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전국민이 범죄자 되려나
  • 부에노스아이레스·손정수 통신원 ()
  • 승인 2004.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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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1년에 4만명 총격으로 사망…빈곤·마약이 비극 불러
유엔에 따르면, 브라질에서 총기로 사망하는 사람 수가 연간 4만명에 이른다. 이는 전세계 살인 사건 희생자의 11%에 해당한다. 세계 전체 인구의 2.8%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그것도 전시가 아닌 평화시의 기록이 이 정도이니 매우 충격적인 수치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칼로스 로페스는 “브라질에서는 12분마다 한 명씩 총기로 살해되고 있는 셈이다”라며 그 심각성을 경고했다. 브라질 공공안전부의 2003년 통계치도 유엔 자료와 일치한다. 총기에 살해된 희생자 수는 브라질 전체 살인 사건 희생자의 68%에 해당한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질에서 총기 살인 사건이 가장 빈발하는 곳은 북동부의 베르남부코 주이다. 주민 10만명당 54명꼴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그 다음이 10만명당 51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는 리우데자네이루이다. 브라질 지리통계원의 한 전문가는 “브라질의 살인 사건은 1990년대부터 급증하기 시작했으며, 아직도 증가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브라질에서 총성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침체 일로를 걸어온 브라질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수용 능력을 넘어선 브라질 감옥이 그것이다. 감옥은 범죄자를 사회와 격리하기도 하지만, 범죄자를 양산하는 온상이기도 하다. 브라질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교도소 내 소요 사태가 이를 입증한다.

지난 4월 브라질 론도니아 주의 행정 수도 포르토 벨호의 오소 블랑코라는 형무소에서 브라질을 뒤흔든 대형 살해 사건이 일어났다. 일부 복역수가 집단 난동을 일으켰는데, 이 와중에 복역수 14명이 동료에게 집단 살해되었다. 소요 주동자들은 당시 현장을 취재하던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이 살해한 시체를 공중에 던지기도 했으며, 난도질한 시체 다섯 구를 버젓이 공개하기도 했다.

브라질에서 극악하게 저질러지는 폭력의 희생자들은 주로 15~24세 청소년들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1996년 인구 10만명당 1백52.2명이던 이 연령층의 총기 사건 희생자 수는 2000년 1백78.8명으로 늘었다. 청소년 총기 사건은 대부분 빈곤과 마약의 영향을 받는다. 지난 4월 중순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빈민촌에서 마약 밀매권을 둘러싸고 마약 조직 간에 전쟁이 벌어지자, 치안 당국 내에서는 ‘빈민촌 외곽에 담을 둘러치자’는 논의가 일었다. 빈곤과 마약이 브라질 사회에서 얼마나 큰 두통거리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남미 대륙 전체가 치안 부재로 신음

치안 부재는 브라질만의 고민은 아니다. 라틴 아메리카 전체가 치안 부재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엔개발계획의 보고서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는 세계에서 살인 사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세계 평균 살인 사건 희생자 수가 인구 10만명당 8.80명인 데 비해, 라틴 아메리카는 인구 10만명당 25.10명. 세계 평균치보다 3배 가까이 높다. 아프리카 지역의 살인 사건 희생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22.20명으로, 라틴 아메리카 수준을 바짝 뒤쫓고 있다.

콜롬비아의 경우, 2000년에 살인 사건이 2만9천5백56건 발생했다. 온두라스는 더욱 심각하다. 1998년에 1만명 가까이가 살인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인구 10만명당 희생자 수는 1백54명. 브라질에 비해 전체 희생자 수는 적지만, 인구 비율로 따지면 브라질을 훌쩍 앞지른다.

아르헨티나는 이보다 조금 덜하지만 최근 들어 강력 사건 발생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빈곤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특히 납치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3월 말 납치 사건 피해자들이 주최한 항의 촛불 집회에는 시민 15만명이 참가했다. 최근 아르헨티나 당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에서는 지난 4월까지 8개월간 1백31건의 납치 사건이 발생해, 피해자들이 ‘몸값’으로 뜯긴 돈만 3백20만 페소(약 15억원)가 넘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후유증?

대규모 촛불 집회 이후 아르헨티나 정부는 법령을 정비하고 특별 치안대까지 구성하는 등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어느 누구도 불안한 치안 문제가 당장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난과 빈곤 등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같은 대책은 미봉에 불과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유엔 보고서는 라틴 아메리카 전반에 걸쳐 치안 부재 상황이 계속되는 원인을 각국 정부의 의지 부족이나 무능력 탓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군정이 사라지고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어 각국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여건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없을까. 라틴 아메리카를 휩쓸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이같은 사태에 대해 책임이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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