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의 ‘삼풍 보도’는 한국 깎아내리기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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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피해·원인 연일 대서특필… ‘한국 깎아내리기’ 속셈도 엿보여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직후 일본 언론들의 활약이 크게 눈에 띄었다. ‘활약’이라고 해서 그들이 인명 구조에 어떤 기여를 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번 참사를 되풀이 보도함으로써 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는 데 일조했다는 얘기다.

일본의 주요 신문들은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직후부터 1면·국제면·사회면 등을 이용해 이 사건의 피해 상황과 사고 원인을 반복해서 집중 보도해 왔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제일 권위 있는 신문으로 알려진 <아사히 신문>은 사고 이튿날인 6월30일 1면 머리 기사로 대문짝만한 제목을 내걸고 ‘고도성장의 왜곡이 이런 참사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그밖의 일간지들도 작년 10월의 성수대교 붕괴 사고,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고, 지난 4월의 대구 지하철 공사현장 가스폭발 사고를 차례로 지적하며, ‘부실공사 영구추방 직후에 또 대형 사고’(<산케이 신문>) ‘5층짜리 백화점이 순식간에 사라지다’(<요미우리 신문>) ‘외화내빈이 부른 참사’(<마이니치 신문>)라는 제목을 큼지막하게 내걸었다.

텔레비전 방송국들의 활약은 더욱 ‘눈부셨다’. 공영 방송 NHK는 사고 직후부터 현장을 위성 회선으로 연결하여 이 사고 보도에 무려 20분을 할애했다. 또한 민간 상업 방송들도 연 사흘째 이 사고를 톱 뉴스로 보도하는 열성을 보였다.

특히 일본 언론기관의 보도 중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주재원이나 유학생, 재일교포들의 마음을 크게 언짢게 한 것은 <산케이 신문>의 보도이다. 이 신문은 최근의 사고뿐 아니라 24년 전에 일어난 대연각호텔 화재 사고까지 들추어 가며, 한국이 마치 ‘대형 사고로 날을 지새는 나라’라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기 바빴다. 이 신문은 또한 사고 현장에 있던 일본 취재진이 한국인들로부터 ‘한국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악질 보도는 삼가라’ ‘일본 취재진은 저쪽으로 꺼져’라는 폭언까지 당했다고, 일본의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보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이라고 대형 사고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82년에 일어난 뉴저팬호텔 화재 사고가 대표적인 예다. 도쿄의 한복판 아카사카에 위치한 일류 호텔의 9·10층 객실 전체가 한 영국인이 버린 담배꽁초로 말미암아 완전히 타버린 사고다. 이 사고로 외국인 22명(그 중 한국인은 8명)을 포함한 33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했다. 사고가 이렇게 커진 것은 어이없게도 일류 호텔답지 않게 스프링클러 시설이나 방화벽 구조가 전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 때 인명 구조에 방해가 된 것은 일본 취재진뿐만 아니다. 국내 언론들도 과열 취재 경쟁으로 독자나 시청자들로부터 빗발친 항의를 받은 바 있다.

외국 언론기관들의 사건 취재에 불친절하기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한신 대지진을 취재하면서 기자 역시 수없는 저항을 받았다. 교통정리를 하던 교통 경찰에게 길을 물었더니 그는 바쁘다는 듯 기자의 질문을 끝내 무시했다. 또 붕괴 현장에서 시체를 끄집어 내던 이재민들은 사진 촬영을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방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언론들은 고베 시민들의 질서 의식을 크게 보도하는 등 밝은 측면을 강조하려고 노력했지 이웃 나라의 비극을 비웃지는 않았다. 지진 발생 다음날 24시간 편의점 ‘로손’이 주민들에게 약탈당하고(<주간 문춘> 보도), 사흘간에 좀도둑 사건이 2백여 건이나 발생(<주간 아사히> 보도)했는데도 말이다.

