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와 함께 제삿밥 드시다니…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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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1천여 조선인 원혼, '일왕 위해 죽은 자' 안치소 떠돌아…
유족들 "민족적 인격권 침해당했다" 소송


올봄 일본에서 공개된 영화 〈호타루〉(반딧불이)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그린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육군 특별공격대 미쓰야마 소위는 오키나와로 출격하기 전 날 〈아리랑〉을 부르며 갖은 상념에 젖는다. 그는 1945년 5월11일 아침 출격했다가 비행기와 함께 산화했다.




패전 후 미쓰야마 소위를 비롯한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유품은 야스쿠니 신사의 유슈칸(遊就館·전승기념관) 2층에 전시되었다. 그런데 주변의 수소문으로 미쓰야마가 경남 사천군 서포면 출신 탁경현(卓庚鉉)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야스쿠니 신사에 위패가 안치된 한반도 출신 전몰자는 2만1천1백81명에 이른다. 주로 태평양전쟁 때 군인·군속으로 끌려가 희생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탁씨와 같이 가미카제 특공대에 자원 입대했다가 희생된 사람, 일본 패전 후 포로 학대 따위 이유로 B·C급 전범으로 처형된 사람이 섞여 있어 야스쿠니 신사의 한국인 위패 안치 문제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현재 위패가 2백46만여 개 안치되어 있다. 메이지 유신 전후의 내란으로 희생된 사람을 비롯해서 청일전쟁·러일전쟁·중일전쟁·태평양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이다. 태평양전쟁에서 희생된 사람이 2백12만 여 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일본, 조선인 위패 안치 사실 숨겨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合祀)되어 제신(祭神)이 되려면 일왕을 위해 전사했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패전 후 후생성은 한국·타이완 출신 전몰자 5만여 명의 명단을 일본인 전몰자와 함께 야스쿠니 신사측에 통보했다. 야스쿠니 신사 관계자는 후생성의 통보를 받고 당시 관례대로 위패를 안치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생성은 한국인 유족에게 전사 통지를 하지 않았고,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인 유족에게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인 유족에게 지급한 연금 등을 한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야스쿠니 신사에 한국인 전몰자가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78년께이다. 그 후 일본 정부가 1991년에 보내 온 태평양전쟁 사망자 명부에서 합사된 사람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6월29일 태평양전쟁피해보상추진협의회 소속 유족 55명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도쿄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유족들은 사망자들이 본인 의사에 반해 일본의 침략 전쟁에 참전했는데도 마치 일왕에게 충성을 바치려다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어 민족적인 인격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또 지난 7월16일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에게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자신들의 부모 위패를 반환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다수의 일본인 위패도 안치되어 있다. '러일전쟁과 한국 진압' 때 사망한 것으로 분류된 이들은 약 8만8천명이다. 대다수 한국인 희생자들을 그런 일본인들과 함께 합사해 제신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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