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시라크 끌어안기'
  • 베를린·金鎭雄 통신원 ()
  • 승인 1995.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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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파리 새 정부에 의구심…신중히 끌어안기에 나서
미테랑에서 시라크로 넘어간 프랑스의 정권 교체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국가는 이웃 독일이다. 라인 강을 동서로 갈라 마주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는 지리적으로는 가까워도 정치·사회적으로는 먼 이웃이다. 그동안 콜과 미테랑은 유럽연합을 이끄는 두 축으로 오랜만에 정치적으로도 서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란 논평도

지난 5월7일 대통령 선거에서 엘리제궁 입성에 성공한 자크 시라크 신임 프랑스 대통령도 미테랑으로부터 정권을 넘겨 받은 다음날인 5월 18일 곧바로 콜 총리를 만났다. 이웃 파트너와의 만남을 두 정상이 중요하다고 공감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파리·본 간의 정치적 일기 예보는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 14년간 집권한 미테랑 전임 대통령은 ‘유럽을 프랑스로, 프랑스를 유럽으로’라는 기치로 유럽 통합에 열성적이었다. 이에 비해 히틀러·나치라는 지울 수 없는 전과가 항상 따라다니는 독일은, 우선 유럽 내에서 신뢰 회복과 아울러 유럽연합의 선두 위치를 차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테랑과 콜의 공통 이해는 ‘파리·본’이라는 두 수레바퀴를 형성하면서 유럽연합을 향해 질주해 왔다. 81, 83년에 각각 집권한 미테랑과 콜이 유럽 통합을 위해 서로 라인 강을 넘나든 횟수는 무려 90여 회에 달한다. 두 사람의 가장 커다란 작품은 양국을 주축으로 한 유럽군 창설(92년)이었다. 나폴레옹부터 히틀러까지 네 차례에 걸친 양국 간의 전쟁을 거울 삼아 쌍방의 평화를 보장하고 공동 방위정책을 취하려는 상호 인식의 결과이다.

그러나 미테랑·콜에서, 시라크·콜로 바뀐 유럽연합행 기차의 속도는 훨씬 느려질 것으로 독일측은 판단하고 있다. 유럽 화폐 통합, 외교·치안·국방의 공동 노선을 골자로 한 마스트리히트 조약 확대, 동유럽권의 유럽연합 편입 문제 등 앞으로 양국이 단일 유럽을 향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단일 통화 없는 단일 시장이 불가능한 만큼 이에 대한 양국의 합의는 중요하다.

사회당 소속 미테랑과 달리 신 드골주의 우파인 시라크는 ‘선 국가, 후 유럽’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프랑스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독일의 한 언론은 점치고 있다.

독일의 우려는 시라크의 정치 노선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양국 간에 뿌리 깊은 상호 불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유럽 통합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던 미테랑·콜 밀월 시기에도 ‘독일은 유럽에서 정치·경제·군사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프랑스의 통화·재정 정책이 어떤 것인지 모호하다’는 등 서로 상대방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했다. 이미 63년 아데나워와 드골이 상호 교류 증진에 합의했으나 양국 간에는 아직도 그 흔한 의회나 정치권 간의 정기 교류조차 없는 상태이다.

한 영국 언론인은 “독일과 프랑스는 몸보다는 머리로 관계를 유지하는 특이한 이웃이다”라고 양국 관계를 평가했다. 의식 구조에서도 양국민은 판이하다. “독일인·프랑스인이 동시에 웃는 프로는 영국 코미디뿐이다”. 독·불 합작으로 운영되는 텔레비전 방송 <아르트>가 양국민 간의 극복키 어려운 의식 차이를 실토한 예이다.

새 파트너 시라크는 껄끄러운 상대이다. 시라크에 대한 독일측의 평가는‘구세대 인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항상 변하는 인물’ ‘실용주의자’ 등 다양하다. 한마디로 ‘요주의 인물’이다.

파리 새 정부에 대한 콜 정부의 자세는 대단히 신중하다. 즉 일단 불신하지 말 것, 가슴으로 포용할 것, 그리고 측근 인물들과 개인적 접촉을 강화할 것 등이다. 프랑스가 유럽연합에서 모터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한 시라크를 끌어안고 독일이 선도하는 유럽연합을 건설하려는 콜의 전략이다.

지난 5월18일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콜과 시라크는 서로 좋아하는 음식, 즉 시라크는 송아지 머리 고기, 콜은 자우마겐(돼지 위장에 고기 등을 넣어 만든 음식)을 먹으며 정답게 상견례를 하였다. 그러나 유럽연합이라는 공동 식단을 놓고 콜과 시라크가 단일 메뉴를 택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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