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한 동맹해라” 전략적 공세주의 등장
  • 金芳熙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5.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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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교수, 휴전협정 일방 파기 등 '전략적 공세주의’ 주장
지난해 10월21일 체결된 미·북한 제네바 합의로 북한의 실질적인 핵 위협은 사라졌지만, 한국 정부는 또 다른 고민거리를 안게 됐다. 한반도 문제가 북한과 미국 두 나라의 전유물이 돼 한국 정부가 철저하게 소외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핵 협상에서 철저하게 한국 정부를 배제하는 전략을 구사해온 북한은 실제로 군사정전협정(휴전협정)을 파기하고 미·북한 두 나라 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93년 체코 대표단을 중립국 감시위원회에서 철수하게 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스스로도 군사정전위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했고, 중국을 철수하게 유도한 바 있다. 올해 폴란드 대표단을 중립국 감시위원회에서 철수하게 한 것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북한이 미국을 한반도 분쟁의 직접 당사자로 인정하는 근거는 53년 7월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맺은 정전협정이다. 협정 당사자는 당시 유엔군 사령관 해리슨과 북한의 남 일 인민군 사령관이다. 따라서 평화협정도 당시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휴전협정을 파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북한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어, 한국 정부는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공세를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핵 협상과 경수로 협상을 거쳐 미·북한 관계가 개선될 경우 한국 정부가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국민적 정서도 정부에 부담이 된다. 북한 의표 찌르는 공격적 외교

남북 관계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한 정치외교학자의 주장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이런 정황 때문이다. 연세대 문정인 교수는 지난해 12월에 열린 한국정치경제학회 주최 통일관계 세미나에 이어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발행하는 월간 <통일경제> 5월호를 통해 ‘전략적 공세주의’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국제질서 개편과 남북관계의 재평가>라는 이 논문의 부제가 바로 ‘전략적 공세주의를 위한 제언’이다.

그는 전략적 공세주의를 한국 정부가 평화협정 공세를 벌이는 북한의 의표를 찌르는 동시에 남북관계와 미·북한 관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공격적 외교 노력이라고 정의했다. 가만히 앉아 북한과 미국의 협상을 바라보고 있다가는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혼선만 빚을 뿐 아니라 외교적 패배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이다. 이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그는 두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는데, 둘 다 공세주의라는 말에 걸맞는 ‘기상천외한’ 것들이다.

우선 실질적인 분쟁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한 휴전협정을 한국 쪽이 먼저 일방적으로 파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유엔군사령부와 정전위를 해체하고, 유엔사로서의 주한미군의 성격을 없애자는 주장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실질적인 구속력이 없는 휴전협정이라는 근거로 미국 카드를 활용하지 못하고 한국을 유일한 분쟁 당사자로 인정하게 해 남북한 간의 직접 협상에 임하게 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는 잠정적인 휴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남북한은 법적 장치 없는 사실상의 군사 대치 상태에 들어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주한미군의 존재다. 북한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이 주한미군 철수에 있다면,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휴전협정을 파기하더라도 북한은 주한미군이 철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과 평화협정을 맺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의 성격을 바꾸기 위한 또 다른 조처가 필요하다.

문정인 교수는 그 방편으로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체제를 구성해 그 일원으로 주한미군을 잔류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중국·러시아가 주한미군을 역내의 안전판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 잔류를 전제로 한 다자간 안보협력이 가능하고, 북한측의 거부감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북한이 이 방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는 주한미군을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전환시키거나 미·북한 간에 군사동맹을 맺게 해 북한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아이디어다.

북한의 의표를 찌르자는 이 묘안들은 일단 정부 당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듯하다. 아직까지 전략적 공세주의라든가 휴전협정 파기,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와 관련한 공식 논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 한편의 논문은 꽤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이란 것이 늘 그렇듯 전략적 공세주의는 논리적 타당성을 떠나 현실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외교안보연구원 유석렬 교수는 “외교 무대는 아이디어의 실험장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휴전협정의 일방적 파기는 남북한 간의 군사 대치뿐만 아니라 국제법상으로도 물의를 빚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교수는 “정부가 북한의 논리에 대해 구태의연한 대응 논리만 붙들고 앉아 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를 자문해 보자”고 주장한다. 과연 국익을 걸고 한판 벌이는 외교 무대에서 발상의 전환은 가능할까. 또 좋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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