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새 수도 유치 경쟁 치열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6.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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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이전조사회 최종보고서, 청사진 마련…5~6곳 유치 경쟁 치열
동쪽이냐 서쪽이냐. 일본 지방자치단체 간에 치열한 수도 유치 경쟁이 시작됐다. 일본 정부 ‘국회이전조사회’는 지난 13일 수도 기능 이전에 관한 최종 보고서를 무라야마 총리에게 제출했다. 이 조사회는 일본 국회가 90년 11월 국회 이전을 결의함에 따라 3년 전 발족한 단체인데, 각계 각층 전문가가 참여하여 다음과 같은 청사진을 마련했다.

‘2년 이내에 새로운 수도 예정지를 선정할 기관을 구성한다. 국회 및 총리관저, 중앙 부처의 정책·기획 부문이 들어설 새로운 수도는 90년대 말까지 착공한다. 착공 10년 후인 2010년에는 새로운 수도에서 국회를 개회한다.’

국회이전조사회는 또 새로운 수도 예정지는 도쿄에서 60~3백㎞ 정도의 거리에 있는 지역이 적당하다고 권고하고, 신칸센으로 2시간 이내, 국제 공항에서 40분 이내 거리에 위치해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또 지진 위험이 있는 곳, 적설·호우로 교통이 마비될 수 있는 곳, 대도시 주변 등은 제외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최북단 홋카이도까지 가세

그렇다면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 딱 들어맞는 지역은 과연 어디인가.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는 도쿄 북동쪽 도후쿠 지방이다. 그중에서도 도지키 현 나스 지역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후보지다. 도쿄에서 도후쿠 자동차 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쯤 달리면 나스·시오바라 인터체인지가 나타난다. 이 인터체인지 부근 약 4백만㎡ 공유지가 바로 화제의 후보지이다.

국회이전조사회는 새로운 수도의 인구를 약 6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만한 인구를 수용하려면 적어도 도쿄 중심부 면적의 1.5배에 상당하는 공유지 9천㏊가 필요하다. 도지키 현 유치 관계자들은, 이 나스 공유지가 도쿄 중심부 가스미가세키 관청가 면적의 4배에 가까운 광활한 유휴지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끼고 있어 도쿄와 교통 연결이 간편하다는 이점을 들고 있다.
나스 지역이 주목되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국회이전조사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까지 1차로 국회와 총리 관저가 이전한다. 뒤이어 사법부가 이전하여 새로운 수도에 입법·행정·사법 3부의 주기능을 집약시킬 예정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는 왕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일왕은 헌법상 형식적인 존재이나 실제로는 외교 사절로부터 신임장을 접수하는 등 국가 원수 노릇을 한다. 따라서 행정부가 이전하면 일왕도 그 쪽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왕궁을 새로 지으려면 막대한 경비가 든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해 주는 곳이 바로 나스 지역이다. 현재 이곳에는 일왕의 여름 별장이 있다. 따라서 여름 휴가철에만 사용하는 이곳을 개축하면 왕궁을 새로 짓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도지키 현의 주장이다.

도쿄에서는 약간 멀지만 서울과 비슷한 위도상에 위치한 센다이 지방도 맹렬한 유치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센다이 지방의 도후쿠경제연합회는 도쿄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경우에 대비해 인구 백만인 센다이 시를 제2의 수도로 정해 놓자고 주장한다. 이 지방 경제인들은 이미 10년 전에 이러한 구상을 발표했는데, 이전 대상지가 센다이 지방을 포함한 3백㎞ 권까지 확대되자 크게 반기고 있다.

도쿄를 기준으로 가른다면 일본 열도 최북단 홋카이도 지방도 동쪽에 위치한다. 물론 홋카이도는 3백㎞ 이내에 해당하는 지역은 아니다. 그러나 최종 보고서에 ‘극히 유망한 지역은 예외로 한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기 때문에 홋카이도도 마지막까지 유치 경쟁을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홋카이도는 또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가 국토의 끝에 붙어 있음을 강조한다.

