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에 백기 든 영국
  • 베를린·金鎭雄 통신원 ()
  • 승인 199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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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유전 원유탱크 해저 처리, 그린피스 육탄 방어로 불발…독일, 국민 여론 업고 맹비난
최근 북해 원유 저장 탱크의 폐기 방법을 놓고 영국 원유회사 셸(Shell·네덜란드의 로열 더치사와 6:4의 지분을 공유한 다국적 석유 메이저)과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 사이에 일대 접전이 벌어져 그린피스가 승리를 거두었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육지 처리 대신 해저 폐기를 관철하려던 셸측과, 환경 오염을 우려해 이를 적극 제지하려는 그린피스 간에 북해상에서 펼쳐진 몸싸움은 영국과 독일 간의 긴장으로까지 비화하였다. 결국 지난 6월20일 셸측이 해저 폐기 계획을 포기함으로써 수습의 가닥이 잡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린피스의 저지 작전보다 그것에 호응해 독일에서 전개된 강력한 셸 반대 운동이 더욱 관심을 끌었다.

“영국을 유럽공동체에서 내쫓자”

이번에 문제가 된 브렌트 스파(Brent Spar)는 북해에서 끌어올린 원유를 유조선으로 운반하기 앞서 임시로 저장하는 수백 개의 해상 원유 탱크 중 하나이다. 중량 1만5천t, 높이 1백37m, 너비 29m에 달하는 브렌트 스파는 마치 유조선을 수직으로 세워 놓은 모습이다. 물속에 잠긴 중심부는 원유 저장 탱크, 해상으로 돌출한 상부(약 28m)는 수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레스토랑·극장 등 위락시설, 옥상은 헬기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 원유회사 셸이 76년에 세운 이 해상 원유 탱크는 불과 몇년 후 해저 원유 파이프라인이 건설돼 쓸모없는 시설로 전락하고 말았다. 따라서 소유주 셸측은 쓸모없게 된 브렌트 스파를 해상 폭파하여 바다 속에 가라앉히려 했다. 즉 현재 위치 셔틀랜트 섬 동북쪽 1백80㎞에서 섬 서쪽 2백40㎞ 지점으로 옮겨 해체하려 했다. 이곳은 바다 깊이가 2천㎞에 달해 하치장으로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동안 해상 폐기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으나 셸은 육지로 이송해 분해·처리하는 데 드는 엄청난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해상 폐기를 고수해 왔다.

그린피스가 주장하는 육지 매립 처리에 드는 비용은 4천6백만 파운드(약 5백61억원)이며 이에 반해 해상에서 처리하는 비용은 1천1백80만 파운드(약 1백44억원)가 소요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따라서 셸은 경제성을 고려하여 해상 처리를, 그린피스는 환경 오염을 이유로 육지 이송 처리를 주장해 왔다. 앞으로 폐기 처리해야 할 해상 원유 탱크는 북해에만 4백16개나 있다. 영국 2백8개, 네덜란드 1백6개, 노르웨이 71개 그리고 덴마크 31개이다.

셸측은 시설 허가 기간 만료가 임박함에 따라 지난 6월12일 브렌트 스파를 해상 처리하기 위해 시설물 이동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국제 환경 파수꾼 그린피스는 선박과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여 브렌트 스파를 점령하려 했고 셸은 ‘물세례’와 ‘밀어내기’로 이들을 따돌리곤 했다. 해상 수중전을 방불케 한 양측의 몸싸움은 언론을 통해 속속 보도되었고, 전 유럽인들의 이목은 자연히 북해에 집중되었다.

