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 클린턴 정상회담 "막판 조율중"
  • 정리·남문희 기자 (bulgot@e-sisa.co.kr)
  • 승인 2000.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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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관 · 마이클 시언 간에 핫라인 가동 ··· 서울 방문 시기에도 영향 미칠 듯
6·15 남북 공동 선언 이후 최근의 8·15 이산가족 상봉까지 남북관계는 마치 질풍 노도와 같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번 방북 언론사 사장단과 나눈 대화록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이산가족 상봉 외에도 앞으로 남북 간에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다. 일부에서는 너무 빨리 돌아가 정신을 못 차리겠다고까지 한다. 이처럼 급속한 변화의 뒤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시사저널>은 그 배경의 하나로 북·미 관계의 대격변 가능성을 지적해 왔다. 즉 최근 남북 관계에서 보이는 급진전 양상은 북·미 수교, 또는 김정일 위원장의 미국 방문까지를 염두에 두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문제 의식의 연장선에서 이번 호에는 김위원장의 방미 문제를 더 심층적으로 추적했다. 이를 위해 현재 <시사저널> 편집자문위원이자 미국 코네티컷 대학 초빙교수인 이창주 교수에게 조사를 의뢰했는데, 이교수는 워싱턴 정가 및 북한 유엔대표부 관계자 그리고 멀리는 러시아 외무부 인맥까지 동원해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그 결과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김위원장이 북·미 수교의 전제 조건으로 테러지원국 문제만을 지적했는데, 그렇다면 북·미간 최대 현안인 미사일 문제는 이미 가닥이 잡혔다는 말인가?
북·미 관계에서 핵심 이슈로 제기되어 온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양국 간에 상당한 수준으로 의견 접근이 이뤄진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김정일 위원장이 한국 언론사 대표들에게 밝힌 내용대로 북한은 미국이 위성 발사를 책임져 주는 조건으로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안을 제시했고, 미국은 일본의 협력을 얻어 이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따라서 미사일 문제는 이미 기본적인 실마리를 찾았다고 볼 수 있고, 양국 협상 대표들도 느긋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미사일 협상에 관여하는 북한측 협상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미국이 알아서 할 것’이라면서 ‘우리 국방력을 해체하려는 미국의 음모’라는 식의 비판적 언급을 삼가는 모습이다. 미국은 겉으로는 여전히 북한 미사일 위협 해소 또는 미사일 개발 포기를 주요 협상 의제로 내걸고 있지만, 핵 문제에서도 북한이 약속을 지킨 바 있기 때문에 위성 발사를 지원하면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북측의 약속을 믿고 있다. 한편 김위원장은 7월19일 평양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런 안을 제시함으로써 국가미사일방어(NMD)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의 협상력을 높여줌으로써 러시아를 중재자로 활용하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이를 발표하자마자 미국은 진위 확인을 위해 모든 외교 채널을 가동하는 등 한동안 법석을 떨었다. 휴가차 현재 모스크바에 머무르고 있는 평양 주재 러시아 고위 외교관은 전화 통화에서 조건부로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의사는 확실하다고 전했다.
그동안 북·미 간에 김위원장 방미를 협의하기 위한 채널이 가동되어 왔나? 가동되었다면 주로 어떤 채널인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태국 방콕의 아시아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하려고 지난 7월25일 워싱턴을 떠나면서 북한 백남순 외무상과의 회담이 포럼에 참석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임을 내비친 바 있다. 이미 현지에서는 탈보트 국무부 부장관을 팀장으로 한 전문 외교관들이 북측과 역사적인 북·미 외무장관회담의 일정 및 의제를 협의하고 있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양 방문후 발표한 북한의 조건부 미사일 개발 중단 문제가 공식 의제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북·미 포괄 협상을 위한 고위급의 미국 방문 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되었다. 외교관급 회담으로는 최고위급 회담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회담에서 올브라이트 장관은 백남순 외무상에게 북한 최고위급의 미국 방문을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다. 여기서 최고위급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9월 유엔총회 참석을 계획하고 있으며, 미국 또한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을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북·미 외무장관회담에서 언급된 최고위급은 김정일 위원장을 염두에 두고 그의 방미 가능성을 서로 타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이를 계기로 양국 외교 사령탑 간에 협의 채널이 가동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마이클 시헌 미국 국무부 테러담당 대사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간에 핫라인이 가동되고 있으며,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대미협상팀과 미국 국무부 특별팀 간에 실무 접촉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백악관과 지미 카터 전 대통령 간에도 협력 체제가 구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위원장 방미를 둘러싼 북·미 협의 과정에서 쟁점이 된 사항은 무엇인가?

