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오월동주’ 꿍꿍이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8.04.2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력 확대 · 경제 성장 위해 ‘밀월’ 불가피… 클런턴, 중국 방문 6월로 앞당겨 ‘눈짓 교환’
미국과 중국이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 가장 분명한 신호는 클린턴 대통령이 중국 방문 계획을 11월에서 6월로 앞당긴 것이다. 성 추문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지만, 양국 정상의 의지는 그만큼 결연하다.

그동안 미 · 중 관계를 가로막은 걸림돌은 △중국의 인권 문제 △대만 문제 △중국의 무기 수출이었다. 그러나 최근 양국은 모든 문제를 잘 풀어가고 있다. 최대 현안이던 인권 문제도 지난해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미국을 방문한 뒤부터 순조롭게 해결되고 있다. 장주석은 미국에서 돌아온 뒤 곧바로 11월에 중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웨이징성(魏京生)을 석방했다. 또 3월13일 첸치천(錢基琛) 당시 외교부장은 유엔 인권 B규약에 서명하겠다고 발표했다. B규약에는 표현 · 종교 · 집회의 자유 같은 권리가 들어 있다(A규약에는 경제 · 사회 · 문화적 권리가 정해져 있다).

이같은 중국의 노력에 미국은 곧바로 화답(和答)을 보내고 있다. 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매년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했던 중국에 대한 ‘인권 비난 결의안’ 을 올해에는 보류했다. 또 미국에 망명한 반중(反中) 인사 해리 우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최근 중국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수 장기가 밀매된다는 사실을 폭로했지만, 미국은 이 사건을 크게 확대하지 않았다.

미국, 미사일 기술 중국에 제공

미국은 대만 문제에서도 중국 손을 들어 주었다. 2월21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이전부터 양안 간에 비공식 통로를 만들려고 노력 했고, 그 사명을 1월 초순 중국과 대만을 방문한 페리 전 국방장관에게 위탁했다고 폭로했다. 이 방문에서 페리는 중국 최고 지도부에 ‘대만 독립을 공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무력 통일은 반대한다’ 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또 대만에 들른 페리 일행이, 대만 독립을 내세우는 야당인 민진당 최고 지도부를 만나 ‘당신들이 언젠가는 정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단 독립은 파멸이다. 미국이 도우러 왔다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대만에서 민진당의 기세는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의 국민당을 앞서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입장은 3월12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조셉 나이의 기고문에 잘 드러나 있다. 97년 11월까지 미국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뒤 현재 하버드 대학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기고문에서 ‘미국은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고 무력 행사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지키면서 대만이 독립을 선언해도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 베이징은 대만이 독립만 하지 않는다면 국제 활동을 확대하는 것을 막지 말고 올림픽에도 참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만은 독립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맹세하고 대륙과의 대화 · 투자 · 인적 교류를 늘려야 한다’ 고 제안했다. 만약 이 제안대로 실현된다면 미 · 중 간의 최대 현안이 해결되는 셈이다.

군사 분야에서도 많은 진전이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3월13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이란에 핵무기 관련 물질을 수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측은 지난 2월에 중국 당국에 이 사실과 관련해 항의 서한을 보낸 바 있다. 중국은 이 서한을 받은 지 2주 만에 수출을 중지한다는 방침을 백악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3월18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중국이 이란과 파키스탄에 미사일을 수출하지 않는다면 미사일 기술을 중국에 제공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또 미 · 중 양국은 96년 12월 중국의 츠하오텐(遲浩田) 국방부장이 미국에 들른 뒤부터 함대를 교환 방문하는 등 군사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버드 대학에 중국 장성에게 미국을 소개하는 프로그램까지 개설되었다.
중국, 지적 재산권 등 ‘무역 장벽’ 허물기 나서

국방연구원 김태호 박사는 “미 · 중 군사 대립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의 안정을 바라는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인민해방군도 지금 수준으로는 미군의 적수가 못되기 때문에 협력해 힘을 키워야한다. 특히 인민해방군은 고급 군사 기술을 미군에게서 배워야 하는 처지이다”라고 말했다. 실례로 중국은 80년대에 블랙 호크 헬기 24대를 미국에서 들여왔는데 현재 무용지물이다. 천안문사태 이후 미국이 군사 제재를 가해 부품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국이 이처럼 협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한반도와 대만 해협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도 그렇다. 무엇보다 미국은 인도네시아의 말라카 해협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말라카 해협은 미국이 걸프 만의 원유를 태평양으로 실어 나르는 길목이다.

인도네시아 사태에는 중국의 이해도 걸려 있다. 현재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폭동의 주요 표적은 화교이다. 만약 화교들이 피살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중국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미 중국은 인도네시아의 화교들에게 심각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개입할 수도 있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석유 수송로인 말라카 해협에서 미국과 중국 함대, 그리고 인도네시아군이 맞선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미국에게는 큰 위협이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중국도 미국이 필요하다. 중국이 21세기에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2개 있다. 하나는 아시아 경제 위기이다. 현재 중국 경제는 매년 7~10%씩 성장하 있다. ‘아시아 경제 위기’ 라는 이 고비만 잘 넘기면 2020~2030년께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될 공산이 크다. 다른 하나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세계 경제 체제에 들어가는 문제이다(중국은 97년 말 현재 무역 규모 세계 10위). 이를 위해 중국은 미국이 요구하는 △지적 재산권 △관세 △비관세 장벽(기술 표준 · 규격 · 세관 통과 · 출입국 조처 · 안전 보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 중국은 상당 부분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

미국은 앞으로 세계 문제를 풀어 나가는 데 중국을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인천대 한광수 교수는 “미국은 이제 중국의 저력을 외면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미국은 일본 위주였던 아시아 정책을 중 일 균형 정책으로 바꾸었는데, 지금은 중국 중심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물론 협력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앙국 간에는 갈등 요소도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96년 4월의 ‘미 · 일 신안보 공동 선언’ 과 97년 9월에 나온 ‘미 · 일 방위지침 개정안’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또 중국이 개발하고 있는 대륙간 탄도탄 DF3l(사정거리 3천㎞, 핵추진전략미사일잠수함에 탑재 가능)과 DF41(사정거리 8천~l만2천㎞)은 분명히 미국 본토를 겨냥한 전략 무기이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 · 중 간의 미래가 밝다고 전망한다. 고려대 서진영 국제대학원장은 “미국의 세계 전략과 중국의 야망을 고려하면 두 나라는 서로 도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21세기에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할 수 있는 국가는 중국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찍이 마오쩌둥(毛澤東)은 두나라가 한 번은 부딪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양국은 현재 갈등 구조에서도 협력하고 있다. 求大同在小異(큰 화합은 찾고 조그만 차이는 남겨 두자)는 것이 중국의 원칙이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미 · 중 관계에 생존을 걸고 있는 한반도의 운명이다. 과거 어느 때에도 만나지 못했던 미 · 중 협력 시대를 맞아, 새로운 질서에 대한 한국의 적절한 현실 인식과 대처가 그만큼 절실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