밀어넣었다. 구즈만은 금광석 견본을 날조한 장본인이라는 의혹을 강하게 받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즈만의 죽음과 브렉스사 사기극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가 사망한 지 20일 만에 공식 발표를 통해, 그가 헬기를 타고 광산 현장으로 가던 중 헬기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으며, 동기는 지병인 간염을 비관해서였다고 밝혔다. 마닐라에서 만난 필리핀계 미국 기자 마누엘라 사라고사는 구즈만이 ‘소금 타기’가 탄로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살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5월12일 필자가 마닐라에서 전화로 접촉한 구즈만의 남동생 심플리치오는 자살설을 일축했다. 그는 “형이 간염을 앓고 있었다면 어떻게 밀림에서 그토록 오래 활동할 수 있었겠는가. 자살했다는 그날 발견된 손가방 속의 수첩에는 다음날의 일정이 빽빽히 적혀 있었다. 나와 형수가 형의 시체를 인수하러 자카르타에 도착해 보니, 인도네시아 경찰이 형이 남겼다면서 유서를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형수의 이름이 Thess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형은 항상 Tess라고 써왔다”라고 밝혔다.

필자가 5월16일 자카르타에서 만난 프랑스 AFP 통신 베르나르 에스트라드 지국장은 정부가 발표한 자살설이 의문점투성이라고 지적했다. 구즈만의 시체는 나흘 뒤 밀림의 물구덩이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에 따르면, 시체는 열대 태양 아래서 심하게 부패했고 멧돼지가 내장을 뜯어 먹었을 뿐 아니라, 턱이 부서져 있었다는 것이다. 에스트라드 지국장은 이런 상황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하지만 자살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자살도 타살도 아니라면 구즈만은 어디엔가 살아 있다는 말인가? 현재 자카르타와 마닐라에서는 구즈만이 프리포트사 조사팀과 만나면 자신의 ‘소금 타기’ 수법이 폭로될 것이기 때문에 자살을 가장해 잠적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구즈만은 작년 한 해 브렉스사 주식 40만주를 사들여 그 중 15만주를 팔아 수백만 달러를 챙겼고, 나머지 주식은 오를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잠적이든 어느 하나 뚜렷이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건 분명한 사실은 구즈만 한 사람만으로는 이같은 세기의 사기극을 벌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엄청난 사기극을 그토록 치밀하게 오랜 기간 연출하려면 많은 배우와 치밀한 계획과 조직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중론이다. 구즈만과 펠더호프가 현장의 주역이라면, 이들을 막후에서 지휘한 ‘몸체’는 과연 누구일까?

필리핀 지진학회는 ‘정치와 국가이기주의, 그리고 국제 음모의 희생양’이 된 구즈만에게 오는 12월 총회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은 또 다른 정치적 이유로 취소되었다. 인도네시아와 외교 마찰을 피하려는 필리핀 정부의 종용 때문이었다.

보루네오 섬의 화산이 폭발한 듯이 세계 광업계를 흔들었던 거대한 추문의 몸체가 일부나마 드러나기까지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뜨거운 논쟁과 추리, 가설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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