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서 찢어버려라”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5.08.0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원 25명, 새 조약 체결 결의안 제출…정부 “개정 불가능”
광복 50주년과 한·일 기본조약(한일협정) 체결 30주년이 되는 올해 국회에서는 한·일 기본조약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7월17일 민주당 김원웅 의원 등 여야 의원 25명은 한·일 기본조약을 폐기하고 새로운 한·일 조약을 체결하라는 결의안을 황낙주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이들은 8월 말까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로부터 서명을 받아 9월 정기국회에서 결의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이영일·정 남 전 의원도 한·일 기본조약 개정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이종찬 의원을 통해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65년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에서 이들이 문제삼고 있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 정부로부터 명문화한 사과를 받아내지 못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한·일 합병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사실을 분명히 적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한·일 합병조약의 ‘원천 무효’ 문제는 조약 제2조와 관련된다. 이 조항은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이미’라는 모호한 단어가 문제가 된다. 한국 정부는 한·일 합병조약은 조약이 체결된 1910년 8월22일부터 이미 무효라고 보고 있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한일합병은 불법이다.

일본 정부의 해석은 다르다. 45년 패전과 동시에 합병조약은 무효가 되었지만, 1910년 체결 당시에는 유효하고 적법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일제의 한국 통치는 합법적인 것이 된다. 한국 정부의 대일 청구권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일제의 불법 강점에 따른 피해 배상이 아니라 ‘독립 축하금’으로 보는 것 같다. 문제는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한 차례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북한과 협력해 일본 압박해야”

일본 고위 정치인들의 망언도 그같은 맥락에서 제기되었다. 지난 6월 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智雄) 전 외무장관은 “한·일 합병조약은 원만히 체결되었다”고 말했고, 지난해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현 통산장관은 “과거의 전쟁을 꼭 침략 전쟁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들의 망언은 개인의 역사 인식 부족에도 원인이 있지만, 일본이 해석하는 한·일 기본조약의 논리를 그들이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조약 개정 요구에 대해 정부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로명 외무부장관은 최근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 출석해 “한·일 기본조약을 개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조약을 체결한 지 30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개정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한·일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외무부 동북아 1과의 한 실무자는“한·일 기본조약은 65년 당시 상황을 감안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한 약속이다. 조약 개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65년 당시 한·일 기본조약 체결에 반대했던 6·3세대의 주역인 현승일 국민대 총장은 “국회가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한·일 관계의 잘못된 부분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정부가 이 문제를 관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한·일 기본조약이 주목되는 까닭은 우선 올해가 광복 50주년, 한·일 기본조약 체결 3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곧 북·일 수교협상이 재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명백한 사과를 받아내고 한국처럼 ‘독립 축하금’이 아니라 일제의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내면, 한국 정부로서는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북일협정이 한일협정의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일본 정부에 요청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대해 학계와 재야 인사들은 비판적이다. 김원웅 의원은 “정부가 일본과 연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과 협력해서 일본 정부의 사과와 한·일 합병조약 무효를 포함하는 조약 개정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부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일 기본조약 개정 논의는 실제로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우선 국회의원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야 결의안이 통과되며, 그 다음으로 정부가 국회의 결의를 받아들여 일본 정부에 조약 개정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이같은 요구에 호응해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이 실패한다 해도 한·일 기본조약 개정 요구는 양국 정부와 국민에게 한·일 기본조약의 문제점을 인식시키는 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