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고’ 중동에 젖과 꿀 흐를까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5.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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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의 열며 경제 협력 모색…라빈 피살로 불투명해져
“원대한 개발 계획 물거품될 것” 비관론도

지난해 11월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개최된 제1차 경제 정상회의가 각국 대표들의 상견례 정도에 그쳤던 데 반해, 이번 회의는 실질적인 경제 교섭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한 단계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카타르가 이스라엘과 20억달러 규모의 천연가스 수출에 합의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지난 48년 이후 단절돼 왔던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의 경제 교류가 처음으로 돌파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랍 국가들로 구성된 걸프협력위원회(GCC)는 이스라엘과의 모든 경제 거래를 금지해 왔다. 제3국을 통한 간접 교역도 중단됐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의 간접 교역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요르단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에 취해진 조처였다. 그리고 그 실질적인 결실이 이번에 이스라엘과 카타르 간에 나타난 것이다.

이번 중동 경제 정상회의는 중동 지역의 협력과 경제 건설에 중대한 이정표가 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새로운 협력 분위기를 깨뜨릴 요인들도 적지 않다. 우선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 분쟁 요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시리아와 레바논·이란·이라크·리비아가 불참한 것은 이번 회의의 불안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에 불참한 국가 중에서 이라크와 리비아는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회의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 그리고 시리아·레바논·이란은 초대는 받았지만 미국·이스라엘과의 적대 관계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다. 특히 시리아는 이스라엘이 67년 점령한 골란 고원에서 완전히 철수하지 않는 한 교류와 협력을 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밖에도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주도권 장악을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경제 수준이 아랍 세계를 필요로 하는 단계를 벗어났다고 주장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시리아를 성원하는 많은 아랍인들의 마음 속에는 그같은 우려가 잠재돼 있다.

게다가 이번 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조차 이스라엘과 완전히 갈등을 해소했다고 볼 수는 없다. 회담 기간에 벌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집트 간의 설전이 이를 반증한다. 회담 첫날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은 이집트의 강경 자세를 공격했다. 79년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81년 무바라크 대통령이 등장함으로써 전혀 경제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그는 또 “예루살렘은 한번도 팔레스타인의 수도였던 적이 없다”고 말해 팔레스타인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산적한 문제들 때문에 중동 개발의 장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각국이 원대한 계획들을 세우고 있지만, 결국은 꿈으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비관론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 직전에 세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는 중동의 장래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계은행은 ‘장래의 기대’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이 지역 국가들이 확고한 개혁 의지와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80년대에 보여준 5%대의 경제성장을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 지역을 새로운 경제성장 지대로 바꾸려는 노력이 시련을 맞고 있다. 지난 4일 중동 평화에 앞장서온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라빈은 92년 총리 직에 오른 뒤 오랜 숙적 관계였던 팔레스타인·요르단과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주변 아랍 국가들과 경제 협력을 적극 모색해왔다.

지난 10월29일부터 사흘간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열린 제2차 중동·북아프리카 경제 정상회의도 그의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이었다. 이번 회의에는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국가들뿐 아니라, 전세계 약 60개국에서 정부 및 업계 대표 천여 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 회의는 결국 라빈 총리가 실용 외교를 펼쳤던 마지막 국제회의가 되었다. 라빈총리가 암살됨으로써 중동 평화에 먹구름이 드리워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 지역 전문가들은 암살범이 아랍계가 아니라 이스라엘 청년이고, 총리 대행을 맡고 있는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이 중동 평화 정착에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협력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경제 정상회의에서 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은 다양한 개발 계획을 제시하고, 서방 국가들의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들이 구상하고 있는 개발 계획의 성패는 자본을 얼마나 마련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스라엘은 2백50억달러가 소요되는 개발 계획을 2백18개 제시했다. 그 가운데는 홍해에 국제 공항을 건설한다는 것과 광섬유 통신 시스템을 갖추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 팔레스타인은 총 60억달러 규모의 사업 계획을 내놓았다. 팔레스타인은 30년 이상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았고 8년간 정치적 불안정을 겪어 경제가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이번 경제 정상회의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팔레스타인이 제시한 개발 계획에는 50만달러가 소요되는 철강 공장 건설에서부터, 요르단 강 서안에서 가자지구로 물을 끌어들이는 15억달러 규모의 토목공사까지 다양한 사업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 모로코(80억달러), 요르단(35억달러), 이집트(30억달러), 바레인과 카타르 등이 각자 마련한 개발 계획들을 세계 각국 대표에게 설명하고,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섰다. 이들 국가가 제시한 사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모두 4백억달러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것은 중동 각국의 경제 사정을 고려하면 엄청난 비용이다.

정치 불안·유가 하락으로 퇴보 거듭해

따라서 이들 국가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중동·북아프리카 경제협력개발은행’(MEDB·중동개발은행)을 설립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집트 카이로에 설치될 이 은행은 민간 기업들을 지원하고, 역내 국가 간의 공동 프로젝트를 장려하며, 정부간 정책 토론의 장을 제공할 것이다. 이 은행은 앞으로 2년 안에 업무를 시작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은행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것이다. 회의 첫날 중동개발은행의 자본금 규모는 백억달러로 책정되었다. 그러나 회의가 진행되면서 그 규모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유럽연합(EU)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중동개발은행을 설립하지 말고 기존 세계은행을 이용하면 된다는 입장을 강하게 내비쳤고,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들을 군사·경제적으로 장악할 것을 우려해 한푼도 내놓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이들은 미국의 강력한 입김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개입하고 있는 상태다. 중동개발은행에 돈을 대는 데 망설이는 것은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라빈 총리 암살 사건에서 보듯이 중동 지역은 끊임없이 계속된 테러와 정치 불안에 시달려 왔다. 이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할 때에도 중동 국가들은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했다.

최근 세계은행이 발표한 통계를 통해서도 그같은 추세는 쉽게 확인된다. 지난 10년간 이 지역 국가들의 1인당 국민소득은 매년 0.2%씩 감소해 왔다.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러면서도 역내 국가 간의 경제 교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지역 국가들의 전체 교역량 가운데 역내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9%였다. 게다가 아랍 국가들 내에서도 주도권 다툼으로 협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지역 경제를 어렵게 한 요인으로는 대략 세 가지가 꼽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테러와 정치 불안이다. 이 때문에 외부로부터 자본이 거의 유입되지 않았다. 전세계 개도국에 투자된 자본 가운데 중동 지역에 투자된 액수가 0.4%라는 통계가 그같은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동은 투자 대상지로서의 매력을 완전히 상실했던 것이다.다음으로 86년 이후 원유 가격 하락을 들 수 있다. 이 지역 국가들의 수출품 가운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원유 가격의 하락은 이 지역 경제에 크게 타격을 가했다. 도표에서 보듯이 86년을 경계로 이 지역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심한 편차를 보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각국의 경제 규모가 작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경제 규모가 작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최근 중동·북아프리카 국가들 간의 경제 협력은 이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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