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린내 가시지 않는 '국경의 밤'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1.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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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멕시코 접경 지대, 불법 이민 행렬 끝없어…
지난해 4백91명 사망, 브로커·마약상도 득시글


미국의 캘리포니아·애리조나·뉴멕시코·텍사스 주와 장장 336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인구 9천7백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이 5천 달러인 이 나라는 하필이면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를 이웃으로 둔 탓에 밤낮 없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경 지대의 허술한 감시망을 뚫고 미국행을 강행하는 불법 이민자들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탈북자 3명이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중 한 사람인 김순희씨는 두 달 전 미국에 불법 입국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나 현재 추방 여부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접경 지대를 통해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가려다 적발된 멕시코인은 무려 1백60만명이다. 또 멕시코 이민 당국이 국경 지대에서 강제 추방한 불법 입국 외국인은 15만2천명에 달했다. 미국 국경순찰대가 체포한 비멕시코인도 2만8천명이었다.


지난해 국경을 넘다 희생된 사람은 4백91명으로 2년 전(3백60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올해는 지난 4월 말까지 9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의 뉴멕시코·애리조나 주에 있는 열대 사막 지대에는 전갈과 방울뱀이 우글거린다. 지난 5월에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 14명이 애리조나 주의 한 사막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도 목숨을 건 미국행은 끊이지 않는다. 약 8천8백명으로 구성된 미국 국경순찰대는 취약지로 꼽히는 국경 지대 곳곳에 이중 삼중으로 담을 치고, 야음을 틈 타 밀입국하려는 사람들을 적발하기 위한 적외선 탐지기, 심지어는 땅굴탐지기까지 설치해 놓고 있지만, 워낙 국경이 긴 데다 순찰 요원이 부족해 100% 적발하기는 불가능하다.


특히 단골 코스로 알려진 텍사스 주 접경 지대의 리오그란데 강은 요즘 5백년 만에 처음으로 수심이 15m까지 줄어 과거 어느 때보다 불법 이민자에게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미국 이민 당국이 강 바닥에 날카로운 철판을 깔아놓았다고 하지만, 결사적으로 미국행을 감행하는 불법 입국자들을 막지는 못한다.


그래도 요즘은 과거보다 불법 입국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단속이 강화된 이유도 있지만 지난해 12월 취임한 빈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취임 후 첫 해외 순방국으로 멕시코를 찾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폭스 대통령과 만나 불법 이민을 규제하고 멕시코인 일정 수가 미국에 건너가 임시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 또 폭스 대통령 취임 후 경제 사정이 나아지고 있는 것도 멕시코인들의 미국행이 주는 데 일조하고 있다.


전세계인의 불법 미국행 '대기소' 된 멕시코




그런데도 여전히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는 불법 이민을 노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캘리포니아 주의 샌디에이고, 애리조나 주의 더글레스, 뉴 멕시코의 엘파소, 텍사스의 로레도와 맥알렌 등 미국의 국경 마을 건너편에 있는 멕시코 마을에는 주당 48시간 근무에 고작 35∼45 달러를 주는 일자리를 찾아 미국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득실대고 있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최근호에 따르면, 이곳 멕시코 국경 마을로 몰려드는 외국인의 국적은 중국 스리랑카 인도 쿠바 시에라리온 파키스탄 소말리아 콜롬비아 이라크 이란 등이다. 얼마 전 멕시코 이민 당국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국경 지대에서 불법 체류하다 적발된 외국인 4백여 명의 국적은 무려 39개국에 달했다. 앞서 지적한 나라말고도 탄자니아 토고 예멘 요르단 방글라데시 알바니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에콰도르가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전세계 6대주에서 몰려들고 있는 셈이다. 멕시코 국립이민연구소 산하 불법이민자구금소의 길베르토 팔메린 소장은 지난 6월7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멕시코는 이제 불법 미국행을 꿈꾸는 전세계인의 통로가 되었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국경 지대의 불법 체류자들은 일단 검거되면 한결같이 피난민 지위를 요구한다. 이곳에 파견된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 관리는 1주일에 두 번 난민 심사를 하지만 판정 허가를 무척 까다롭게 내린다. 특히 경제적 사유로는 좀처럼 난민 자격을 주지 않는다. 지난해 2백66건이 접수되었으나 난민 적격 판정을 받은 것은 78건에 불과했다. 일단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면 5년 뒤에는 멕시코 귀화 시민이 될 수 있다. 물론 난민 지위를 얻더라도 그들의 최종 행선지는 멕시코가 아닌 미국이다.


미국 밀입국 희망자가 많은 만큼 불법 이민 알선 조직 역시 활개를 치고 있다. 멕시코 이민 당국은 최근 특별수사대를 가동해 무려 57개에 이르는 불법 이민 알선 조직을 적발했다. 이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알선료를 1인당 3백 달러 정도 받았지만, 근래 국경 감시가 강화되자 평균 1천5백∼2천 달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마다 수십억 달러씩 벌어들이는 불법 이민 알선 사업은 이제 멕시코의 신종 호황 산업이 되었다.


알선료, 최고 3만 달러까지 "부르는 게 값"




특히 외국인에게 알선료는 부르는 것이 값이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얼마 전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까지 왔다가 공항에서 적발된 한 20대 여성은 불법 알선책에게 무려 3만 달러를 준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국 이민국 자료에 따르면, 이들 조직에 미국행을 꿈꾸는 중국인들을 상대로 돈벌이에 나선 어글리 코리언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불법 이민 알선 조직 외에도 접경 지대 곳곳에는 마약 밀매꾼이 득실댄다. 최근에는 일부 멕시코 청소년들이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미국으로 마약을 실어나르는 운반책으로 활동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뉴스 위크〉 최근호에 따르면, 뉴멕시코 주 국경촌 엘파소로 통하는 다리 3곳에서 체포된 청소년들이 1997년만 해도 80여 명에 그쳤으나 그 후 해마다 수백명씩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멕시코의 지하 마약 거래량은 3백억 달러 규모로 세계 최고다. 미국으로서는 뒷마당인 멕시코에서 마약 거래가 성행해 큰 골칫거리다.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멕시코인은 약 8백50만명인데, 그 중 3백여만 명이 공식 기록에 잡히지 않는 불법 입국자로 추산된다. 미국 이민 당국은 해마다 멕시코인들의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으며, 멕시코도 외국인들의 국경 지대 유입을 막기 위해 연평균 9백만 달러를 쓰고 있다. 특히 멕시코 이민 당국은 불법 체류 외국인을 수용하는 구금 시설을 대폭 확충하기 위해 올해 2천5백만 달러를 책정했다. 그러나 불법일지라도 일단 미국 땅을 밟기만 하면 당국의 감시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착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에 젖어 있는 수많은 이민 희망자들에게 그 효과는 미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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