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들의 '사이버 테러' 갈수록 무시무시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8.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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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테러’ 93년 이후 미국에서만 40건…명성 얻으려 시스템 파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다운 로딩/2016216의 대가들’이라는 해커 그룹이 미국 국방부 전산망에 침입해 군사 위성 시스템에 관한 소프트 웨어를 훔친 뒤 이를 테러 분자에게 팔겠다고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이 그룹은 이미 지난해 10월 정보를 빼냈으나 미국 국방부는 4월 중순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커들 손에 들어간 소프트 웨어는, 군사 위성 수십 개를 이용해 미사일 목표를 겨냥하고 군대 위치를 확인하는 등 미국 군사력을 세계 각지에 배치하고 조정하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졌다. 19∼28세 젊은이 15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 구성원의 국적은 미국인 8명, 영국인 5명, 러시아인 2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에는 애널라이즈라는 이스라엘의 18세 소년이 미국 정부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 소년은 ‘제자’ 2명과 더불어 미국 공군 사이트 7개, 해군 사이트 4개, 항공우주국(NASA)의 일부 사이트를 해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커, 유태인·러시아인이 가장 많아

‘사이버 테러’라고 불리는 이같은 사건들은 자살 폭탄이나 게릴라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테러와는 방법 자체가 다르다. 이 사건의 범인들은 범행 현장에서 수천㎞ 떨어진 안방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실제로 미국 국가안전국(NSA)은 원격 조종으로 컴퓨터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사이버 테러가 93년 이후 40건 이상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해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국가의 교통·통신 망이나 미사일 시스템을 교란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껏 할 수 있는 조처란 사후에 이를 복구하는 것뿐이다.

해커들은 미국·유럽·중동·아시아와 옛 소련의 공화국들에 흩어져 있다. 대부분 뚜렷한 조직에 속해 있지는 않다. 이들의 속성은 모임을 싫어한다. 다만 사이버 통신망에서 서로의 존재를 암호명으로 아는 수준이다. 이들 대부분은 시스템을 파괴하는 행위를 단순한 도전이나 장난 또는 게임으로 생각한다. 체포된 뒤에도 자신의 행위를 범죄라고 인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들은 오히려 정부 전산망의 약점을 보완하는 촉매 구실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포르노 화면을 띄우는 식으로 주요 기관의 컴퓨터 시스템을 조롱한다.

도로시 데닝 같은 전문가는 이같은 해커의 심리를‘권위’에 대한 욕망이라고 풀이했다. 사이버 공간에서 해커들은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실과 정보를 일반인에게 알려 주면서 자신의 권위를 얻는다는 것이다. 해커 사회에서 정보는 곧 ‘권위’의 기반이다. 해커는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데서 삶의 희열을 맛본다. 또 해커 세계에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정보)을 나누는 존재가 진정한 해커로 존경받는다.

현재 세계의 해커 그룹을 이끄는 리더들은 대부분 유태인과 러시아인이다. 이 중에서도 유태인이 특히 많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태인 해커들이 세계 금융 시장의 심장인 뉴욕의 월가도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유태인 해커들은 대부분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들이다. 실제로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 같은 컴퓨터 회사의 프로그래머는 대부분 유태인이다. 이 회사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예산의 85% 가량을 유태인이 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천재성 덕분에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해커 노릇이 가능하다. 이들은 공개된 해커인 셈이다. 이들은 프로그램을 짜서 버는 막대한 돈을 대부분 뉴욕 월가의 펀드 매니저에게 투자한다. 그래서 현재 월가의 펀드 매니저들이 굴리는 자금의 60%가 유태인 자금으로 알려졌다. 물론 펀드 매니저에도 유태인이 많다. 조지 소로스가 대표적이다. 펀드 매니저들이 맡은 돈을 불려서 프로그래머에게 돌려주면 이들은 다시 이 자금을 컴퓨터산업이나 월가에 투자한다.