일본의 현재 수도 도쿄는 약 4백 년 전 도쿠가와 바쿠후가 성립되면서 개척된 도시이다. 일본 열도의 한중간에 있고 광대한 간토 평야를 끼고 있다. 이후 메이지 유신과 함께 왕궁마저 이곳으로 옮겨와 도쿄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수도가 되었다.

도쿠가와 바쿠후 이전 일본의 중심지였던 교토·오사카 등 이른바 간사이 지방은 도쿄에 빼앗긴 수도 기능을 재탈환하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 왔다. 예를 들어 8년 전 교토 대학의 한 교수는 도쿄­나고야­오사카를 무인 고속 전철로 연결하여 이 지역에 수도 기능의 일부를 옮기자고 주장했다. 또 간사이경제인연합회도 같은 해 지방자치단체에 행정 권한을 대폭 위양하는 방법으로 이른바 ‘분도(分都)’를 실시하자는 제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최대 장애는 도쿄 못지 않은 인구 과밀 지역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는 나고야 현을 중심으로 한 시즈오카 중부, 도카이 지방도 마찬가지이다.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2시간 거리인 나고야 지방은 일본 역사를 들춰보면 조금 특이한 지역이다. 전국 시대에 명장을 수없이 배출했지만 오사카와 도쿄에 눌려 한 번도 중심 역할을 해 본 적이 없는 지역이다. 게다가 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서울에 패했다. 그래서 이 지역 경제단체들은 21세기 초 세계만국박람회 개최와 함께 신 수도 유치를 지상 과제로 내걸고 이 지역의 증흥을 꾀하고 있다.

수도 탈환을 노려 온 오사카 지방, 한번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본 적이 없는 나고야 지방 사람들에게는, 새 수도가 현재의 도쿄보다 더 동쪽으로 옮겨 간다면 더할 수 없는 치욕이다. 그래서 이 지역 지방자치단체와 경제단체들은 국회이전조사회에 압력을 넣어 ‘인구 과밀 지역은 제외한다’는 표현을 삭제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아울러 이 지역 단체들은 도쿄 동쪽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데 반대하는 연합 전선을 구축하려 서두르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치 현 스즈키 지사는 “동일본 쪽으로 수도를 옮겨 간다면 서일본 지역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오사카 지역 경제단체들도 “오사카가 부적합하다면 적어도 서일본 쪽으로라도 수도를 옮겨야 한다”고 박자를 맞춘다.

“지역 차별 발언 취소하라” 항의 시위도

사실 10년 전에도 비슷한 공방이 있었다. 센다이 지방의 도후쿠경제인연합회는 86년 9월 센다이 시를 제2의 수도로 하자는 이른바 ‘중도(中都)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에 오사카 지역 간사이경제인연합회 사토 회장이 버럭 화를 내며 다음과 같은 문제 발언을 던졌다. “구마소가 살던 지역으로 어떻게 수도를 옮길 수 있겠는가.” ‘구마소’란 일본의 설화에 나오는 규슈 지방 원시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미개인이 살던 규슈나 도후쿠 변방으로는 수도를 절대 이전할 수 없다는 것이 사토 회장의 논리이다.

이 문제 발언이 전해지자 도후쿠 지방 사람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사토 회장이 경영하는 산토리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지역 차별 발언을 취소하라는 항의 시위도 일어났다. 이 문제는 사토 회장이 자신의 발언을 철회함으로써 일단 뚜껑이 덮혀졌다. 그러나 최근 수도 기능 이전 계획이 구체화함에 따라 봉인된 뚜껑이 다시 열릴 낌새를 보이고 있다.

미야기·후쿠시마·도지키 현 등 도후쿠 지방의 세 현은 최근 합동대책회의를 열고 후보지 선정에 공동 보조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오사카·나고야 지역이 연합 전선을 펴고 서일본 쪽으로 수도 이전 운동을 벌이고 있는 데 대한 일종의 대항 조처이다.

이렇게 보면 천도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이 동일본과 서일본으로 두동강이 날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어느 쪽이 이기든 지역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천도 계획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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