특히 평소 환경 문제에 민감한 독일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독일 언론들은 연일 톱뉴스로 이 사건을 다루었고, 정치인들은 환경 오염 주범 셸과 이를 허가해 준 영국 정부 처사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셸에 대한 분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정치인·언론·국민이 일치단결하여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셸을 지옥으로 보내자’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대대적인 셸 불매운동을 벌였다. 시장점유율 13%로 독일내 2위의 판매고를 자랑해온 셸 산하 주유소 1천7백23개의 기름 판매량이 20~50% 정도 감소했다. 심지어는 셸 주유소가 총탄 세례를 받거나 방화돼 전소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나아가 셸을 뒤에서 강력히 뒷받침해 온 영국 정부에 대한 비난도 극에 달했다. 독일 여론은 셸이 원유 탱크를 해상 폐기하도록 허가한 영국 정부를 비난하고 ‘영국을 유럽공동체에서 제외하자’며 흥분했다. 때마침 캐나다에서 열린 서방 7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한 콜 총리는 영국의 메이저 총리에게 강한 불만을 표했다.

영국 정부는 독일 영역 내에서 폐기 처리하는 것도 아닌데 독일이 지나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내정 간섭이라고 불쾌해 했다. 존 검머 영국 환경장관은 “우리는 환경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해저 처리 방법을 선택했다”고 반격했다. 특히 독일 정부가 92년 브렌트 스파를 해저 폐기하는 데 동의·서명해 놓고는 이제 와서 국민들의 인기에 영합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처사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네덜란드 덴 하크에 있는 셸그룹 본부도 자기네 행동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하고, 독일 정부에 대해 “앞으로 독일내 투자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경고하였다.
북해 유전 개발 계속하면 갈등 재발

독일을 제외한 주변 국가들은 독일의 과민 반응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르웨이 환경장관은 육지 폐기 방법에 회의적인 반응을 표명하고, 유해 물질을 제거한 후 바다에 침수시키는 방법이 최선책이라고 언급했다.

원유 탱크 브렌트 스파를 바다에 침수 처리해도 바다 오염에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모래 90t, 폐유 10t 등 모두 백t의 쓰레기가 바다에 흘러 들어갈 뿐”이라고 말한다. 이 점은 그린피스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우리의 행동은 하나의 상징이다. 브렌트 스파의 해저 폐기를 허용하면 앞으로 선례가 되어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번 셸 저지작전 성공으로 유명해진 틸로 보데 독일 그린피스 책임자의 주장이다.

그린피스는 이번 사건을 통해 전세계에 환경 문제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한편 침체에 빠져 있는 조직의 활성화를 노리고 있다. 70년 민간 환경보호단체로 출발해 현재 세계 30개국에 조직망을 확대한 그린피스는 5년 전부터 회원국 간의 내부 갈등과 재정 부족으로 위기 상태에 놓여 있다. 다른 회원국들의 소극적인 활동에 비해 독일의 그린피스는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약 2백만명의 그린피스 회원 중 독일 회원은 50만명이 넘고 연간 총 운영예산 4천만달러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2천7백만달러를 독일이 부담하고 있다.

한편 독일 정부는 국민들의 강력한 셸 보이콧을 거역할 수도 없었지만, 이를 내심으로 바라는 바였다. 일찍이 50, 60년대 경제 부흥의 부산물로 환경 오염이 심각해진 독일은, 현재 환경 문제에 어느 나라보다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독일은 GNP의 1.7%에 해당하는 4백억마르크(약 21조8천8백억원)를 환경 분야에 지출했다. 까다로운 환경관련법으로 독일 기업은 국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환경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한 덕분에 90년대 초 독일은 3백50억마르크(약 19조1천4백50억원) 상당(총 수출의 6.6.%)의 환경기기를 수출했다. 독일의 이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은 21%로 미국(16%)이나 일본(13%)을 제치고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독일은 수출 전망이 밝은 미래 산업으로 환경 분야를 중점 육성하고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진다는 것은 곧 독일의 수출 증가를 의미한다.

북해 유전은 60년대에 처음 발견된 이래 영국 정부의 재정을 크게 호전시켜 영국 경제에 효자 노릇을 해왔다. 영국의 원유 수출액은 지난 20년간 모두 1천7백억달러 상당에 이르렀다. 영국은 81년부터 석유를 완전 자급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세계 9위의 석유 생산국으로 발돋움했다.

환경론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북해 유전 개발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그런 면에서 이번 셸과 그린피스 접전은 서막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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