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년 잠 깬 후지산, 대폭발 ‘꿈틀’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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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분출 신호인 ‘저주파 지진’ 잦아…제2의 ‘간토 대지진’ 올 수도
일본 사람들은 후지산(富土山)·다테야마(立山)·학산(白山)을 일본 3대 명산으로 꼽는다. 그중에서도 8만년 전 분화 활동에 의해 형성된 표고 3776m의 후지산을 일본 최고의 명산으로 꼽는다. 그래서 ‘이치(1) 후지, 니(2) 다카(독수리), 산(3) 나스비(가지)’라 하여 섣달 그믐날 후지산 꿈을 꾸면 운수 대통한다는 미신이 널리 퍼져 있다.

후지산은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현재 정상 부근까지 관광 도로가 뚫려 있어 후지산을 등정하는 등산객 수가 연간 25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작년에는 백살 먹은 노인이 자식·손자들을 데리고 정상을 정복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외국인 등산객도 연간 3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올해 ‘한신 대지진’에 놀란 일본인 ‘조마조마’

이 후지산이 지금 이상한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즈(伊豆) 지방에 산발적으로 지진이 계속되던 지난 10월 초 쓰쿠바 시에 있는 과학기술청 방재과학기술연구소의 지진 기록계가 후지산 정상 북쪽 지하 20㎞를 진원지로 하는 강도 2의 지진을 감지했다. 보통의 지진은 1초간 10~20차례 진동하나 이때의 지진은 한두 차례 진동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지진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진을 ‘저주파 지진’이라고 부르는데, 후지산은 연간 평균 열 차례 정도 저주파 지진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86년 이즈 지방에서는 이러한 저주파 지진이 관측된 1년 후 이즈 앞바다에서 대분화가 일어났다. 또 91년 필리핀의 피나트보 화산은 미국 지진 전문가들이 저주파 지진을 관측한 2주일 뒤 대분화를 일으켰다.

물론 이같은 실례에도 불구하고 저주파 지진과 분화와의 관계가 학문으로 입증된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저주파 지진의 발생과 함께 후지산이 2백90여 년간 침묵을 지키는 현상을 전문가들은 크게 우려한다. 다시 말해서 3백년 가깝게 분화 활동이 정지됨으로써 후지산 속에 거대한 마그마(고온의 용암)가 축적되어, 이것이 언제 대폭발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후지산이 최후로 대폭발을 일으킨 것은 1707년 12월이다. 백년 전까지만 해도 후지산 정상 부근은 80도를 넘는 하얀 증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상 부근의 표면 온도가 인근의 산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분화 활동을 오랫동안 쉼에 따라 후지산은 현재 3억 ㎥의 분화물을 지하에 축적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것은 지난 5월 분화 활동을 멈춘 규슈 지방의 운젠산(雲仙山)과 후겐다케(普賢岳)에서 뿜어낸 분출량의 1.5배에 상당하는 양이다.

전문가들은 또한 ‘후지산 대폭발’이 도쿄에 가까운 도카이(東海) 지방과 연계해 대지진을 일으킬 가능성을 걱정한다. 그렇다면 이는 제2차 간토(關東) 대지진이다. 후지산이 1707년에 일으킨 대폭발이 도카이 지방의 대지진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제2차 간토 대지진 발생과 함께 후지산이 폭발한다는 것은 어쩌면 최악의 시나리오다. 후지산이 또다시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어떤 피해를 가져올 것인가.

우선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가 예상된다. 지난 1월 발생한 한신대지진은 6천명이 넘는 인명 피해와 10조엔 이상의 재산 피해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만약 현무암을 포함한 용암이 후지산 근처 도사부까지 밀려올 경우 인명·재산 피해는 한신대지진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화산재로 인한 피해도 상당하다. 290여 년 전의 대폭발 때 도쿄 지방에도 화산재가 날아들어 1㎝ 정도 쌓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되면 도쿄-나고야를 잇는 고속도로는 노면 표시가 지워져 통행 금지 조처가 내려질 것이다. 나리타·하네다 공항도 폐쇄되어 수도권의 교통 시설이 대혼잡을 일으킬 것이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이다. 화산재는 컴퓨터를 비롯한 정밀기계의 작동을 정지시켜 후지산 근처의 도시 기능이 완전히 마비될 가능성도 있다.

‘후지산 대폭발설’이 제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80년대 중반 전직 기상청 직원이 책까지 펴내 어느 달 어느 날에 대분화를 일으킨다고 예언했으나 결국 불발로 끝난 적이 있다.

또한 한신대지진 이후 제2차 간토 지진, 즉 도쿄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난다는 설이 난무하고 있으나 아직 그런 낌새는 없다.

하지만 한신대지진처럼 재앙은 예고 없이 다가오는 법이다. 올해는 일본에서도 유독 사건·사고가 많았던 해이다. 일본의 상징이라는 후지산까지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일본인들은 자신감마저 상실할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얼마 남지 않은 올해가 빨리 지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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