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정신·정파, 모조리 '우익'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1.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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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이즈미 총리와 주요 장관 성향 분석/
골수 보수 파벌에 속한 정치 가문 후예들


본격파 전후 세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59) 자민당 총재가 니혼마루(日本丸)의 새로운 선장에 취임하자마자 일본 정국에 우경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 기간에 각종 회견과 유세를 통해 헌법 개정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언해 왔다. 또 총리 취임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자위대가 군대가 아닌 것이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는 이전부터 '헌법은 알기 쉬운 문장으로 쓰여야 한다' '총리 직선제를 도입하려면 헌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다' 따위 이유를 들어가며 자민당 개헌파를 지원 사격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나카다니 겐(中谷元·43) 의원을 방위청 장관으로 기용한 것도 심상치 않다. 패전 이후 일본의 역대 내각은 문민 우위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런데도 고이즈미 총리가 방위대학을 나와 레인저 부대 교관을 지낸 이른바 '군복조'를 처음으로 방위청 장관에 기용한 것은, 그의 지론대로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만들기 위한 포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8월15일에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하겠다는 공약도 물의를 빚고 있다. 연립 여당의 한 축인 공명당과 보수당은 고이즈미 총재가 취임한 뒤 자민당과 가진 연석회의에서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하는 것은 정경 분리를 규정한 헌법 제 20조에 위반하는 행위라고 항의했다.


공명·보수당, 연립 정권 이탈할 수도




공명·보수당은 또 '중국이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할 때 배상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과거의 피해를 일본의 일부 군국주의자들에 의한 전쟁 피해라고 한정했기 때문이다. 총리가 군국주의자들의 영령을 함께 안치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하면 중국이 크게 반발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1985년에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가 일본 총리로서는 전후 처음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해 중국은 물론 한국으로부터 반발을 샀다. 그 이후 현직 총리의 공식 참배는 중지되어 왔다. 고이즈미 총리가 오는 8월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할 경우 공명당과 보수당이 연립 정권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 한국·중국과의 마찰이 격화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 때 '교과서 검정에 다른 나라가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그는 또 자민당 젊은 세대 의원들과 가진 모임에서도 "한국 대사가 교과서 검정 과정 중에 의원인 나에게 불합격을 요구해 온 것은 부당한 일이다"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 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에 대해서도 적극 반대해 왔다. 그 이유는 "외국인 주제에 왜 참정권을 달라고 하는가? 귀화에 반대하면서 참정권을 달라고 하는 것은 억지 논리이다"라는 것이다. 재일 동포에게 일본의 지방 참정권을 부여하는 문제는 김대중 정권이 일본 정부에 강력히 요구해 온 현안이다. 또 김대중 정권은 모리 내각보다는 새로 출범하는 내각을 상대로 역사 교과서 재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해 왔다.


그러나 지난 4월27일 가진 전화 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재수정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책을 요청하자 고이즈미 총리는 "한·일 관계의 대국적인 견지에서 어떻게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지혜를 짜내겠다"라고 대답했다. 재수정을 약속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고이즈미 총리는 강성 정치인이다. 그런 강성 기류는 어떻게 해서 형성되었는가. 우선 그의 핏줄이 최초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고이즈미 총리는 조부 때부터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가문 출신이다. 조부 마타지로(又次郞·1865∼1951)는 전쟁 전에 초등학교 교사와 지방 신문 기자를 거쳐 하마구치 내각의 체신부 장관·중의원 부의장·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부친 준야(純也·1904∼1969)도 국회의원에 아홉 번 당선되었으며, 이케다 내각의 방위청 장관을 지냈다.


고이즈미 총리는 세 번 도전 끝에 자민당 총재 자리를 거머쥐었다. 우정사업 민영화론이 자민당 표를 깎아 먹는다는 이유로 최대 파벌 하시모토파의 반발을 샀기 때문에 3수 끝에 총리 자리를 차지했다. 따지고 보면 우정사업 민영화론은 그의 조부 마타지로가 체신부 장관을 지낸 영향을 크게 받았다. 헌법 개정이나 자위대를 군대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것은 부친 준야가 방위청 장관을 지낸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즉 고이즈미 총리의 정책이나 지론을 꼼꼼히 따져 보면 핏줄에서 연유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자민당 의원 3분의 1이 '2세, 3세 의원'




자민당이 '우향우'로 급선회하는 것도 당 소속 의원들의 핏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자민당 의원의 약 3분의 1은 선거구를 조부나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이른바 '2세, 3세 의원'이다. 특히 간부급 의원들은 젊었을 때 선거구를 물려받아 10선 전후의 당선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일본의 과거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자기 조상이나 가문을 부정하는 격이 된다. 자민당이 전전 세대에서 전후 세대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점점 우경화해 가는 원인은 바로 2세, 3세 의원들의 존재 때문이다.


