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쇠' 설 땅 없는 선진국 청문회
  • 張榮熙·崔寧宰 기자 ()
  • 승인 1997.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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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선진국’ 미국, 충분한 시간·예산 투입해 진실 철저 규명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3층의 러셀룸. 높다란 돔형 천장이 인상적인 이 회의실은 지난 40여 년간 청문회를 통해 미국의 굵직한 정치 드라마가 연출된 무대로 이름이 난 곳이다. 리처드 러셀 상원의원의 이름을 딴 이 회의실은, 미국내 공산주의 침투 여부와 관련된 54년의 이른바 매카시즘 청문회, 닉슨 대통령을 몰락시킨 73년의 워터게이트 청문회, 박동선 사건과 관련된 76년의 코리아게이트 청문회 등이 열린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87년 7월7일 화요일 오전 9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근무하는 미국 해병대 현역 중령 올리버 노스가 이 러셀룸의 증인석에 앉았다. 미남형 얼굴의 노스 중령 옆에는 워싱턴 법조계에서 날카롭기로 소문난 브렌덴 설리번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이들의 정면에 부채 모양으로 배치된 좌석에는 이들을 옥죌 상·하원 의원 26명과 의원의 법률 고문들, 그리고 의원 비서관들이 앉아 있었다.

의원석 가운데에는 워터게이트 청문회 때 송곳 질문으로 명성을 날린 일본계 대니얼 이노우에 위원장(상원의원)이 자리를 잡았다. 15개월 동안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이란콘트라 청문회의 뚜껑이 막 열릴 참이었다. 러셀룸에 조명이 훤히 밝혀지고 텔레비전 카메라들이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청문회장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이노우에 위원장이 개회 선언을 하자 하원측의 수석 법률 고문인 존 닐스가 증인 노스 중령을 상대로 신문을 시작했다. 이 날 노스는‘나는 좋은 일 나쁜 일 추한 일 등 모든 진실을 말하러 이곳에 왔다’는 명언을 남기며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으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기억이 없다’며 답변을 회피하려 들었고, 줄곧 자신의 행동이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매년 3천회 이상 청문회… 의원 재선 관건

하지만 철벽 같던 노스도 청문회장에서 버텨낼 재간은 없었다. 그는 결국 ‘내가 알기로는’이라는 서두로 사건의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에 능수능란한 법률 고문들이 철두철미한 조사 자료를 들이대며 며칠에 걸쳐 집요하게 추궁하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청문회 첫날 닐스 고문과 노스 중령이 쏟아놓은 말의 양은 1백30여 쪽짜리 책 분량과 맞먹었다.

이 청문회의 타워위원회는 레이건 대통령 등 증인 56명을 조사하고 청문회를 종결하면서 무려 5백5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문제점, 레이건 통치 스타일의 결함, 정부 부처간 마찰, 비밀 외교 작전의 위험성 등을 꼬치꼬치 지적해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다.

‘의회 정치의 꽃’이라는 청문회가 발아한 곳은 영국이지만, 이를 수준 높게 발전시킨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인들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청문회를 보면서 정치의 진수를 맛본다. 이정희 교수(한국외국어대·의회정치)의 지적처럼 청문회는 일반 국민이 의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국민의 지대한 관심이 쏟아지기 때문에 의원들도 죽기살기로 청문회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재선을 꿈꾸기가 힘들 정도이다. 의원들의 정치 생명이 청문회 활동으로 판가름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국 의회 청문회는 세계의 눈과 귀를 자극했던 큰 사건만 다룬 것이 아니다. 하원의 경우 위원회별 청문회 개최 수가 매년 3천회 이상이 될 정도로 ‘청문회 정치’가 일상화해 있다. 입법 청문회와 감독 청문회가 많지만, 역시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권력형 비리 의혹을 캐는 조사 청문회이다.

워터게이트·이란콘트라 4∼5개월 사전 준비

미국의 청문회가 행정부 견제나 권력형 비리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귀감으로 떠오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 의회는 청문회 전에 철저한 조사를 한다. 워터게이트와 이란콘트라 사건은 사전 준비 기간이 각각 5개월과 4개월이었다. 이 기간에 소관 위원회나 특별위원회 위원, 보좌관 등은 증거 자료를 찾아내기에 혈안이 된다. 이들은 입법조사국 등 의회 지원 조직을 활용함은 물론 백악관·연방수사국(FBI)·중앙정보국(CIA) 등 주요 권력 기관과 행정부에 자료를 요청한다. 자료 제출을 요청받은 측은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극히 일부를 빼고는 공식 문건이나 비망록에 이르기까지 관련 자료 모두를 내놓아야 한다.

관련 로비 단체나 연구소, 학자 등에게서도 도움을 받는다. 어느 청문회에서도 ‘극비 문서’라는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문서들이 즐비하며, 어디서 찾아냈는지 손으로 쓴 메모 쪽지들도 볼 수 있다. 이런 비밀 자료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정식 요청하여 얻는 경우가 많지만, 개별적으로 은밀히 추적해 입수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결정적 자료는 의원 개개인이 소지하는 것이 아니다. 각 의원이 찾아낸 자료는 모두 취합해 방대한 양의 백서로 묶인다. 소속 정당을 떠나 위원회가 진실 규명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법률 고문 등은 이것을 토대로 증인을 옴짝달싹 못하게 할 신문 백서를 만들며, 또한 이 백서는 증인측에도 미리 제공해 신문에 대비하게 만든다. 결국 이 백서를 바탕으로 쫓고 쫓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공방전은 엄격한 ‘게임 룰’에 바탕해 공정하게 치러진다. 증인은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추궁을 당할 뿐, 신상과 관련된 모독 등 어떠한 인권 유린도 받지 않는다.

