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이슬람으로 돌아가는가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5.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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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 탄압으로 친서방 정책 한계 노출…중동 형제국들과 협력해 위기 탈출 모색
쿠르드족 탄압으로 친서방 정책 한계 노출…중동 형제국들과 협력해 위기 탈출 모색
이슬람권에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유일한 나라라는 소리를 들어온 터키가 근래 들어 쿠르드족 민족주의자들의 잇단 무력 봉기에 국내 정치·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쳐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현재 터키에는 전체 인구 6천여만명 가운데 약 1천2백만명의 터키계 쿠르드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터키 체제에 동화됐으나, 아직도 많은 쿠르드족은 이라크 북부에 있는 쿠르드 민족주의자들과 연계하여 분리·독립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 전위 격이 터키 정부에 불법 단체로 낙인 찍힌 쿠르드노동자당(PKK)이다. 이 단체는 84년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을 선언한 뒤, 터키내 공공시설을 파괴하고 정부 요인을 암살하는 등 테러 행위를 일삼아 왔다. 이들은 무력 시위를 통해 터키 정부와 국제 사회가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 주기를 바라고 있다.

정부군과 쿠르드족 간의 전투로 지난 11년 동안 1만5천여 명이 사망했다. 특히 지난 3월20일부터 터키 정부군은 이라크 북부에 산재한 쿠르드 민족주의자 소탕작전(일명 ‘땅거미 작전’)을 벌여 최소한 4백17명을 사살했다. 터키는 이라크 북부에서 게릴라 활동을 펴고 있는 쿠르드족 반정부군 2천8백여명을 진압하기 위해 3만5천 병력과 전투기·헬리콥터를 동원했다. 이 때문에 50여 쿠르드족 마을이 초토화했고, 난민이 3만명이나 발생했다.

한편 서방 각국은 터키의 공격 행위를 일제히 비난했다. 서방 각국에 50만명 이상의 쿠르드 난민이 살고 있기 때문에 보복 테러를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작전 초기부터 침묵을 지키던 이라크도 돌연 터키를 비난하고 나섰다.

유럽 중시하는 정책은 바뀌지 않을 듯

다만 미국은 터키 정부의 조처가 자위 행위에 해당한다고 조심스런 지지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터키가 이슬람권이면서도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서 지역 안보에 긴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터키 내에는 미국 공군기지가 있어 군사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관계다.

터키 정부는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요구를 국가 존립에 대한 위협으로 보기 때문에, 자치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4월17일 탄수 실레르 총리는 터키군이 “주어진 임무를 대부분 달성했다”고 말하면서, 이라크에 진주했던 병력 5천여 명을 철수시켰다. 나머지 3만 병력을 언제 어떻게 철수시킬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터키는 이번 기회에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의 반정부 투쟁을 잠재워 이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이라크 북부의 국경선을 안전하게 확보할 계획이다.
쿠르드족은 최근 유럽 지역에서 터키 정부 및 민간인 소유 건물에 대해 방화 테러를 자행해 터키 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쿠르드족의 봉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레르 총리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마저 괴롭히고 있다. 특히 91년에 발발한 걸프전도 터키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걸프전 이후 이라크와 교역이 끊기면서, 이라크로부터의 원유 공급도 전면 중단되었다. 매년 70%에 달하던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에는 150%까지 치솟았다. 경제 성장률은 작년 9월까지 마이너스 8.7%, 1인당 GNP는 2천5백달러 정도로 추산되지만 물가가 워낙 올라 실질 임금이 많이 떨어졌다. 무역 적자는 75억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최악의 경제 상황은 농촌 지역을 붕괴시켰고, 좌절한 청년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작년 한 해 이스탄불 시 인구는 3만명이나 증가했다. 터키의 국내 사정이 불안해지자 관광객 수가 격감하면서 관광 수입도 많이 줄었다. 정부는 임금 동결을 단행해 긴축 재정을 하고 있지만, 그 결과 국민들의 원성만 높아지고 있다.

실레르 총리는 91년 제1당으로 떠오른 정도당과 야당인 사회민주인민당이 모여 만든 연립 정부를 이끌고 있는데, 이 두 정당은 각각 보수와 중도 좌익을 대변하고 있다.

93년 총리 직에 오른 정도당 출신 실레르 총리는 96년 가을 총선에서 실각할 가능성이 높다. 작년 3월 실시한 선거에서 19 %를 얻어 대약진을 보인 복지당이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정도당(21.5%)과 중도 우익을 표방하는 조국당(21%)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데 반해 복지당만 약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복지당은 기존 정당들을 제치고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이처럼 복지당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르바칸 복지당 당수는 터키가 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탈퇴해야 하며, 유럽연합(EU)과도 거리를 멀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터키의 현 집권 세력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슐레이만 데미럴 대통령과 이스탄불 공대 동창인 그는 서방과의 관계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이슬람주의를 추구하고, 중동의 이슬람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자고 주장한다. 일부에서는 급신장세를 보이고 있는 복지당이 머지 않아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작년 지방 선거에서는 ‘빈민을 위한 유일한 당’이라는 구호가 먹혀 앙카라와 이스탄불을 포함한 전국 27개 지역에서 복지당 후보가 자치단체장에 선출되었다.

유럽 국가들은 복지당의 행보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다. 반 서방 정책으로 돌아설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중산층이 유럽을 버려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유럽을 중시하는 기존 정책과 통상 협력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중동 형제국들에 대한 협력이 전보다 강화될 것이다. 최근 터키에 이슬람원리주의 바람이 불고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터키가 원리주의자들의 테러 행위로 극도의 혼미를 겪고 있는 알제리나, 이슬람 혁명을 통해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란 같은 나라로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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