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혼란, 경제 불안 일본이 떨고 있다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1.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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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선거 패배·연쇄 부도로 '추운 2001년' 될 듯

사진설명 열광하고 있지만 : 신년사를 하는 아키히토 일왕에게 일장기를 흔들며 환호를 보내는 도쿄 시민들.

'금(金)'. 이것은 지난 12월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뽑은 '올해의 한자'이다. 매년 섣달 선정되는 올해의 한자에응모자들이 시드니올림픽에서 일본 선수들이 딴 금메달을 연상해 '금'자를 선택했다. 또 지난해에는2천엔 권이 새롭게 발행되었고,금융기관파탄이 이어지기도 했다. 거기에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열려 응모자 대부분이'금'(김)자를선호했다는 것이 한자능력검정협회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2001년에는어떤 한자를 올해의 한자로 선정할까? 자민당1당 지배 정치가 종언을 고한 1993년 이래계속되어 온 정치 혼란은 올해에도 이어지리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전망이다. 올해의 최대 정치 이벤트는 여름에 치러질 참의원 선거이다.

그러나 실언과 추문으로지지율이 밑바닥을 맴도는 현재의 모리 총리 체제로는참의원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이 자민당의 인식이다. 이 때문에 정기국회가 끝나는3월께 '모리 끌어내리기'가 본격화할 것이다. 만약모리 총리가 참의원 선거 이전에 사임할경우 후임으로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가 유력하다. '모리 이후'의 유력한 후보였던 가토 고이치 전간사장은 지난12월 스스로일으킨 '난'에서 패해 정치 생명마저 위태롭게되었다. 다른 유력한 대항마들은여론의 지지와당내 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자민당이 모리 대신 하시모토 간판을 내걸고 참의원 선거를 치르더라도 승산은 별로 없을 것 같다.정치 전문가들은올해 참의원 선거에서 인기가 형편없이 떨어진 자민당은 또다시 패배할 것이며,이에 따라일본의 정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자위대 국군화 등 우경화 거세질 수도

미국의 부시 정권등장이 일본의우경화를 재촉할 위험도 있다.일본의 정치 전문가들은 부시 정권이 경제보다 안보 동맹에중점을 둔 일본 정책을 추진할것으로 내다본다. 일본에 시장 개방이나 구조 개혁보다는'방위 분담'을 더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압력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헌법 개정 논의를 더욱 가속화할 위험이 있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조차 헌법 개정과 자위대국군화를 주장하고있는 터이다.

IT 혁명. 이것은 한 출판사가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유행어 대상'으로 지난 12월에 뽑힌 말이다. 그만큼 지난 한해는 정보 기술을 의미하는 IT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었다. 모리 총리는 지난해에 총리 직속으로 'IT 전략회의'를 설치하고, 5년 안에 IT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e 재팬 구상'을발표했다. 이계획에 따르면, 일본은 2005년 안에 4천만 가구가 초고속 인터넷망에 상시 접속되도록 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이다. 인터넷 보급률도 60%로끌어올리고, 미국보다 정보기술 전문가를 더 많이육성할 계획이다.

정보기술뿐 아니라 50년 내에 노벨상 수상자를 30명까지 배출하고 세계 기술패권을 장악하려는 과학기술기본계획(2001∼2005년)도 발표되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24조 엔을 과학 기술 연구 개발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이 금액은 이전의 5개년 계획 때 쏟아부은 17조 엔보다 40%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당장 올해 일본 경제의 전망은 썩 밝지 않은 편이다. 릿쿄(立敎) 대학사이토 세이치로(齊藤精一郞) 교수는<슈칸 다이아몬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 경제가올해 난기류에 휩싸일 가능성이있다고 진단했다. 사이토 교수에 따르면, 올해일본 경제는정부 예측(1.5%)과 일본은행 예측(1.9∼2.3%)대로2%대 실질 성장이 예견된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가장 큰 난기류는 미국의 주가하락과 성장 감속이다. 사이토 교수는미국의 장기 호황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으며, 연착륙을 노린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경제 운영 방식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또 1994년부터 불기 시작한 이른바 닷컴 붐도올해부터는 본격적인조정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나 일본 경제,나아가 주식시장에 큰 악재로 작용하게 될것이라고 사이토교수는 강조한다.

두 번째 난기류는 금융 불안과연쇄 도산이다.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내년 4월부터 예금원금지급보장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올해 부실 채권 처리를 서두를것이다. 이에따라 건축회사·유통회사·지방 중소기업이 대거 도산할 위험성이 있다. 연쇄도산의 여파로 디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어, 즉개인 소비 지출이 더욱 후퇴하게 되어 모처럼 이륙하기시작한 일본 경기를 다시 주저앉힐 가능성이있다는 얘기이다.

세 번째 난기류는정치 혼란이다.올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패배가 예견되기 때문에 일본 정치가크게 표류할가능성이 있다. 장기 전망도 밝지는않다. 미국 국가안보회의가 지난해 12월18일 발표한 2015년예측 보고에 따르면, 일본은 2015년에 이르면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이은 제3위의 경제 대국지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국가안보회의는 그 이유로 일본이 아시아 지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뼈아픈 구조 개혁이 필요한데그런 노력을게을리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일본의 노동력 부족이 심각한데도 이를 노동 시장 전면 개방이 아니라 해외 이민 자손 귀국이나 여성 취업 확대로 때우려는 일본 정부의 편협한 전략을 들었다.


소득 격차 갈수록 커져 중산층 점점 감소

앞서 말한 2000년의 올해의 유행어 대상에는 '17세'라는 말도 차상으로 뽑혔다. 그만큼지난 한 해는 17세 소년들의 충격적인범죄가 판을 친 한 해였다.일련의 사건은작가 무라카미 류(村上龍)가 말하는 '흔들리는 일본의 불변 이미지'에서 연유한 것이다. 즉 일본의 기존 공동체나 제도가 무너지는과정에서 소년들의 '이유 없는 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지난 한 해는 '불평등 사회 일본'이라는 말도 크게 유행했다. 이전의'1억 총중류'라는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대신'불평등 사회'라는 말이 회자되고있는 것이다.그것은 일본 사회에 구미식 성과주의가 도입되어 소득 격차가 날로 확대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렇게 보면 올해 일본의 전체 모습은 썩 밝은 편이 아니다.한 해를총결산하는 '올해의 한자'는 올해에도 밝은글자를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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