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다음 차례는 백두산 · 칠보산 관광"
  • 금강산·崔寧宰 기자 ()
  • 승인 1998.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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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광지 추가 개방 가능성…성사 시기는 불투명
“금강산 관광이 앞으로도 계속될지 알 수 있나요. 말 바꾸기 좋아하는 북한 사람들이 불쑥 금지하겠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추위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11월20일 저녁, 동해항을 떠나 북한 장전항으로 향하는 현대 봉래호 선상에서 한 실향민은 이렇게 말했다. 이 실향민 말처럼 금강산 관광은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될 가능성도 있다. 금강산 관광객이 장전항에 정박한 유람선에서 내려 북녘 땅을 밟은 뒤 처음 만나는 사람은 북한 군인과 정보 요원 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표정 변화이다. 처음 만나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면 아무 반응이 없다. 무표정은 둘째치고 적군을 대하듯 쏘아보는 눈빛이다. 그런데 이것이 변한다. 그 다음날 바로 그 군인에게 웃는 낯으로 인사하면 인사를 받지는 않되 계면쩍은 표정으로 바뀐다. 쳐다보는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셋째 날 또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면 이번에는 인사를 받아 준다. 잘하면 “또 오십시오”라는 말을 듣고 손도 잡을 수 있다.
설악산과 금강산 잇는 상품 개발

만약 금강산 관광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장전항 군인의 표정 변화처럼 북한 당국은 금강산뿐만 아니라 다른 관광지도 문을 열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정부 부처와 연구기관, 관광업계는 조심스레 남북한 관광 협력 확대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주무 부처인 문화관광부는 일단 금강산 관광을 확대하고 다양하게 만들 계획이다. 문화관광부는 외국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현재 4박5일로 되어 있는 금강산 관광 일정을 신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외국인의 한국 관광 일정이 보통 4∼5일인데 이 기간 내내 금강산에만 묶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는 또 금강산과 국내 관광지를 연계하는 상품을 개발할 생각이다. 내년부터 연구가 시작될 이 계획은 설악산과 금강산을 잇는 상품 개발이다. 문화관광부는 일단 이 사업을 강원도가 주관하도록 하고 문화관광부 차원에서는 예산 5억원을 확보해 강원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지난 7월에는 문화관광부·한국관광공사·한국관광연구원·남북관계 법률 전문가·사업자·학계가 참여하는 ‘남북 관광 교류 지원 실무협의회’가 꾸려졌다. 정부·사업자·학계가 한데 모여 금강산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남북 관광 협력 방안을 토의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정부와 국민이 희망하는 대로 북한이 금강산 외에 다른 곳을 관광지로 개방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 어디일까. 0순위는 ‘함경북도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칠보산(함북 명천군)이다. 북한은 현재 칠보산을 명승지 제17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이곳은 외지고 바닷가여서 금강산처럼 뱃길로 접근할 수 있어 북한 당국이 부담 없이 문을 열 수 있다(지도 참조). 실제로 북한은 최근 일부 한국 기업과 베이징 주재 대북 투자가들에게 칠보산 일대 개발과 관광 사업 참여 의사를 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적으로 칠보산을 개방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11월10일 함경북도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총연장 90㎞에 이르는 새 도로를 닦았다고 보도했다. 이 길은 함경북도 경성군 염분진과 칠보산을 연결하는 도로인데 너비가 9∼13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통신은 이 길과 더불어 칠보산 탐승 도로를 9.5㎞ 닦았다고 전했다. 북한 중앙방송은 또 11월4일 칠보산 자연 바위에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비롯한 김정일 찬양 문구들을 새겨 넣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금강산 개방을 앞두고 금강산의 이름난 바위에 집중적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문구를 새긴 사실을 되새기면 이는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다음으로 가능성이 있는 곳은 백두산이다. 현재 한국 관광객들은 베이징을 거쳐 연변으로 가서 중국쪽 백두산을 관광하고 있다. 때문에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관광 수입을 고스란히 중국이 챙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북한이 북한쪽 백두산을 개방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백두산 명승지의 대부분은 북한 쪽에 있다. △단군 왕검이 나라를 연 곳으로 알려진 신무성 지구 △울창한 침엽수림 속에 자연 호수가 3개 있는 삼지연 지구 △천지 호수의 경치를 대표하는 천지십이경이 모두 북한 쪽에 있다.
백두산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나진·선봉까지 뱃길로 간 다음 뭍길로 중국의 훈춘·옌지(延吉)를 거쳐 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불편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함흥까지 뱃길로 간 다음 여기서 헬기나 경비행기 같은 항공편으로 백두산에 가는 것이다(지도 참조). 함흥과 백두산 사이는 험준한 산악 지역이어서 뭍길로 가는 것이 어렵지만 이곳에는 다행히 공항이 있다. 따라서 시간과 경비를 최소한으로 아끼는 방법이지만 북한측이 영공 통과를 허용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성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다음은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가장 낮지만 평양과 묘향산을 관광하는 코스이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남포항으로 들어간 뒤 평양을 둘러보고 버스를 타고 묘향산에 갈 수 있다(지도 참조). 평양 부근은 북한에서 도로망이 가장 잘 정비되어 있고 교통 체증도 없기 때문에 이동이 편리하다. 특히 묘향산은 김일성의 휴양소가 있던 곳이여서 직통 아스팔트 고속도로가 놓여 있다. 평양에서 자동차로 달리면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칠보산과 백두산, 평양과 묘향산을 관광하겠다는 계획은 아직까지는 야무진 꿈이다. 북한 관광 상품은 경쟁력이 떨어져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기도, 만든 상품을 지속시키기도 쉽지 않다. 열악한 북한 관광 현실을 보면 이 사실이 잘 드러난다. 북한 당국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관광객을 가려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수가 매우 적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외래 관광객과 방문자가 1년에 7만∼10만 명 가량이며 관광 수입은 1억 달러 정도로 보고 있다(96년 한국 외래 관광객 3백66만명, 관광 수입 54억 달러).
또 90년대 들어 본격화한 북한의 관광 진흥 정책은 모두 실패했다. 북한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변방인 △나진·선봉 지대 △회령·온성 중심의 두만강 지구 △신의주 중심의 압록강 지구 △함경북도 칠보산 지구를 4대 관광 지구로 선정하고 관광산업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 계획은 나진·선봉 개발이 실패하고, 4대 관광 지구라는 곳이 북한의 다른 지역보다 관광 자원이 빈약하고 접근성이 떨어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남북한 관광 사업은 남북 경협 견인차

현대그룹이 문을 연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도 앞날이 그리 밝지 않다. 북한이 요구하는 관광 요금 자체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금강산 관광 요금이 유럽 관광 요금 수준으로 치솟았다. 요금이 비싸 서민은 엄두를 내기 힘들고 사업자인 현대상선측도 수지가 맞지 않아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
현대그룹 내부의 불만도 적지 않다. 현대상선의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은 10년째 흑자를 내는 우량 기업이다. 그런데 그룹 차원에서 대북 사업을 시작하는 바람에 적자투성이 사업을 떠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현재 금강산 관광은 비수기인 겨울에 접어들면서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 사업은 위험한 도박이다.

그러나 북한 관광 사업은 현재로서는 가장 확실한 남북한 경제 협력 사업이다. 10년 동안 지지 부진하던 남북 경협에 돌파구를 연 것이 관광 사업이었고, 쉽게 외화를 벌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이 개방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업도 관광 사업이다. 그만큼 남북한 관광 사업은 경협을 이끄는 효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와 현대그룹이 단기적인 손해와 여러 비판을 무릅쓰고 금강산 관광을 밀어붙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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