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자공'' 연립 정권의 진로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9.10.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자민 · 자유 · 공명당 내각 '정책 분석'
일본에 거대 여당이 탄생했다. 자민당·자유당·공명당은 지난 5일 ‘자자공 연립 정권’을 발족하고 개각을 단행했다. 자자공 연립 정권은 이로써 중의원에서는 3백57석을, 참의원에서는 1백43석을 확보했다. 의석 비율로 보면 중의원에서는 71,4%, 참의원에서는 57.0%를 차지한 것이다.

자자공 연립 정권은 정권 구성에 앞서 정책 합의를 발표했다. 이 합의에 따르면 3당은 다음 총선거에서 후보를 조정하기로 했으며, 제2차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추가 경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2005년을 목표로 소비세를 복지목적세로 바꾸어 연금·의료 등 사회보장 재원에 충당하기로 결정했다.‘적과의 동침’으로 탄생한 연립 내각

안전보장 면에서는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는 경우 자위대를 임의로 운용할 수 있게 하는 법적 근거, 즉 ‘유사법제’를 입법화하기로 합의했다. 유사법제는 77년부터 일본 정부가 법제화를 추진해 왔으나 일반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반대에 부딪혀 지금까지 법제화를 미루어 왔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야당인 민주당 등에서도 법제화 논의가 일어나 3당 연립 정권이 이를 추진하기로 공식 합의한 것이다.

또 북한 공작선 침입 사건 이후 활발히 논의된 자위대의 영역 경비에 대해서는 현행 법제도에서 대응을 강화함과 동시에 관련 법률 정비를 서두르기로 했다. 경찰과 해상보안청이 자위대에 영역 경비라는 새 임무를 부여하는 데 반대해 자위대법 개정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자자공 3당은 유엔 평화유지군(PKF) 본체 업무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유엔 평화유지활동 중 무장 해제나 병력 차단 등 보병 부대 활동에 대해서는 무력 충돌이나 무력을 행사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참가를 동결해 왔으나, 자자공 3당이 동결을 해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공명당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외국인 지방참정권 부여 문제에 대해 3당은 의원 입법으로 제안해 성립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자민당 내부 반대가 만만치 않아 이 합의가 지켜질지는 알 수 없다.

자자공 연립 정권은 안정된 정국 운영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며 탄생했다. 오부치 정권 발족 이후 자민당은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과반수를 확보하려고 동분서주해 왔다. 그래서 모색된 것이 같은 뿌리 정당인 자유당과의 연립이었다. 그러나 자민당과 자유당을 합쳐도 참의원에서 과반수를 확보하기 어려워 중도 보수 정당인 공명당과 연립을 모색했다.

공명당은 종교단체 창가학회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정당으로서 다음 총선거에서 자민당과 선거 협력을 염두에 두고 연립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명당은 연립 이전부터 미·일 방위협력지침 관렵법·국기 국가법안 등 중요한 법률을 표결할 때 자민당 편에 서서 찬성표를 던져 3당 연립을 위한 호흡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거대 여당이 탄생한 데 대해 여론이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우선 자자공 3당의 과거 행적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리가 높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당수가 이끄는 자유당과 창가학회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공명당은, 자민당이 야당으로 전락한 93년 이래 자민당과는 적대 관계였다. 자민당도 양당을 강력하게 비판해 왔다.

예컨대 3당 연립 정권을 적극 추진한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전 관방장관은 오자와를 한때 ‘악마’라고 부르며 그의 배신 행위를 매우 강도 높게 비판한 적이 있다. 또한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자민당 정조회장은 창가학회를 지하철 사린 가스 살포 사건을 일으킨 옴 진리교와 똑같은 종교단체라고 비난하면서 공명당의 ‘정교 일치’ 체제를 맹렬히 공격해 왔다. 자유당과 공명당의 사이도 좋은 편이 아니다. 공명당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 대표는 얼마 전 신진당이 분열한 가장 큰 원인이 인관 관계라며 오자와 당수를 간접으로 비난했다. 오자와도 신진당이 해체된 것은 공명당이 이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자와는 그 분풀이로 공명당이 싫어하는 비례대표구 정원 삭감을 연립 조건으로 물고늘어졌다.

자자공 3당의 이러한 과거 행적을 들추어 보면 왜 3당이 지금 와서 연립을 구성하게 되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단지 수를 채우기 위한 ‘야합’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자민당이 종교단체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공명당과 제휴한 데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공명당은 니치렌쇼슈(日蓮正宗)를 신봉하는 신도 단체인 창가학회를 모태로 64년 결성된 정당이다. 공명당은 수많은 창가학회 회원의 열렬한 지지로 65년 참의원 선거에서 11명이 당선되었고, 67년 중의원 총선거에서는 25명을 당선시켰다. 공명당은 이때부터 헌법에 규정된 ‘정교 분리’를 위반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공명당 후보들이 창가학회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명예회장의 낙점에 따라 입후보해 창가학회 회원들의 지지로 당선된 것이 헌법에 규정된 정교 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민당은 이 문제를 따지기 위해 94년 이케다 명예회장을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시키라고 끈질지게 요구한 적이 있다.

그런 자민당이 공명당과 손잡았으니 자민당 내부의 반발도 적지 않다. 특히 다른 종교단체의 지지를 받는 자민당 의원들은 공명당과 제휴했다가 다음 선거에서 떨어져 나갈 표를 생각해 공명당과 연립하는 것을 적극 반대해 왔다.

거대 여당 탄생이 일본의 우경화 발걸음을 더욱 재촉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자공 3당은 연립하기 이전부터 미·일 방위협력지침 관련법과 국기 국가법안 등 중요한 법안을 별 심의 없이 일사천리 식으로 통과시켜 왔다.

자자공 3당은 연립 정권 구성 후에도 오랜 쟁점이던 유사법제를 입법화하기로 결정했으며, 헌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는 유엔 평화유지활동 본체 업무에도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자자공 3당은 전쟁이 끝난 이래 숙제가 되어 온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한·일 ‘밀월 관계’ 계속될 듯

특히 주목되는 것은 헌법 개정이다. 자자공 3당은 연립하기 이전 헌법조사회를 설치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연립 정권은 중의원에서는 헌법 개정을 제안할 수 있는 3분의 2 의석을 넘게 확보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개각이 끝난 뒤 일본 기자단과 회견할 때 ‘헌법을 개정할 의사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헌법의 여러 문제를 검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아사히 신분>이 새 각료들에게 ‘헌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는가’라고 질문하자 ‘그럴 필요가 없다’고 대답한 각료는 미야자와 대장상 한 사람뿐이었다.

물론 헌법을 개정하려면 국민투표법 등을 제정해야 하므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또 국회에 설치된 헌법조사회가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앞으로 5년 뒤 일이다. 그러나 중의원에서 개헌 의석을 확보한 거대 여당이 일본이 안고 있는 마지막 숙제인 헌법 개정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에 거대 여당이 탄생한 것이 현재의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대중 정권과 오부치 정권이 등장한 이후 한·일 관계는 ‘유례가 없는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자유당과 공명당도 한국과 큰 파이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 임명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상이 김대중 대통령과 오래 전부터 친밀하게 교류해 와 외교에서 마찰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