지난번 북·미 외무장관회담에서 백남순 외무상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에게 북한의 국제적 지위를 확실하게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북한의 국제적 지위 보장이란,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지 않는 한 아무리 경제 제재 조처를 해제하고, 심지어 이를 확대한다 해도 허울 좋은 정치적 상징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고 북한측은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교역 금지 조처는 해제되었지만 북·미간 경제 교류는 예전과 같다. 현재 상태로는 특혜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관세가 너무 높아 상품 수출입이 어렵고, 물자 교역에도 여전히 제한이 따르고 금융 보증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테러국 명단 해제가 북한이 요구하는 선행 조건이자 가이드 라인이다. 이러한 북한의 요구를 미국도 이해하고 있지만 이를 들어 주는 데는 몇 가지 고민이 따른다. 첫째, 의회를 설득해 동의를 받아야 한다. 둘째, 북한으로부터 미사일 발사와 개발을 포기한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셋째, 일본이 요구하는 요도호 납치범 추방과 일본인 납치 문제 등에 대해 납득할 만한 조처를 받아 냄으로써 의회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미사
일 개발 포기 대가로 북한에 지원할 경제 부담을 일본이 지도록 해야 한다. 즉 현재 상황은 북한의 요구와 미국의 고민이 어떤 방식으로 해법을 찾아 가느냐에 따라 급진전할 수 있는 것이다.

김위원장 방미와 관련해 미국측이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인 게 있나?

최근 워싱턴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전격적 방미 가능성에 무게를 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의회 조사국이 지난 7월 방콕 북·미 외무장관회담 시기에 맞춰 작성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해제될 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한 바 있다. 또한 예정에도 없던 마이클 시헌 국무부 테러담당 대사의 평양 방문, 그리고 북·미 ‘테러 회담’이 북·미 외무장관회담 직후인 8월 9일·10일 평양에서 이루어졌다. 미국이 비수교국과 수교하는 과정에서 테러담당대사의 해당국 방문은 통상적으로는 수교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워싱턴의 한 인사는 방콕 북·미 외무장관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테러국 해제-김영남 상임위원장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 참석-북·미 고위급 포괄 협상-북·미 수교-김정일 위원장 연내 미국 방문 등이 논의되었다고 밝혔다. 이 일정대로라면 김위원장 방미 시기는 11월이 유력하다고 한다. 이 회담 결과에 따라 국무부가 시헌 테러담당대사를 평양에 긴급 파견했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시헌 대사는 평양 테러 회담에서 생산적인 진전이 이루어졌다고 밝혔고, 귀로에 일본에 들러 요도호 납치범 문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협상 내용을 일본측에 설명했다.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달리 북한 역시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일본 또한 모양새를 갖추는 선에서 이 문제를 처리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한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이 한국 언론사 대표들과의 오찬에서 테러 지원국 명단만 해제하면 당장 미국과 수교할 수 있다고 발언 한후 미국 국무부 필립 리커 대변인은 8월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필요한 조처를 취해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기를 희망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에 덧붙여 평양 테러 회담에서 일정한 진전이 이뤄졌고 현재 후속 회담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국 간에 뭔가가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김위원장이 북·미 수교의 전제 조건으로 테러지원국 문제만을 지적했는데, 그렇다면 북·미간 최대 현안인 미사일 문제는 이미 가닥이 잡혔다는 말인가?

