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프 러 외무차관 “미국은 4자회담 의지 없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1996.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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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자 회담은 한국의 아이디어였고 미국은 한국의 체면을 고려해 이를 수용했을 뿐이다.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한 것은 미국이 아니다.”
<시사저널> 편집자문위원인 이창주 모스크바 대학 경제학부 초빙 교수는 최근 한국을 방문하기 직전 파노프 러시아 외무부 아시아태평양아프리카 담당 차관을 만나 4자 회담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파노프 차관은 4자 회담 제안 직후 러시아측이 외교 채널을 통해 파악한 미국·일본·북한의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파노프 차관을 만난 것은 언제인가?


5월27일 오전 11시부터 11시40분까지 외무부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파노프 차관이 미국과 접촉한 내용에 대해 언급했나?

그렇다.

접촉 시기와 내용은 무엇인가?

4자 회담 제안 직후 미국이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4자 회담이 한국의 아이디어였고 미국은 한국의 체면을 고려해 이를 수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한 것은 미국이 아니고, 앞으로 4자 회담이 진전될 경우 그 내용을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교수의 발언은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4자 회담에 대해 미국도 적극적 의사가 없다는 것이 공식 확인됐고, 러시아를 배제한 책임을 미국이 한국에 전가했다는 것인데, 이런 내용이 보도될 경우 파문이 일지 않겠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워낙 중요한 내용이라 밝히지 않을 수 없다.

파노프 차관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허용했는가?

자신의 이름을 밝혀도 좋다고 했다

앞에서 말한 외교 채널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미국 국무부의 한 차관보와 파노프 차관 사이의 공식 채널을 의미한다. 결국 이것은 미국 국무부측이 그들의 입장을 프리마코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공식으로 전달했음을 의미한다.

파노프 차관을 만난 당시의 정황을 설명해 달라.

파노프 차관과는 평소 친분이 있다.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찾아가 4자 회담은 한국과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의욕적으로 풀어보기 위해 제안한 것 아닌가, 그런데 공로명 장관이 방문했을 때 러시아가 그렇게 불쾌하게 대응한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자 마치 ‘폭탄을 터뜨리듯이’ 그간 접촉한 내용을 털어놓았다.

러시아가 사전에 이같은 배경을 인지한 것과 공장관 방러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미국이 러시아를 배제할 의사가 없었다면, 결국은 한국이 배제한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았겠나. 또한 러시아는 일본이나 중국도 이 제안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데 한국 정부만이 국민에게 대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이런 제안을 했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러시아가 주변 국가들의 속마음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장관에게 아무 거리낌없이 불만스런 입장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가 일본의 입장도 확인했다고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일본 외무성이 주일 러시아대사관에 설명하는 형식이었다. 일본도 4자 회담에 대해 불만이 있으나 한국의 체면을 고려해 지지 입장을 천명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북한과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접촉했나?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는 소련 붕괴 후 단절됐던 상시 외교 채널이 최근 다시 복원됐다. 4자 회담 관련 접촉은 한·미·일 3국이 제주도에서 고위급 회담을 하기 바로 직전이었다고 한다. 북한은 4자 회담의 의제가 불투명하고, 그 핵심이 평화협정 문제라면 이는 미국과 협의할 내용이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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