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의 모험, 보스니아 파병
  • 워싱턴·金在日 특파원 ()
  • 승인 199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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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면 이미지 쇄신, 평화 협정 깨지고 병사 희생되면 결정적 타격 입어
미국은, 국익에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관련이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는 탈냉전 시대에 들어온 이래 거듭 제기되는 질문이다. 최근 클린턴 대통령의 보스니아 파병 결정에 관한 논쟁은 이 질문을 다시 한번 부각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미군 지상군을 보스니아에 파병하는 문제와 관련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의 의견은 분열됐었고, 미국내 여론 역시 딱 잡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일 클린턴 대통령이 지상군 파병을 공식 승인할 때만 해도 1주일 남짓에 선발대 7백명의 배치가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주변 여건상 그 계획은 당분간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교전 당사국 지도자들의 평화 협정 승인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마음놓고 들어가 진을 치기에는 그곳 환경이 아직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상원은 12월 첫째주 중 보스니아 파병 결의안을 심의할 예정이었으나 그 일정을 1주일 연기했었다. 봅 돌 원내총무가 파병을 지지했지만 필 그램을 필두로 한 상원의원 8명이 파병 반대 결의안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백악관 역시 애초 1년 안에 임무를 마치고 철수할 것이라고 했다가, 그 이상 연장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하는 등 파병 기한에 대해 왔다갔다 하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보스니아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 정책은 지난 10월 초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른바 ‘채찍과 당근’ 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해 내전 당사자들로부터 휴전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보스니아 문제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부터 직접 개입을 거부해 왔다. 그러나 그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인질로 잡혔던 지난 6월 애초의 태도를 바꿔 적극 개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리고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개입해야 문제가 풀린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은 세계 질서에 여전히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재선 겨냥해 ‘강한 미국’ 이미지 심기

지난 11월21일 세르비아·보스니아·크로아티아 지도자들은 미국 오하이오 주 데이턴에 모여 42개월 동안 25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민족 분규에 종지부를 찍는 평화 정착안에 가조인했다. 그 6일 후 클린턴 대통령은 전국에 생방송된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미군 지상군 2만명을 보스니아에 파병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보스니아 지역 평화를 위해 미군 파병은 절대 필요하다. 우리 군대는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이 평화 협정을 지키는 것을 도우려는 것이다.” 파병 이유에 대한 그의 단순 명료한 국민 설득은 그때까지 팽배해 있던 파병 반대 여론을 완화하는 데 성공했다.

클린턴은 의회의 지지 결의안을 필요로 했다. 군대 파견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므로 의회 결의안은 법적 강제 조건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의회의 지지가 필수이다. 클린턴으로서는 그래야 파견군 운용 예산을 따내는 일을 순조롭게 할 뿐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태에 대해 의회와 책임을 공유할 수 있다. 클린턴은 원래 의회가 올린 내년 국방 예산안 2천4백30억달러가 너무 많다며 거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보스니아 파견군 예산을 승인 받는 일이 여의치 않을 것을 우려해 그는 지난 11월 말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년 국방 예산안에 서명했다.
돌 상원 원내총무는 클린턴의 텔레비전 연설 후 대통령의 파병 결정을 지지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신 그를 포함한 상원의 지도급 인사들은 의회 결의안에 파견군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건을 담고, 평화유지 임무를 정확한 용어로 규정하는 작업을 했다. 성취해야 할 일의 범위를 정해야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보스니아 파병이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클린턴에게 돌리겠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클린턴은 “우리의 임무는 명확하고 제한적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그의 장담을 매우 회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기가 무르익기 전에 유엔 평화유지군을 철수하고 나토(NATO)군을 배치한다는 것은 싸움을 발칸 반도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보스니아 파병에 대한 논란의 초점은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느냐다. 그 중에서도 미군에 대한 안전 문제가 가장 우선 순위에 놓인다. 미군 병사가 몇명이라도 생명을 잃는 날에는 과연 보스니아가 미국의 안보 이익과 관련이 있는가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것이 틀림없다. 더욱이 외신들은 평화 협정에 불만을 품은 세르비아계 때문에 사라예보 지역의 분위기가 매우 흉흉하다고 전한다.