북·미 관계에서 핵심 이슈로 제기되어 온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양국 간에 상당한 수준으로 의견 접근이 이뤄진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김정일 위원장이 한국 언론사 대표들에게 밝힌 내용대로 북한은 미국이 위성 발사를 책임져 주는 조건으로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안을 제시했고, 미국은 일본의 협력을 얻어 이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따라서 미사일 문제는 이미 기본적인 실마리를 찾았다고 볼 수 있고, 양국 협상 대표들도 느긋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미사일 협상에 관여하는 북한측 협상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미국이 알아서 할 것’이라면서 ‘우리 국방력을 해체하려는 미국의 음모’라는 식의 비판적 언급을 삼가는 모습이다. 미국은 겉으로는 여전히 북한 미사일 위협 해소 또는 미사일 개발 포기를 주요 협상 의제로 내걸고 있지만, 핵 문제에서도 북한이 약속을 지킨 바 있기 때문에 위성 발사를 지원하면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북측의 약속을 믿고 있다. 한편 김위원장은 7월19일 평양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런 안을 제시함으로써 국가미사일방어(NMD)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의 협상력을
높여줌으로써 러시아를 중재자로 활용하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이를 발표하자마자 미국은 진위 확인을 위해 모든 외교 채널을 가동하는 등 한동안 법석을 떨었다. 휴가차 현재 모스크바에 머무르고 있는 평양 주재 러시아 고위 외교관은 전화 통화에서 조건부로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의사는 확실하다고 전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임기 말인데 과연 북·미 수교, 또는 정상회담을 추진할 힘이 남아 있겠나?

클린턴 대통령은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8월15일 당권을 앨 고어 후보에게 넘김으로써 사실상 중앙 정치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러나 11월 대선에서 새 대통령이 선출되기 전까지 대외 관계의 모든 결정은 클린턴 대통령이 내리게 된다. 클린턴 대통령은 8년 재임 기간의 대표적인 외교 치적이면서도 아직 미완성 상태인 북·미 관계 개선과 중동평화 정착을 위해 여전히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아시아지역 포럼에 가입하도록 지원한 것과 북·미 외무장관회담 개최, 다음 달 재개될 예정인 중동 평화회담 등에서 그의 강한 의욕을 읽을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11월 미국 방문과 김정일·클린턴 정상회담 가능성이 흘러나오는 것도 클린턴 대통령이 보이고 있는 최근의 행보에 근거를 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국제적인 정치 지도자들 중 한반도 문제 해결에 심혈을 기울여온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재임 기간에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공을 들였고, 한편으로는 북한의 연착륙(소프트 랜딩)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앨 고어 부통령과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클린턴 시대에 북·미 수교가 성사되도록 해야한다는 입장이며, 이를 위해 자신들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김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북·미 관계 개선은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나?

현재 남북 관계에서 최대 관심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다. 그가 언제 서울을 방문할지, 서울에서 무엇을 터뜨릴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그리고 비교적 솔직하게 밝히는 그이지만 9월에 러시아를 방문한다는 얘기는 하면서도 서울 방문 시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다만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위원장의 서울 방문 시기는 북·미 관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에서 김위원장 스스로도 이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즉 서울 방문 시기를 국방위원회와 외무성이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했는데, 이 두 기관은 현재 북·미 협상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북한의 핵심 기관들이다. 대미 관계를 주도하는 기관이 그의 서울 방문 시기를 결정한다는 것은, 그의 서울 방문이 대미 외교 카드이자 나아가서는 대일 외교 및 전반적인 대외 전략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인 것이다. 현재 미국은 김정일 위원장을 사실상 초청한 상태이다. 북·미 포괄 협상에서 테러 지원국 해제와 미사일 문제가 매듭지어지면 김위원장의 미국 방문이 현실화할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뉴욕주재 북한 고위 외교관은
“미국이 우리 공화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장군님이 미국에 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에 워싱턴에서 흘러나오는 얘기에 의하면 클린턴 대통령이 임기 전 해외 순방길에 오르면 북한 방문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북·미 관계는 현재 빠르게 돌아간다. 이에 따라 김위원장의 서울 방문 시기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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