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눈]집요하지 못한 한국 언론
  • 마이클 웬거트 미국 ABC 방송 ()
  • 승인 1997.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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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국 언론 대부분은 괌 참사로부터 시선을 돌려 버렸다. 무고한 희생자 2백54명이 죽은 원인을 규명하는 일에 한국 언론은 너무 안이하지 않은가.”
자유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언론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언론은 대중의 눈이자 귀이며 나아가 대중의 양심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언론은 자유롭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최근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현대 사회에서 언론이 가지는 권리와 책임에 대해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세계의 눈길은 이 비극적인 사건에 프리랜스 사진기자들이 얼마나 얽혀 있는지에 쏠리고 있다. 다이애나와 그의 절친한 친구 도디 알파예드, 그들을 태운 운전사 등 세 사람은 8월31일 새벽 파리의 한 터널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자동차는 영국 찰스 왕세자의 전 부인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집요하게 따라붙는 사진가들을 따돌리려고 무섭게 질주하던 중이었다. 사고 차량을 운전한 운전 기사가 음주 상태였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프랑스 수사 당국은 이 끔찍한 사고와 관련해 ‘파파라초’ 들에게 부분적인 책임이 있는지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자유 누리는 만큼 책임을 추궁 당하는 외국 언론

타블로이드판 황색 신문들은 다이애나가 찰스 왕세자와 약혼한 날로부터 끊임없이 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왕세자빈을 추적해 왔다. 찰스 부부의 결혼이 파국을 맞은 이래, 다이애나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려 애썼지만 사진기자들은 그를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물론 사진기자들이 다이애나가 펼쳤던 고귀한 캠페인들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다이애나는 많은 자선 사업 활동에 자신의 유명세를 활용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나 다이애나에게 사생활은 없었다. 황색 신문과 잡지 들은 다이애나와 관련한 흥미로운 사진거리를 찍어오도록 사진기자들을 몰아세웠다. 다이애나의 죽음을 보면서, 전세계 사람들은 이같은 언론 행태에 역겨움을 표시했다. 그들은 이 당찬 젊은 여성의 비극적인 죽음과 관련해 언론을 직접 대놓고 비난하고 있다.
한 달 전쯤 2백54명이 KAL 810편을 타고 괌으로 가다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회수된 블랙 박스 중 비행 기록 장치(FDR)를 분석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리지만, 조종실 음성 기록(CVR)은 이 사고가 악천후와 맞물린 조종사의 실수에서 말미암았음을 시사했다.

초기에 조종사가 실수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외국 언론에 대해 한국 언론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지금 한국 언론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침묵하고 있다. 최근 또 다른 비행기 사고가 터졌다. 한국인 21명을 포함해 66명을 태운 베트남항공 소속 비행기가 지난 9월3일 호치민 시를 떠나 프놈펜 시에 착륙하려다 추락했다. 한국의 한 방송사 뉴스는 즉시 조종사 실수와 기상 조건으로 인해 사고가 일어났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차이는 무엇인가. 조종사의 국적 차이인가, 아니면 항공사가 다른 나라 소속이기 때문인가.

만일 KAL기 사고가 조종사 실수에서 말미암았다 하더라도 한국 언론이 책임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항공사의 조종사 훈련 실태에 대한 조사를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또는 교통 당국자를 찾아 그같은 참사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 언론은 그들의 수용자인 대중의 이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에 오랫동안 산 외국인들은 한국인과 한국 언론으로부터 극심한 민족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나라’라는 말이 일상 대화에 쓰이는 만큼이나 빈번하게 뉴스 보도에 등장한다. 한국 언론의 이러한 민족적 자부심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에 도움이 되는가. 혹시 대한항공과 그 모기업이 언론의 주요 광고주라는 사실이 보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가. ‘코리아’라는 나라 이름을 상표로 내건 항공사이기 때문에, 회사의 문제점을 낱낱이 밝혀 국민에게 충실하게 봉사해야 하는 언론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은 아닌가.

앞으로 상당 기간 구미 언론은 다이애나 사건의 원인을 찾으며 언론이 어느 정도까지 책임이 있는지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미 한국 언론 대부분은 겨우 한 달 전에 벌어진 괌 참사로부터 시선을 돌려 버렸다. 진실을 끝까지 추적해 밝히라고 외치는 사고 관련자들의 목소리만이 메아리칠 뿐이다. 무고한 희생자 2백54명이 죽은 원인을 규명하는 일에 언론은 너무 안이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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