“한국 상품 수출에 타격” 주장까지

일본 언론들이 이번 사고를 집요하게 추적해 보도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좋게 해석하면 자국민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한 통계에 따르면, 일본인은 현재 4천여 명이 한국에 상주하고 있다. 단기 체류 여행자까지 합치면 하루 평균 5만여 명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대형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일본 언론들이 자국민의 안전을 확인하려고 취재 경쟁을 벌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번 사고에 피해를 당한 일본인은 경상을 입은 여성 1명이었다.
<산케이 신문>의 이번 사고에 대한 분석도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다. <산케이 신문>은 서울 특파원이 쓴 기사에서 ‘이번 사고의 직접 원인은 날림 공사에 있지만, 한국인들의 ‘괜찮아요 정신’, 즉 적당주의가 이번 참사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또 이번 사고로 한국 상품의 이미지가 떨어져 수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고로 한국의 건설업계가 해외 수주 활동에 적지 않은 애로를 겪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가 한국 전체의 수출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주장에서는 어떤 저의가 엿보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라이벌인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데 이번 사고를 최대한 활용해 보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지 않으냐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이런 한국 공격이 시작된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예를 들어 평론가 고무로 나오키(小室直樹)는 삼풍백화점 건설이 시작될 무렵 <한국의 비극>(85년) <한국의 저주>(86년) <한국의 붕괴>(88년)라는 책을 잇달아 펴내고, 한국의 고도 성장은 곧 멈추게 돼 일본과의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한 근거로서 한국 경제의 재벌 편중 현상, 기술자를 경시하는 양반 정신, 능력보다는 혈연관계를 중시하는 동족 경영 경향을 들었다.

또 이번 사고 때 일본 언론에 자주 등장한 한국인의 ‘괜찮아요 정신’이란 말도 실은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생겨난 말이다. 당시 한국 경제는 올림픽이 끝나자 불어닥친 이른바 ‘3고 현상(고금리·고임금·고유가)’으로 큰 위기에 봉착했었다. 일본 언론들은 이때 첨단산업을 개발하지 않고는 한국 경제가 소생할 길이 없다고 진단하고 한국인들의 ‘괜찮아, 괜찮아’하는 적당주의가 바로 큰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일본에게 한국이 ‘반면 교사’라는 점에서 일본 언론들이 큰 관심을 갖고 보도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한신 대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잦은 일본으로 볼 때 이번 붕괴 사고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일본은 매뉴얼 사회, 한국은 괜찮아요 사회”

예를 들어 한신 대지진 때 고속도로나 고층빌딩이 무너진 것은 일부 부실 공사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본에서는 외부 충격 없이 고층 건물이 저절로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번 사고를 참고하겠다는 태도가 엿보인다. 따라서 일본 언론들의 귀따가운 소리도 한국민은 교훈으로 받아들일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평론가 고무로는 삼풍백화점 건설이 시작될 무렵 한국식 자본주의의 문제점으로 족벌 경영·양반 정신을 들었는데, 삼풍이 바로 부자 간의 족벌 경영 때문에 문제가 일어난 백화점이다. 또 기술자, 즉 건축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했더라면 이번 참사는 얼마든지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사고이다.

고무로는 한국인의 양반 기질에 대조되는 일본인의 기질로 ‘쇼쿠닌 가타키(職人氣質),’ 즉 장인 기질을 들었다. 이 장인 기질은 산업계뿐 아니라 식당·꽃꽂이·춤 등 각 방면에 뿌리 박혀 있다. 일본인들은 조그만 식당이라도 몇대째 이어받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또 일본은 ‘매뉴얼 사회’이다. 조그만 레스토랑이라도 반드시 앉을 자리를 지정해 준다. 주인의 지시, 즉 매뉴얼을 종업원이 철저하게 지키기 때문이다.

융통성 없고 꾀죄죄하게 보이는 매뉴얼 사회 일본, 일을 성급하게 적당히 해치우려는 ‘괜찮아요 사회’ 한국. 그 차이가 바로 선진화의 차이라는 것이 일본 언론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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