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좋고 북 좋은 폐비닐 사업 위해 방북"
  • 남문희 기자 (bulgot@e-sisa.co.kr)
  • 승인 2001.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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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방북' 시비 오른 권오홍 (주)시스젠 사장/
"정부, 경협 창구 다각화해야"


우리 현실에서 대북 사업에 뛰어들어 적지 않은 세월을 버텨낸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금강산 사업 이후 현대가 처한 어려움을 보더라도 이 바닥이 얼마나 척박한 곳인가는 분명해진다. (주)시스젠 권오홍 사장(41·오른쪽 사진)이 바로 이런 현장에서 12년을 버틴 사람이다.


1989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입사해 대북 사업 분야를 처음으로 개척했고, 최근의 남북 IT 협력사업체인 시스젠 운영에 이르기까지 권사장은 한번도 이 현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짧지 않은 기간 그를 추동해온 힘은 남과 북 사이에 올바른 경제 협력 모델을 창출해 보겠다는 소박한 열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현장 중심주의는 통일부 담당 공무원들의 '상식 및 관행'과 종종 충돌을 빚기도 했다. 급기야 얼마 전에는 통일부가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했다고 그를 검찰에 통보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당국의 허가를 얻지 않고 방북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어 이 분야 종사자들 사이에 커다란 파문이 일기도 했다. 현재 베이징에 머무르고 있는 그와 급히 인터뷰했다.




지난 7월3일자 연합뉴스는 정부 당국자 말을 인용해 권사장이 방북 신청을 하지 않은 채 북한을 다녀와 이런 사실을 검찰에 통보하고 (주)시스젠의 남북협력 사업자 및 사업 승인을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인가?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한 채 방북한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방북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한 오보이다. 또한 협력 사업자 및 사업 승인에 대해서는 통일부가 취소하기 전에 우리측이 먼저 반납했으므로 이 부분 역시 문제가 있다. 통일부가 조처 내용을 문서로 통보하기도 전에 언론에 먼저 보도된 것 역시 대단히 유감스럽다. 현재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정부 승인을 받지 않고 방북한 이유가 뭔가?


지난 3월부터 북측의 초청장을 첨부해 두 차례나 통일부에 방북 신청을 했으나 모두 접수조차 거부당했다. 그 다음에는 접수는 했으나 서류 보완을 요청해 왔다. 그러나 이미 그 시점에는 북측과 약속한 사업 기일이 촉박해진 상태였고, 북측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통일부가 요청한 대로 서류를 보완하려면 또다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북쪽 파트너와의 신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일부가 두 차례나 접수를 거부했다는 것은 요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복잡한 이유는 알기 어렵고, 당시 통일부 실무자는 우리에게 초청장을 발급한 북측 기관이 아태(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나 민경련(민족경제련합회)같이 알려진 단체가 아니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담당 실무자들이 북쪽의 실제 현실보다는 관행에 너무 집착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정작 북쪽에 들어가면 승인받은 사업 외에도 여러 분야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할 때가 많다. 그런데 그런 하나하나의 사업에 대해 단계와 절차를 모두 밟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통일부가 요구하는 아태나 민경련이 아닌 범태(범태평양조선민족경제개발촉진협회) 또는 이번의 경우 조선장생무역총회사를 파트너로 삼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통일부가 북한측의 공식 창구라고 인정하는 아태나 민경련은 일종의 창구 기능을 하는 곳이다. 남북 경협이 한 단계 발전하려면 북한의 사업 주체와 직접 대화해야 한다고 그동안 생각해 왔다. 범태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들이 있는 것은 나도 알고 있지만, 최근 국정원도 범태가 운영하는 조선인포뱅크가 북한 공식 사이트라고 인정했다(5월29일자 국정원 홈페이지 네티즌 대화마당). 그렇다면 북한측과의 인터넷 사업은 북한 공식 사이트를 운영하는 범태와 협의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 마찬가지로 이번에 문제가 된 조선장생무역총회사 역시 상당한 규모의 대외 무역업체이다. 이처럼 북한의 사업 주체가 직접 나섰다는 것은 남북 경협 사상 희귀한 사례여서 그만큼 북측이 배려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 정부는 이를 못 믿겠다고 하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측 역시 대단히 의아해 하고 있다.


통일부는 시스젠이 지금 어려운 상황이고, 권사장이 추진해온 사업들이 민간업자로서 추진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보는 것 같다.


우선 시스젠이 지금 어려운 상황이란 점은 인정한다. 또 이 자리를 빌려 주주들이나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투자 자금을 한푼도 헛되이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북측을 상대로 많은 성과가 있었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언젠가 빛을 볼 날이 꼭 있으리라고 믿는다. 내가 추진해온 사업 성격이나 규모가 여느 대북 진출 업체들과 달랐던 것은, 오랜 기간 내가 가져온 소신 때문이다. 단순한 영리 목적이었다면 나는 이 현장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 준국가 기관에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남과 북이 경협이라는 통로로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대화할 수 있는 모델을 꼭 만들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는 1회성으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남과 북 모두의 필요에 부응하는 사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방북 아이템이 권사장의 그런 희망에 부합하는 것이었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당시 방북 목적 중 하나는 5월7∼11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국제 박람회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참고로 1989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특수사업부에서 일할 때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이번과 비슷한 국제 박람회가 열린 적이 있다. 국내 기업 참여 업무를 내가 담당했는데, 그때 중국이 이 박람회를 계기로 변화하는 과정을 똑똑히 목격했다. 이런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5월의 평양 박람회는 나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고, 애초 계획대로 3월에 방북이 이뤄졌다면 국내 업체의 참여도 가능했을 텐데 너무나 아쉽다. 또 한 가지 사업은,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농업용 폐비닐을 가지고 북한에서 필요로 하는 경유나 휘발유를 생산하는 사업이었다. 현재 약 30만t이나 재고가 쌓여 있고 매년 쏟아지는 폐비닐 처리 문제 때문에 우리 환경부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이것으로 북한이 필요로 하는 기름을 생산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서로의 필요에도 맞고 또 장기간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방북 기간이 4월24일부터 5월15일까지로 되어 있는데, 성과가 나타났나?


실제로 놀랄 만한 성과가 있었다. 당시 중국에서 원재료와 기자재를 도입해 약 2주일 만에 공장 시설을 짓고 5월8일부터 가동하기 시작했는데, 둘째 날부터 혼합유를 생산했고 셋째 날에는 이를 정제해 휘발유와 디젤을 추출했다. 국내의 품질 기준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양수기를 돌리거나 차량을 운전하는 데는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우리의 환경부에 해당하는 북한의 국토환경보호성이 폐비닐 20만t 1차 도입과 내가 설계한 유화설비 공장 설립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정부 확인서를 발급했다는 점만 봐도 북한측의 관심도를 알 수 있다.


방북 이후 그런 사실들을 정부에 보고했나?


물론이다. 북한 당국의 관련 서류가 5월22일에야 베이징에 도착해 며칠 늦어지기는 했으나 5월24일 정부에 방북 보고서를 제출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인가?


관련 법규를 위반한 사실은 충분히 인정한다. 조만간 검찰에 출두해 조사에 응할 예정이다. 그동안 북측과의 교섭에 치중하느라 해외에 많이 나와 있었고 그러다 보니 관련 당국자들과 충분히 대화하지 못했던 점도 솔직히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진행해온 사업들이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금강산 사업 등 기존 채널들과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로가 많으면 많을수록 남북 관계는 그만큼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사업 외에도 북한측과 협의한 사업들이 아직 많이 살아 있다. 정부가 이들 사업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모든 협조를 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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