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통신] 폭탄 테러의 범인은 '병든 미국'
  • 金勝雄 특파원 ()
  • 승인 199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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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66명. 오클라호마시티 폭파 사건으로 희생된 사망자의 최종 집계다. 발생 시기가 대구의 가스 폭발 사건과 엇비슷해 한국인들의 관심을 많이 끈 뉴스는 되지 못했으나, 이곳 미국에서는 O.J. 심슨 사건을 제치고 단연 톱뉴스다. 이 사건은 5월19일로 발생 한 달째가 된다.

주범(아직은 혐의단계다)으로 전직 직업 군인 출신인 티모시 멕베이(27)가 검거됐다. 또 공범으로 역시 직업 군인 출신 테리 니콜라스(40)가 5월10일 밤 잡혔으나 범행 동기와 목적이 밝혀지지 않고 있어 수사는 계속 원점을 맴돌고 있다.

<뉴욕 타임스>가 최근 1면 머리 기사로 터뜨린 주범 멕베이의 ‘고독과 강박관념에 짓눌린 삶’은 어쩌면 이런 경찰 수사의 지지부진을 깨보려는 ‘언론 수사’로 볼 수도 있다. 이 한편의 기획물 기사를 위해 신문은 베테랑 기자 17명을 범인의 족적이 드러나는 20개 주 전역에 투입했노라고 밝혀 대신문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이 기사에는 범인 맥베이의 출생에서부터 범행에 이르는 27년의 삶과 그 굴곡이 샅샅이 투사되고 있다.

폭파범의 배후는 ‘고독에 짓눌린 삶’

이 기사는, 주요 범행 동기가 무엇이고, 누구 때문에 그런 참사가 터졌는지를 역설적으로 파헤친다. 신문의 의도는 범인 맥베이가 한갖 표상(表象)에 불과할 뿐, 진짜 범인은 지금의 미국 사회라고 전하려는 눈치다. 기사를 읽고 나면 주위의 미국인 하나하나를 거듭 살펴보게 된다. 이들 모두의 삶이 맥베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고독과 강박관념에 젖은 것으로 와닿기 때문이다.

소년 맥베이는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미국 전체 결혼 인구의 절반이 한번 이상 이혼을 한다). 그는 누구와도 대화를 쉽게 트지 못하는 자폐증 소년으로 불행하게 성장했다. 여자 친구도 없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데이트 한번 못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그의 유일한 취미는 총기 수집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권총을 여러 자루 지녀 왔다. 고교 졸업 후 선택한 직업 역시 총기와 연관이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 일대에서 은행 금고를 호송하거나 신변 보호를 책임지는 경호 전담 회사 사원으로 일한 것이다.

그린베레 입대 탈락하자 미국 정부에 적개심

멕베이의 삶이 전환기를 맞은 것은 그가 직업 군인을 지원하면서이다. 그는 군부대에서 특등 사수로 뽑혔다. 그 덕분에 입대 3년 만에 상사로 진급하리만큼 고속 진급 특혜를 누렸다. 봉급도 많이 타, 동료나 부하들에게 목돈을 꾸어 주고 이자를 꼬박꼬박 챙길 정도였다. 그의 직업 군인 생활은 규모가 적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미국 사회에 비추어 고교 출신 치고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에 해당한다. 그는 ‘24시간 근무했던’상사로 알려져 있다. 외출 외박도 하지 않고, 유일한 취미인 총기 손질을 1주일에 두 차례씩 꼬박꼬박 했다고 그의 동료들은 전한다.

그러나 평소 병적일 정도로 과묵한 성격은 군생활을 하는 동안 폭발성을 드러내 주위 동료나 부하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다. 특히 흑인 병사들이 그를 제일 무서워했다. 그는 부대 안팎에 호가 난 흑인차별주의자였다.

그는 91년 걸프전 때 ‘사막의 폭풍’작전에 출전해, 진격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방아쇠를 당겨 이라크 병사의 두개골을 날린 전과로 부대 표창을 받았다. 당시 그는 25mm 기관포 사수로, 이라크군과는 정확히 1천1백m 떨어져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최강의 사기와 엄격한 군기로 유명한 노스캐롤라이나 주 소재 그린베레 부대를 자원했으나 ‘심리 상태’의 결격 요인으로 탈락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미군과 행정부에 대한 강한 반발과 증오심에 빠져들었다.

그는 미국 행정부를 타도 대상으로 삼았다. 총기를 10여 정이나 구입해 부대 밖 개인 숙소와 침대 밑에 감춰두고 ‘일촉즉발’에 대비하는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결정적으로 흥분했던 것은 93년 4월19일 텍사스 웨이코 시에서 발생한 사교 지도자 데이비드 코레시 일당 몰살 사건으로, 경찰의 과잉 진압과 단속을 규탄하고 이를 복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이번 오클라호마시티 사건은 그로부터 정확히 2년 뒤의 그 날 4·19를 골라 터졌다.

멕베이는 고장난 시계 속의 어긋난 톱니바퀴 같은 주인공이다. 문제는 이런 주인공들을 오늘날의 미국 사회가 지나치게 양산해 왔다는 점이다. 맥베이는 한갖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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