의회측 법률 고문이 주로 신문

이 게임에서 의원과 증인 간의 공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청문회는 최고의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온 증인과 의회측 법률 고문과의 싸움이다. 의원들도 신문을 할 수 있고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신문의 주역은 법률 고문이다. 이들이 의원보다 훨씬 뛰어난 신문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 고문은 하루 종일, 때로는 며칠씩 증인을 물고늘어진다. 이에 맞서 증인은 변호사의 지원을 받아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정치학자들이 미국의 조사 청문회를 ‘법정 드라마’‘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정치 무역’‘진실을 캐내는 탄광’이라고 평하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미국의 청문회는 또한 엄청난 시간과 예산을 투입한다. 시간에 쫓기거나 조사 활동비가 적어 부실해질 염려가 있는 청문회는 아예 만들지 않는다. 미국 의회 회계국 자료에 따르면, 이란콘트라 사건은 완전 종결될 때까지 무려 7년이 걸렸고 4천7백40만달러(4백26억원)라는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

주택도시개발부 부정 사건(90년 3월)은 6년(2천6백43만달러), 화이트워터 사건은 2년 6개월(2천 2백29만달러)이 지나 일단락되었지만, 화이트워터 사건의 경우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채 클린턴 부부를 위협하고 있다. 앞으로 열릴 클린턴 대통령과 민주당의 선거 자금 스캔들 청문회에서도 상·하원은 총 8백만달러를 조사 비용으로 책정했다. 이 액수는 불법성으로 문제가 된 선거 자금(3백만달러)보다 많아 결국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청문회 무용론이 거론되지는 않는다.
몇 달에 걸친 철저한 조사와, 시간 제한을 두지 않는 신문 방식이야말로 미국 청문회가 진실을 캐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미국 청문회가 성공하는 또 하나의 비결은 사법부의 특별검사제가 발동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예산이 많이 드는 것도 청문회 외에 특별 검사가 임명되어 수사를 벌이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나 이란콘트라같이 큰 사건에서는 어김없이 청문회 신문과 특별 검사의 수사라는 양동 작전이 펼쳐졌다.

특별검사가 임명되는 까닭은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 거의 모든 사건에 대통령 등 행정부 고위 관리가 연루되기 때문에 같은 행정부의 법무장관이 검사를 지명할 경우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감형 ‘당근,’ 위증·모독죄 ‘채찍’ 적절히 활용

의회는 청문회에 앞서 증인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 증인에게 ‘당근’을 주기도 한다. ‘특전’으로 불리는 제한적 면책 특권이 바로 그것이다. 피의자가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검사와 변호사가 협상을 통해 형량을 줄여주는 법정 제도인데, 청문회가 이 제도를 차용한 것이다. 샘 어빈 상원의원이 위원장이었던 워터게이트 청문회 때 사건 내막의 결정적 단서를 쥐고 있는 백악관 법률 보좌관 존 딘의 입을 열게 한 것도 이 제도이다.

청문회는 또 기소를 아예 면제해 주기도 한다. 해당 위원회가 의혹 규명의 열쇠를 증인이 쥐고 있다고 판단했을 경우 기소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위원회가 핵심 증인을 불러낼 때 소환하기 전에 위원회와 증인의 변호사 간에 끈질긴 법률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청문회에서 비교적 정직하고 소상하게 답변하는 것은, 이같이 마치 흥정에 가까운 제도적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지, 그들이 남달리 정직해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청문회는 ‘채찍’ 전술도 구사한다. 출두를 거부하거나 발뺌식 답변으로 일관할 경우 의회는 강제 소환장을 발부하거나 의회모독죄로 증인을 기소할 수 있다. 최근 헤럴드 이키스 전 백악관 비서실 차장이 민주당 선거 자금 모금에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관여했다는 내부 자료를 하원에 제출하게 된 것도 소환장 발부라는 무기를 활용한 덕택이었다.

청문회장에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증인은 물론 거짓말을 할 권리(?)가 있기는 하지만, 위증죄가 아주 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도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미국처럼 증인을 압박하는 장치로는 사용하지 못했다. 95년 11월 서울지검은 88년과 89년 당시 국회 5·18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위증한 혐의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으로부터 고발된 전두환 전 대통령 등 7명을 친고죄라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민변이 아닌 국회가 고발해야만 위증죄가 성립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처음 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것은 13대 국회 때인 88년 6월이다. 그 첫 결실은 88월 11월 5공 특위의 일해재단 비리 조사와, 5공 비리 조사 청문회였다. 우리는 이 ‘한국형 정치 드라마’를 지켜보았다. 최근의 한보 청문회도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증인의 입에서도 입발림으로나마 ‘모든 진실을 말하겠다’는 말과 송곳 같은 신문은 아직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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