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한국과ㆍ주한 미대사관 '한국통'부상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6.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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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 한국과·주한 미국대사관 진용 대폭 개편…한·미 관계 ‘새 흐름’ 기대
북한 핵과 경수로 공급 문제로 미국 국무부내 중요 부서로 떠오른 한국과와 주한 미국대사관이 이 달 하순 큰 폭으로 인사 개편을 한다. 이번 인사는 정기 인사 성격을 띠긴 하지만 한국과장과 부과장은 물론 부대사·정치 참사·정치과장이 모두 인사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인사의 특징은 한국 정책을 세우는 첨병인 한국과장에 로버트 민튼 주한 미국대사관 정치 참사, 정책 수립에 직접 간여할 수 있는 자리인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에 찰스 카트먼 주한 미국대사관 부대사, 그리고 부대사에 딕 크리스텐슨 한국과 부과장이 승진 발령되는 등 지한파 인사들이 요직에 임명된다는 점이다. 외무부 북미1과 김 숙 과장은 이들이 모두 한국을 아는 사람들이라 일하기가 훨씬 편해졌다고 이번 인사를 환영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국무부내 제1의 한국통으로, 최근 빌 리처드슨 하원의원의 방북에 동행한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여섯 차례나 북한에 다녀온 크리스텐슨 부과장이 부대사로 승진해 서울에 온다는 점이다(71쪽 상자 기사 참조). 한국어가 유창한 그는 94년 6월 국무부 관리로서는 처음으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수행해 북한을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의 한 서방 외교관은 그가 부대사로 고속 승진한 배경에는 업무 능력말고도 북한 방문 경력이 크게 고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는 8월 22일 서울에 올 예정이며, 그의 후임으로는 현재 주일 미국대사관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1등 서기관이 임명되었다.

자신이 부대사로 발탁된 배경에 대해 크리스텐슨 부과장은 기자와의 국제 전화에서 직접적인 답변을 피한 채 “긴밀한 한·미 관계를 더욱 돈독히 유지해야 할 커다란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현재 한·미 양국이 북한 쌀지원 문제 등 여러 현안을 놓고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고, 한국이 국내 정치적으로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서 이루어진 그의 서울행은 예사롭지 않다.

한국 정책 수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동아태국 부차관보 자리로 이동한 카트먼 부대사도 관심거리다. 그는 80년대 후반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정치 참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데, 날카롭고 정확한 사태 분석력이 돋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정치 참사를 지낸 뒤 곧바로 국무부에 복귀해 2년간 한국과장을 지냈고, 다시 93년 8월 주한 부대사에 승진 발령됨으로써 8년 내리 한국 업무만 다룬 진기록을 지니고 있다. 그의 전임자로, 93년 3월 부차관보 자리에 오른 직후부터 북한 핵 문제로 임기 내내 바쁜 나날을 보낸 톰 허바드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 받아 필리핀 대사로 영전된다.

중국과·일본과보다 인원 많은 한국과

이번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은 지난해 여름 임명된 데이비드 브라운 한국과장이 임기를 1년 넘게 남긴 상태에서 전격 경질된다는 점이다. 국무부 내규상 참사관급 이상 고위직의 경우 통상 7년 이내에 승진하지 못하면 자동 은퇴하도록 하고 있어 브라운 과장의 은퇴는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임 한국과장으로는 92년 8월부터 주한 미국대사관 정치 참사로 일해온 마크 민튼이 취임하며 그의 후임으로는 국무부 인사과에서 근무하다 현재 서울에서 한국어 연수를 받고 있는 존 위틀록씨가 임명되었다.

그밖에 근래 한국과의 요직으로 떠오른 북한 담당관에는 주한 미국대사관 에릭 존 정치과장이 임명되었다. 한국인 부인을 두고 있는 그는 태국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다 한국과로 전보되는 재이크 앨러와 함께 북한 문제를 다룬다. 앨러는 과거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영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의 후임으로는 현재 파리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조셉 윤 1등 서기관이 임명되었다. 한국계 미국인이 정치과장 직에 오르기는 드문데, 그는 오는 8월 초순 서울에 올 예정이다.

한국과에서 앤 캠버러 경제 담당관을 보좌하며 북한 경제를 다루어 온 댄 허친슨이 무역대표부(USTR)로 전보됨에 따라 국무부 경제·기업국 (E&B Affairs)에서 근무하는 에드 사거튼씨가 자리 이동한다. 그도 과거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영사로 일한 만큼 한국과 인연이 있다.

한국과는 국무부 동아태국 여러 과 가운데에서도 가장 인원이 많다. 순수 외교관만 13명이나 된다. 이는 한국보다 훨씬 비중이 큰 일본과나 중국과보다 3~4 명이 많은 숫자다. 이렇게 된 까닭은, 지난해 여름 북한에 경수로 공급 문제를 전담하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가 한국과에 흡수 통합되며 인원이 보강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 부서는 당시 북한 핵문제를 전담한 로버트 갈루치 대사의 부속실 산하에 있었다. 한국과가 이처럼 위상이 강화된 데 대해 서울의 한 미국 외교관은“북한이 핵 문제로 말썽을 일으킨 덕이 아니겠느냐”라며 조크를 던졌다.

현재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부서장은 갈루치 대사(현재 조지타운 대학 학장)의 보좌관이던 조엘 위트가 책임자로 있다. 이 부서에서 회원국 관리 및 자금 조달 업무을 맡아온 캐럴 데니슨이 이번 인사에서 국무부 내의 반(反)테러 업무부로 전보되며, 그 자리는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부영사로 근무하는 토머스 바이더 2등 서기관이 맡는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조직 업무를 맡는 베네티아 카로테누토, 사용후 핵연료 문제와 경수로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도우 디에틸리, 집행위원회 업무를 맡고 있는 두그 모리스는 그대로 유임됐다.

새롭게 짜인 진용이 미국 정부의 한국 정책 수립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 외무부 관계자도 인사 대상이 대부분 실무급이란 점에서 한국 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레이니 대사, 크리스텐슨 부대사로 이어지는 미국의 주한 사령탑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막강한 실무형 진용이라는 점에서 북한 쌀 지원 문제나 한·미 행정협정 개정 문제, 통상 문제 등 양국 현안에 대해 이들이 어떤 목소리를 낼지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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