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공동체 ‘밑그림’이 보인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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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공동체 창설 논의 급물살…화폐 통합 가능성도
“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에도 유로화와 비슷한 통화가 틀림없이 출현할 것이며, 아마 그것은 중국 위안화, 일본 엔화, 한국 원화의 조합이 될 것이다.” 미국의 안보 상황을 세계화에 통합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으로 양분한 뒤, 그렇지 못한 지역에 대한 ‘선제 공격’을 옹호해 유명해진 미국의 토머스 버넷(<시사저널> 제771호 관련 기사 참조)은 자신의 책 <펜타곤의 새 지도>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동아시아 경제가 급속히 성장을 거듭해 종국에는 화폐 통합을 이룰 뿐 아니라, 현 유럽연합(EU)의 모태가 된 유럽공동체와 같은 거대한 지역 경제 공동체가 출현하리라는 것이다.

그의 예언은 당장 내년에 적중할 수 있다. 이른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구체화하려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국제 무대에서는 동아시아공동체의 필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이같은 지역 공동체를 결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일정까지 줄줄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7월 초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열렸던 아세안재무장관회의가 대표적이다. 이 회의에서는 동아시아공동체의 전 단계로서 ‘동아시아 정상 회담’을 창설해 정례화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이 방안은 오는 11월 라오스에서 열릴 ‘아세안+3’ 회의에 정식 의제로 오른다. ‘아세안+3’ 회의는 동남아시아 지역 10개국과 한·중·일 3국을 회원국으로 하고 있으며, 동아시아공동체를 열렬히 주창하는 마하티르 총리의 제안으로 1997년 첫 회의가 열렸다.

중국·일본·말레이시아는 동아시아정상회담이 공식 확정될 경우, 내년에 열릴 첫 회의를 자국에 유치하겠다고 신청한 상태이다. 만약 동아시아공동체가 구상대로 실현되면, 이 기구는 현재의 아시아태평양경제회의(아셈)와 달리 미국을 배제한 ‘아세안+3’ 회원국을 기본 회원국으로 해서 출범하게 된다.

한·중·일을 비롯해 일찍이 1990년대 초반 당시 집권자 마하티르 총리를 통해 ‘동아시아 지도자 코커스’ 창설을 제안한 말레이시아는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의 주도국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점증하는 영향력 확대에 불안감을 느껴온 인도네시아와 베트남까지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에 가세했다. 중국과의 ‘1 대 1’ 협상으로는 국익 확보가 힘에 부칠 수 있으므로, 집단의 힘을 빌려 양자 관계를 풀어보겠다는 심산이다.

꼭 동아시아공동체는 아니라도 동아시아 각국이 역내 국제 기구를 통해 문제를 풀어보려 했던 시도가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하티르 전 총리의 코커스 창설 제안, 1997년 외환 위기 때 일본이 내놓았던 ‘아시아 통화 기금’ 창설 제안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구상은 그때마다 동아시아에서 영향력 감소를 우려한 미국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1990년대와는 판이해졌다. 가장 큰 전환의 계기는 중국의 등장이다. 중국은 21세기 들어 이미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로 등장했고, 일본과의 무역 규모도 미·일간 교역 수준에 맞먹거나 머지않아 이를 추월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게다가 다른 나라들도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역화는 세계화의 또 다른 측면이며, 경제에서 상호 의존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만큼 지역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논리다.

여기에 아시아 각국의 저명한 지도자들도 동아시아공동체 창설을 위해 열심히 군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 6월 ‘아시아의 미래’라는 이름 아래 일본 닛케이 신분이 열었던 국제 회의도 그 중 하나이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전 총리,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등 당시 이 회의에 참석했던 각국의 원로 정치인들은 ‘한·중·일 3국이 견인하고, 아세안 10개국이 추동하여 강대한 아시아를 만들자’며, 이를 위한 동아시아공동체 창설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1997년 ‘아세안+3’ 첫 회의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이래, 동아시아공동체를 향한 준비 작업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행했던 역할은 자못 크다. 그는 1998년 베트남에서 열린 제2회 회의 때 ‘아세안+3’이 동아시아공동체로 발전하기 위한 방안을 실질적으로 연구할 ‘스터디 그룹’, 이른바 동아시아비전그룹 창설을 제안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은 이듬해 11월 싱가포르 회의에서 공식 채택되어, 이로부터 분쟁 방지 및 평화 정착·경제 협력·환경 보호를 위한 국제 공조 등을 주요 목표로 한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의 실질 내용이 나왔다.

이처럼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한 걸음씩 진척을 이루는 동안, 한켠에서는 이와 짝을 이루는 아시아 화폐 통합 논의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5월 제주도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 연차 총회에서는 한국의 이헌재, 중국의 진런칭, 일본의 구로다 하라히코 등 한·중·일 3국의 재무 당국자들이 손을 맞잡고, 화폐 통합을 위한 5단계 계획을 손질해 내놓기도 했다. 주요 내용은 우선 쌍무 교환 협정을 통해 자국이 보유한 외환을 내놓고, 이를 통해 채권 시장을 활성화하며, 자유무역협정의 진척 정도를 보아가며 궁극적으로는 화폐 통합을 이룬다는 것이다.

동아시아공동체를 향한 발걸음은 이처럼 한걸음씩 착실히 진행되고 있지만, 갈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은 일단 원칙만 정해졌을 뿐, 실질적인 의제는 확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국가간 격차도 크며, 경제 통합의 실질적인 기초가 될 자유무역협정 체결 작업도 느림보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지역에서 상호의존성이 커질수록, 각국의 이해를 교통 정리해줄 실행력 있는 의사 결정 기구가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아시아공동체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토머스 바넷이 ‘틀림없다’고까지 단언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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