관측통들은 평화 분위기를 위협하는 주요소로 협상에 반대하는 세르비아계 등 극우파, 지금 분할된 수도를 회교도-크로아티아 연합에 넘겨주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 보스니아 분리 반대론자들을 꼽는다. 이같은 정황은 보스니아 파병 미군에 대한 위험이 상존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미국 관리들은 ‘세르비아계 군사력에 대항할 수 있는 군사 역량을 키운 후에는 철수한다’고 말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같은 계획 때문에 미군이 보복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재선을 노리는 클린턴과 유럽에 대한 미국 지도력의 장래는 미군이 보스니아에 도착한 후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나토군이 앞으로 1년 남짓 기간에 극소수 희생자만을 낸 대가로 그 지역을 안정시킨다면 클린턴은 케네디가 쿠바 미사일 위기 때 그랬던 것처럼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이미지를 벗어버리게 될 것이다.

“미국의 피와 돈은 유럽 안보에 여전히 결정적”

만약 평화 협정이 파기될 경우 미군들은 속속 죽어갈 것이고, 그 임무에 대한 지원이 사그라들면서 클린턴은 꽁무니를 빼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에 대한 신뢰는 애초 개입을 거부했을 때보다도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하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전쟁 이래 미국의 평화 유지 임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상에서의 정상적인 조건과,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는 데 충분할 정도로 강력한 국내 정치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보스니아의 경우 아직 어느 것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베트남전쟁과 소련 붕괴 후 군사 행동에 관한 미국내 합의는 나오기가 어려웠다. 보스니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국익이 분명하게 걸린 것이 아닐 뿐더러 국민·언론·정치인들은 국내 문제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소말리아 개입 경험을 통해, 느슨한 국내 정치적 합의는 미군의 시체가 텔레비전에 나타나기 시작하면 더 이상 유지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따라 행정부는 미군 파병에 관한 부정적인 여론을 상쇄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국민 설득 작업을 벌이고 있다. 클린턴은 최근 백악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보스니아 출신 난민 두 가족을 초청해 “이 사람들은 25만여 명이 죽고 2백여만 명이 보금자리를 잃은 사연들을 말해주고 있다”고 강조하며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해, 이를 파병 당위성으로 연결하려는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12월14일 보스니아 내전 당사국 지도자들은 파리에서 만나 평화 협정에 최종 서명한다. 그 후에 미군을 포함한 나토군 배치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또 클린턴 대통령은 미군의 임무가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 정착을 위한 것임을 당사국에 표방하는 노력의 하나로 이 달 하순께의 사라예보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

사실 클린턴의 미군 파병 결정은 매우 단순한 지정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이제 냉전은 끝났고 소련의 위협은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미국의 피와 돈은 유럽 안보에 결정적인 요소다’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옛 유고슬라비아 분열은 냉전 종식, 공산주의 몰락, 유일 초강대국(미국) 출현과 동시에 진행된 일이다. 미국 정책 결정자들은 보스니아 위기에 대한 대응 방안을 찾으면서 탈냉전 시대에 적절한 미국의 위치를 찾기 위해 부심해 온 것이다.

외교 분석가들은 보스니아 사안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지난 90년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유전을 점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국익이 직접 위협 당하지 않는 ‘한정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군대를 개입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외교 정책이 국가 이익과 가치 확산이라는 두 가지 축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면, 보스니아 파병은 아직 이 기준에 대한 미국민의 공감을 사지 못한 것 같다. 바로 이 점이 클린턴의 딜레마다. 그러나 파병을 천명한 마당에 어떤 이유에서건 그의 계획이 뒤집힐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럴 경우 미국에 대한 신뢰가 치명상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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