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 기업들의 중국 '골드 러시'
  • 베이징·주장환 통신원(jjhlmc@hanmail.net) ()
  • 승인 2000.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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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개 기업 중국 진출 ··· 치밀한 준비 없이 덤벼들면 '낭패'
잠재적인 세계 최대의 인터넷 시장 중국에 한국 IT(정보통신기술) 벤처 기업들이 진입하려는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고 중국에 진출하는 데다, 중국 시장 특성에 무지하고 장기적인 전략이 없어 현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대륙에는 현재 조용하지만 뜨거운 인터넷 바람이 불고 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컴퓨터 보급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 역시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이다. 실제로 얼마 전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톈진(天津) 충칭(重慶) 등 4대 직할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정용 컴퓨터 보급률이 40.6%로 나타났는데, 그 가운데 최근 2년 내에 컴퓨터를 구입한 가정이 65%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 수는 올해 상반기 천만 명을 넘어섰으며, 전자 상거래의 경우 지난 한 해 600%라는 놀라운 증가율을 기록했다. 최근 3년 사이의 중국 인터넷 산업 성장률은 200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인터넷 산업 적극 홍보

중국 정보통신기술 관련 산업이 이처럼 빠르게 성장한 것은 중국 정부의 시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인터넷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중앙 부서 및 각급 지방 정부 그리고 해외 공관에 이르기까지 모두 웹사이트를 구축하라고 지시하고, 베이징 시 중관춘(中關村) 일대를 ‘동양의 실리콘 밸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 중국 정부는 적극적인 외자유치 사업 항목에 인터넷 산업을 포함하고 이를 세계 각국에 홍보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런민르바오(人民日報)>(www.peopledaily.com.cn)·신화사(www.xinhua.org) 등 5개의 웹사이트를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공포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 정보통신기술 산업의 총규모는 전년 동기보다 약 3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옆에서 이런 거대 시장의 성장을 바라보는 한국 벤처 기업들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해부터 50여 개의 한국 벤처 기업들이 중국으로 진출했거나 혹은 진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대륙행이 순탄하지는 않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베이징에서 5개월 넘게 IT사업을 추진해온 한 벤처 사업가는 “입국할 때 계산으로는 한 3억원이면 되겠지 했는데 이미 절반 가량을 썼는데도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사업가는 “생각보다 중국인의 인건비나 생활비가 너무 높다. 제대로 된 프로그래머 한 사람을 쓰려면 한 달에 최소한 1백50만원을 줘야 하고, 방값도 한 달에 70만∼80만 원 정도는 든다”라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이들의 한숨 섞인 말과는 대조적으로, 한국 벤처 기업에서 6개월 일한 적이 있다는 웹디자이너 왕린저우(王林周·31) 씨는 “한국 벤처 기업 경영자들은 도무지 기다릴 줄을 모른다. 한달 만에 성과가 없으면 사람을 달달 볶는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물론 한국 벤처 기업의 중국 진출이 모두 실패한 것은 아니다. 한창 도시 순환도로 공사가 진행 중인 베이징 서북쪽, 중국 정부가 동양의 실리콘 밸리를 건설하려는 중관춘에는 18층 높이의 컴퓨터 전문 상가 하이롱(海龍) 빌딩이 있다. 이 빌딩 1201호 사무실이 한국 IT 관련 벤처 기업들의 중국 진출 전진기지를 자처하는 한국IT발전센터이다.

현재 한국IT발전센터에 입주한 한국 벤처 기업은 모두 17개이다. 이들은 1999년 8월 한국 정보통신부와 중국 정보산업부(信息産業部) 사이에 합의된 양국 벤처 기업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www.software.or.kr)이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IT 관련 벤처 기업 중에서 심사를 거쳐 선발한 기업들이 지난 6월19일 이곳에 입주했다. 이 기업들은 앞으로 6개월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의 지원을 받는다. 이를 위해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은 사무 인프라, 마케팅, 법률 및 회계 지원을 담당하는 수석대표 1인과 직원 3명으로 구성된 일종의 벤처 인큐베이팅 기관인 ‘중국 IT 비즈니스 지원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현지에서도 한국IT발전센터 운영이 매우 의미 있는 일로 평가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현지에 도착해 골치를 앓기 마련인 사무실 임차, 중국측 파트너 찾기, 시장 정보 따위 기본 문제를 해결해 주고, 나아가 시장 개척 및 투자와 관련한 자문에까지 응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에 입주한 한글과컴퓨터(www.hnc.co.kr)는 리눅스용 워드프로세서 <원졔(文傑)>를 출시했고, 언어공학연구소(www.worldman.com)는 중국 전자 기술 유한회사와 IT용 소프트웨어 30만 달러어치 수출 계약을 맺는 등 각 업체들이 나름으로 빠른 중국 시장 적응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아직 시장 조사와 합작 파트너 찾기 등 초기 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곳에 입주한 사이버피아(www. cyberpia21.com) 베이징 수석대표 김용기씨(33)는 “이런 지원 시스템이 있어서 초기에 정착하고 일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컸다”라고 말했다. 3년 동안 중국에서 유학한 그는 “중국 시장의 특성은 초기 비용이 상상 외로 많이 든다는 것이다. 초기에 성공하기를 바라기보다는 안정적인 인간 관계를 구축하고, 틈새 시장이 어디인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전체적으로 거대한 잠재력을 갖춘 시장인 중국을 향한 한국 벤처 기업들의 진출 몸짓은 아직까지 미약하고 무모하기조차하다. 대부분 철저히 준비하지 않고 ‘중국은 아직 후진국이니 비용이 적게 들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덤비다가 냉엄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올 상반기만 해도 투자액이 천만 달러가 넘는 해외 기업이 40개였고, 올해에만 외자 3백억 달러 유치를 예상하는 중국 시장은, 소자본을 가지고 치밀한 준비 없이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에게 여간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독특한 문화 먼저 이해해야

중국 IT비즈니스지원센터 전병덕(41) 수석대표는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IT 관련 벤처 기업들에게 “중국은 다른 나라 시장과는 다르다.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경영자의 중국식 잣대를 이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와 함께 우수한 기술력과 상당한 정도의 자본을 투자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 초기 단계에서는 특히 현지 파견자 및 실무자를 인내심을 갖고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충고한다. 중국에 독자적으로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혼자 사업 루트를 찾기보다는 중국의 우수한 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어 현지 회사의 시장 장악력과 유통망 등을 이용하라는 것이 그가 제시하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13억 인구만으로도 한없이 매력적인 거대한 시장 중국, 그 안에서 급성장하는 IT산업. 이는 분명히 한국 벤처 기업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13억이 살면 변화 가능성이 13억 가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좀더 치밀하고 장기적인 진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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