〈시사저널〉 조사에 따르면, 자민당의 새로운 간사장으로 기용된 야마자키 다쿠(山崎拓) 의원의 경우, 조부가 국수주의자들의 비밀 결사 단체였던 겐요샤(玄洋社) 간부였다. 겐요샤의 흐름을 이어받은 낭인 사무라이들이 그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일으켰다.


그래서 그런지 야마자키 간사장은 고이즈미 총리보다 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발언해 왔다. 그는 자위대를 군대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민당 '국방족 의원'의 중심 인물이다.




야마자키 간사장과 함께 자민당 3역의 하나인 정조회장에 기용된 아소 타로(麻生太郞) 의원 가문은 더 '화려'하다. 조부가 자민당 보수 우파의 원조 격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 장인이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전 총리이며 누이동생은 황족과 결혼했다. 또 자민당 총무회장으로 기용된 호리우치 미쓰오(堀內光雄) 의원도 조부와 부친이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고이즈미 총리의 강성 기류는 그가 소속했던 파벌에서 큰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을 수도 있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 대학 명예교수에 따르면, 자민당 보수 우파는 본류와 방류로 나뉜다. 본류는 요시다 전 총리로부터 시작된다. 본류 파벌은 그후 이케다·사토 파로 나뉘어 미야자와·하시모토 파 등으로 이어져 왔다.


이들은 태평양·중일 전쟁에 대해서는 반성하지만 러일·청일 전쟁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또 한일합병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 이를 정당화한다. 이들은 또 아시아보다는 미국·영국을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케다-미야자와로 이어지는 파벌은 미국과의 협조를 우선으로 하며 경무장과 현행 헌법 견지 등을 주장해 왔다.


반면 보수 방류는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원류이다. 이 파벌은 후쿠다·아베·미쓰즈카·모리 파로 이어져 왔다. 와다 교수에 따르면, 보수 방류는 과거의 모든 전쟁과 한일합병을 긍정한다. 또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런 연유에서 과거 역사 왜곡 발언 파동을 일으킨 자민당 정치인들은 대개 보수 방류에 속해 있었다. 후쿠다파의 후지오 문부상과 오쿠노 국토청 장관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부시 정권, 일본 우경화에 한몫 거들어




고이즈미 총리는 런던 대학 유학 중 부친이 급서함에 따라 귀국해 27세에 보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후 후쿠다 다케오(福田赴夫) 전 총리의 비서로 들어가 정치 수업을 받았다. 그는 30세에 처음 금배지를 단 뒤 후쿠다파에 입문해 아베·미쓰즈카·모리 파로 이어지는 파벌에 속해 있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기 직전까지는 모리파 회장을 맡았다.


이렇게 보면 그의 강성 기류는 보수 방류인 후쿠다파에 입문하면서 발아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후쿠다파는 한국의 역대 정권과도 깊은 파이프 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방한한 사실이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고 한 주일 대사관 관계자는 말했다.


역사 교과서 검정을 비롯해서 최근 자민당 우파의 발언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부시 정권 등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중국 정부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타이완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에게 비자를 발급하고 일본 입국을 허용했다. 또 중국산 대파·표고버섯·돗자리 등 세 품목에 대해 처음으로 세계무역기구(WTO)가 허용하는 긴급수입제한조처를 발동하기로 결정했다.


자민당 우파의 이같은 '중국 눈치 안보기' 작전은 부시 정권의 아시아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사히 신분〉 보도에 따르면 '부시 정권의 군사 계획 초점은 이미 유럽에서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옮아가고 있다'고 한다.


부시 정권은 또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미·일 안보동맹을 중시하고 일본 정부에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자민당 우파는 부시 정권의 이같은 일본 중시 정책을 호기로 중국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부시 정권 등장에 이어 우경화한 고이즈미 내각이 등장함으로써 한·일, 북·일 관계는 물론 아시아 지역이 다시 '신냉전' 상태로 돌입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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