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가미가제식 망언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5.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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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인들, 전쟁 범죄 감추려고 ‘침략 부정쭭사과’ 반복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히 체결되었다”는 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智雄) 망언이 튀어나온 이틀 후 <아사히 신문>은 ‘역사도 수치도 모르는 정치가’라는 사설을 실었다. <아사히 신문>은 명성황후 시해, 을사보호조약 강요, 그리고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외무장관까지 지낸 와타나베씨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반문했다.

와타나베는 본래 실언을 잘 하는 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미국 흑인들은 파산을 당해도 모르는 멍청이, 노인들에게 의료를 전액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불효 장려금, 은행이 정치력이 없는 것은 자민당에 돈을 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등 그의 실언을 일일이 세자면 한이 없을 정도다.

와타나베는 잦은 실언 때문에 늘 경박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또 자민당 정권이 무너진 뒤 세대 교체 바람에 밀려 최근에는 ‘한물 간 정치가’로 치부되어 왔다.

그러던 그가 지난 3월 말 연립 여당 3당 방북대표단의 실질적 단장을 맡아 평양을 방문했다. 또 북한의 이성록 국제무역촉진위원회 위원장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와타나베는 쌀 대여 주선을 의뢰 받고 이의 실현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대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아 실추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여 보겠다는 속셈에서다. 그러나 와타나베는 북한 역시 이전부터 한일합방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주장해온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무라야마 총리도 ‘침략 전쟁’ 인정 안해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이 와타나베에게 추파를 던져 온 것은 쌀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은 대일 수교 교섭에서 전전·전후 보상을 함께 요구해 왔다. 이 배상금·보상금을 지불하는 곳이 대장성이다. 그런 관계로 대장성장관을 지낸 와타나베는 북한에서 보면 효용 가치가 큰 인물이다.

그러나 북한 역시 그런 역사 인식을 갖고 있는 인물을 대일 관계의 중재자로 더 이상 활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북·일 수교 교섭의 중요한 이슈의 하나인 한일합방조약 문제를 왜곡함으로써 와타나베에 대한 북한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역사도 수치도 모르는’ 일본의 현역 정치가는 와타나베 한 사람뿐이 아니다. <아사히 신문>은 앞서의 사설에서 호소카와 총리가 김영삼 대통령과 경주에서 회담할 때 창씨 개명 등 구체적 사실을 열거하며 식민 지배를 사죄함에 따라 한·일 관계는 과거보다 미래를 지향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 호소카와 총리가 최근 ‘전후 50년 국회 결의’에 반대해 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호소카와가 국회 결의에 반대해온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이미 국회에서 충분한 토의가 이루어졌으며, 두 번째는 냉전 이후 민족·종교 분쟁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때 일본만이 ‘부전’을 외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역시 역대 총리가 국회에서 반성하고 관계 각국에 사죄해 왔으므로 사죄 결의는 의미가 없다고 국회 결의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그는 또 일본과 독일의 전쟁 범죄는 근본적으로 틀리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다시 말해서 히틀러에 의한 유태인 학살은 국가적 의지와 조직력이 저지른 범죄지만 일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친한파 총리 2명이 국회 결의에 반대해 온 공통점은 무엇인가. 말할 나위도 없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죄는 더 이상 필요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전후 50년 국회 결의’는 일본 역대 총리의 발언보다도 훨씬 후퇴한 애매한 표현으로 끝났다. 본래의 취지인 ‘부전’이란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을 뿐더러 사죄라는 단어도 들어 있지 않다.

