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선, 슈뢰더가 콜 물리치나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8.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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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선 임박, 여론조사 지지율 콜 후보 앞서…막판 역전 가능성 잠복
14대 독일 연방 의회 총선이 9월27일 치러진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16년간 총리 직을 맡아 ‘영원한 재상’이라고 불리는 집권 기독민주연합(CDU)-기독사회연합(CSU) 연립 정부의 헬무트 콜 총리(68)가 재선하느냐, 사회민주당(SPD)의 젊은 지도자 게하르트 슈뢰더(54)가 이를 저지하느냐이다. 콜 총리는 82년 총리가 된 이래 5선을 노리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콜 총리가 5선에 실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선거는 선거전 초반부터 슈뢰더가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는 슈뢰더의 참신한 이미지 전략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3월 사민당 총리 후보로 지명될 때부터 전국적으로 슈뢰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또 슈뢰더는 콜 후보를 ‘과거의 정치인’ ‘미래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 인물’ ‘실업자를 양산한 총리’라고 공격했다. 실제로 독일 유권자들은 뚱뚱하고 연로한 콜 총리만큼이나 독일이 늙고 지쳤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콜은 결코 녹록치 않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두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가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아래 표 참조). 콜 총리는 막판 뒤집기로 총리가 된 경험이 여러 차례 있다. 그래서 그는 최근 독일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유권자들은 투표 바로 직전에 선택을 한다. 특정 정당에 고정적인 지지를 보내는 전통적인 유권자는 거의 없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슈뢰더, 노선 자주 바꿔 지지율 ‘흔들’

최근 들어 콜 총리의 인기가 상승하는 이유는 기업가들이 그의 편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는 콜 총리의 기민련이 자본이 원하는 방향으로 경제를 개혁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전부터 콜 총리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면서 비용과 인원을 줄이고 이익을 내지 못하는 사업을 처분했다. 비용이 덜 드는 해외로 생산 공장을 이전시켰으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일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노동 시간 유연화와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물론 이 정도로는 기업가들의 성에 완전히 차지는 않는다. 기업가들은 임금이 떨어졌는데도 실업 기금을 계속해서 부담하고 있다며 불평한다. 독일의 실업 기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에 사민당은 노동 문제를 정부·노동자·사용자가 철저히 합의해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가들은 이러한 슈뢰더를 두려워하고 있다. 결국 기업가들이 콜 후보 지지로 돌아선 이유는 그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슈뢰더가 꺼림칙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슈뢰더는 요즘 이른바 ‘신 중도’노선보다 전통적인 좌파 노선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선거의 마지막 승부처인 옛 동독 지역의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다. 신 중도 노선은 지난 3월 이래 슈뢰더가 줄곧 외친 선거 구호인데, 전통적인 좌파 노선을 버리고 우파 노선을 곁들인 정책이다. 이 전략은 독일 중산층과 기업가들 사이에서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슈뢰더 후보는 최근 선거운동에서 “더 이상 고등 교육을 부모 호주머니에 의존하도록 하지 않겠다. 또 직업 훈련과 재교육을 위해서 재정 적자를 감수하겠다. 정부는 그럴 여유가 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러한 변신은 표를 얻기 위한 선택이므로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는 과거에도 이처럼 변신한 경력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자에서 폴크스바겐 관리자로 돌아섰고, 걸프전을 반대하다가 사담 후세인을 맹비난한 경력이 있다. 이러한 변신이 선거를 코앞에 둔 그에게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9월13일 있었던 바이에른 주 선거는 그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바이에른 주는 콜의 기민련과 연립 정부를 꾸리고 있는 기사련의 텃밭이다. 사민당측은 전국적으로 슈뢰더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에 기사련이 과반수 지지율에도 못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정작 선거가 끝나자 기사련은 뜻밖에도 52.9%라는 과반수 지지를 얻었다. 사민당은 94년 총선보다 1.3% 포인트 정도 표를 잃은 것으로 드러났다.

바이에른 주 선거 패배 이후 슈뢰더 진영은 고민에 빠졌다. 우선 지금까지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점이다. 바이에른 주 선거 직전인 9월11일 마감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민당은 34%를 얻고 기사련은 50%를 약간 밑돌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사민당은 29%를 얻고 기사련은 52.9%를 획득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독일 유권자들은 투표 직전 여당으로 돌아서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회사들이 이런 경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를 저질렀다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사민당은 바이에른 주 선거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도시 지역에서 많은 의석을 잃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의미 있는 현상이다. 특히 사민당은, 사민당 출신 시장이 녹색당과 공동 집권하고 있는 바이에른 주 뮌헨에서 참패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놓고 도시 노동자 계층이 사민당에게 보냈던 지지가 흔들리는 징표라고 지적했다. 또 슈뢰더가 우파 노선을 곁들인 신 중도 노선을 표방하다가 최근 또다시 좌파 노선으로 돌아서는 등 선거 전략이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자본가·동독 노동자 선택에 달려

어떤 여론조사 기관은 사민당이 바이에른 주에서 패한 현상을 놓고, 유권자들이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을 싫어하는 신호라고도 분석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녹색당은 최초로 정부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녹색당은 연방 의회에 참가할 수 있는 5% 득표를 위해 노력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지난 몇달 동안 계속된 여론조사 결과 녹색당은 지지율 7% 선을 유지하고 있어 무난히 연방의회에 진출할 것으로 내다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녹색당이야말로 슈뢰더가 승리하는 데 아킬레스건이라고 본다. 녹색당 문제를 지적한 일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의 3분의 2 정도가 녹색당은 전문성이 떨어져 수권 능력이 없다고 본다.

과연 사민당-녹색당 연립 정부가 화합할 수 있느냐도 문제이다. 특히 녹색당은 핵발전소를 5년 안에 폐쇄하고 화석 에너지에 대한 세금을 올리고 노동세를 낮추는 등 환경 친화적으로 세제를 개혁할 계획이다. 유권자들은 이런 문제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슈뢰더는 우세하다. 9월12일 마감된 여론조사 결과 헬무트 콜의 기민련과 기사련 연정에 대한 지지는 37% 주위를 맴돌고 있다. 슈뢰더의 사민당은 41% 선을 지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독일 총선 역사상 선거 2주 전까지 1·2위 후보의 격차가 이렇게 크게 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백전 노장 콜도 이번만큼은 역전승이 무리라는 분석이 높다. 전문가들은 돌발 변수만 없다면 사민당이 74년 이후 처음으로 총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 프랑스의 조스팽 총리에 이어 독일에도 좌파 정부가 들어서 유럽의 좌파 바람이 완성되는 것이다.

결국 이번 선거는 자본가들과 동독 노동자들의 선택과, 녹색당에 대한 호응 여부가 젊은 좌파 지도자의 출현이냐, 정치 9단의 기사 회생이냐를 가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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