60~80년대 해커는 컴퓨터 대중화에 기여

유태인이 컴퓨터에 천재성을 보이는 이유는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유태인이 가지고 있는 비정규적이고 창의적인 교육 시스템 덕택이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경제 정보 전문가인 (주)와이즈 디베이스의 황인태 실장은 “유태인들은 학교에 나가지 않고도 가정 교육 등 여러 가지 통로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집에서 컴퓨터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글을 모르는 아이들이 미국의 국방 시스템을 해킹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미국 국방부를 해킹하다 붙들린 이스라엘 소년 에후드 테넨바움(18)은 여섯 살 이후부터는 하루 15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인 중에도 뛰어난 해커가 많다. 모스크바에는 서울의 용산 전자상가 같은 대규모 컴퓨터 상가가 있다. 이곳에서 파는 컴퓨터는 대부분 부품을 따로 파는 맞춤형 컴퓨터인데, 인공위성이나 고성능 무기를 통제할 수 있는 중·대형 컴퓨터의 고성능 부품도 많이 나온다. 물론 값은 비싸다. 러시아의 컴퓨터 천재들은 이 중·대형 컴퓨터 칩을 사모아 소형 컴퓨터에 장착해 쓴다. 황인태 실장은 “옛 소련 시절 미국과 우주 경쟁을 하면서 컴퓨터 천재가 많이 양산되었다”라고 말했다.

해커들 때문에 미국 정부는 해마다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미국에서는 국가안전국이 해커들이 파괴한 시스템을 교체하고 복구하는 작업을 주관하고 있다. 국가안전국의 1년 예산은 한국 단기 외채의 두 배인 6백억달러 규모이며, 직원도 2만4천명이나 된다. 국가안전국이 해커 방위 업무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로 보내는 미국의 암호 코드를 개발하고, 세계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는 정보 위성의 암호문을 푸는 것도 이 조직의 주요 임무이다. 국가안전국은 미국에서 수학자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커들이 다 범죄자는 아니다. 해커는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 집단이다. 초창기에 등장한 해커들은 과학 기술 시대를 맞아 컴퓨터와 통신 기술의 이점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뜨리려는 집단이었다.

스티븐 레비는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이라는 책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정통파 인공 지능 해커 △실리콘 밸리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든 하드 웨어 해커 △80년대 초에 등장한 제3 세대 게임 해커 세 그룹으로 구분했다. 60년대와 70년대 초에 등장한 1세대 해커들은 주로 대학에서 탄생했다. 그들은 대형 컴퓨터를 더 많은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시분할이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같은 노력 끝에 연구실에서만 쓰던 컴퓨터가 누구나 쓸 수 있는 개방형 시스템으로 거듭났다.

70년대 말에 등장한 2세대 해커들은 개인용 컴퓨터(PC)를 만들었다. 리드 대학을 중퇴하고 히피 생활에 빠졌던 스티브 잡스와 휴렛팩커드 엔지니어였던 스티브 워즈니악 등이 그 주역이었다. 이들은 당시 컴퓨터 시장을 독점한 IBM의 비싼 컴퓨터를 대체하는 값싼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해, 80년대의 컴퓨터 대중화 시대를 일구었다. 결국 이들 때문에 IBM도 뒤늦게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었다.

3세대 해커들은 80년대 초에 나온 소프트 웨어 해커들로, 개인용 컴퓨터를 위한 응용 프로그램이나 교육용·오락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컴퓨터 역사 발전에 미친 공로가 크다.

<해커를 해킹한다>를 쓴 <문화일보> 김강호 기자는, 해킹에는 기술 혁신에 따른 결과물을 나누어야 한다는 평등 사상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20세기가 일구어낸 찬란한 기술의 열매를 권력과 재력을 가진 소수가 독점해서는 안된다는 아나키적 공동체 정신을 토대로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보 혁명의 결과물이 민중의 권리와 생명을 위협하는 일에 끊임없이 반대하는 것이 해커의 근본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해커들은 사적인 목적으로 안전 장치를 부수고 남의 컴퓨터에 침입해 정보를 훔치는 파괴자를 자신들과 구별해 크래커(cracker)라는 용어로 따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도덕성이 결여된 이들 해커들이 앞으로 저지를 수 있는 범죄는 지금까지 일어난 것보다 훨씬 무시무시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다양한 곡물 생산량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마비시켜 식량난을 부추길 수 있다. 질병에 대한 약품 처방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도시의 교통 수단을 교란해 대규모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고, 통신을 두절시킬 수도 있다. 또 은행의 국제 금융 거래와 주식 시장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항공기의 이착륙 작업을 어지럽혀 항공기 추락 사고와 충돌 사고를 일으키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주요 기관을 컴퓨터로 운용하고 있는 나라들은 사이버 테러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미국의 컴퓨터 범죄 전문가인 베리 콜린 박사는 각국 정부가 △사이버 테러리즘의 현실을 정확히 알고 이에 대비하는 시스템과 인원을 준비하고, 한번 해킹당하면 반드시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새롭게 닥쳐오는 사이버 테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해야 한다 △사이버 테러를 이해하고 방어할 수 있는 두뇌 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직 선진국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한국도 여기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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