또 침략 전쟁이라는 문구가 ‘침략 행위’도 아닌 ‘침략적 행위’로 둔갑했다. 따지고 보면 사회당 출신인 무라야마 총리도 국회 답변에서 침략 전쟁을 인정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무라야마 총리는 작년 말 중의원 세제개혁특별위원회에서 과거 일본의 행위가 침략 전쟁이었던가 아니었던가를 질문 받고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일본이 ‘침략적 행위’를 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침략 전쟁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므로 본인은 그 논쟁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 불과 몇달 전 그는 사회당 당수로서 국회 대표 질문 때 ‘침략 전쟁’어쩌고 했던 장본인이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의 정치가들은 ‘침략’이란 문구를 인정하는 데 이처럼 인색한가. 철학자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씨는 ‘일본의 근대가 부정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전 동대 학장 하야시 겐타로(林健太郞)씨는, 침략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단정을 내리면서도 좌익사관에 대한 반발에서 오는 반동심리 때문으로 풀이한다.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전후 50년 국회 결의’가 오래 지연된 것은 일본유족회·신사본청 같은 단체가 자민당에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유족회 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현 통산성 장관이다. 하시모토는 작년 10월 국회에서 “과거의 전쟁을 꼭 침략 전쟁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답변해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하시모토의 외조부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지낸 오노 로쿠이치로(大野綠一郞)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한국에 대한 그의 인식이 어떻다는 것을 짐작할 것이다.

중국 <인민일보> “이상한 일 아니다”

이 유족회의 후원을 받아 국회 결의 반대에 선봉장 노릇을 해온 것이 오쿠노 세이스케 전 법무장관이다. 그는 법무장관 재임중 헌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하다가 물의를 일으킨 바 있고, 88년 5월에는 “일중전쟁 때 중국을 침략할 의사는 없었다”고 발언해 국토청장관 직을 사임해야 했다.

오쿠노는 자민당 의원 2백12명이 참가한 국회결의 반대모임인 ‘종전 50주년 국회의원 연맹’의 회장을 맡아 대동아공영권회의와 같은 ‘아시아 공생의 제전’을 개최하고, “침략이란 영토나 재산 탈취가 목적인데 일본은 그럴 의사가 없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 의원연맹에 가담한 자민당 중진 의원들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외무장관을 역임한 나카야마·와타나베·무로, 자민당 3역 중의 한 사람인 모리 기시로 간사장…. 모리는 3년 전 자신의 모교인 와세다 대학 강연에서 “요코하마의 한 구역에 한국인 노동자 1천5백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들의 동태를 잘 감시해야 한다. 그들 대부분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사람들로 사격 솜씨가 대단하기 때문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한국인 유학생들을 격분케 했다.

야당 신진당의 국회 결의 반대 모임 ‘바른 역사를 전하는 국회의원 연맹’을 이끌어온 나가노 시게토 전 법무장관 또한 ‘역사도 수치도 모르는 현역 정치가’이다. 그는 작년 5월 하타 내각의 법무장관에 임명된 후 ‘남경대학살은 날조’라고 주장해 하타 총리로부터 파면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야당 신진당의 역사관을 실질적으로 좌우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오자와 이치로(小決一郞) 간사장이다. 그는 90년 4월 자민당 간사장 시절 노태우 대통령 방일을 앞두고 “언제까지 한국에 엎드려 절해야 하느냐”는 이른바 ‘도게좌(土下座)’ 발언을 해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또 91년 6월 <아사히 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한국이 반일 교육을 계속하는 한 한·일간 우호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일본 정치가들이 이러한 망언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얼마 전 중국의 <인민일보>에 ‘일본의 정치가는 왜 자꾸 실언을 하는가’란 칼럼이 실렸다.

이 칼럼에 따르면, 미군 점령군이 일본을 ‘반소 반공의 방파제’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에서 전범과 전쟁 협력자들을 모두 무죄 방면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후 일본의 다섯 번째 총리 하토야마와 여섯 번째 총리 이시바시는 패전 후 공직에서 추방됐다가 다시 복귀한 사람들이다. 나아가 일곱 번째 총리 기시는 A급 전범으로 수감됐다가 풀려난 ‘역사도 수치도 모르는’ 일본의 대표적 정치가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쟁 책임과 과거의 행적을 지우기 위해 일본의 전쟁 범죄를 한사코 부정해 왔다. 현재의 자민당 및 신진당의 지도급 인사들은 바로 그들이 길러낸 후예들이다. <인민일보> 칼럼은 “그러므로 그들이 또다시 실언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는 말로 끝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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