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의 폭력 시위는 조작됐다"
  • 프랑크푸르트·허 광 편집위원 ()
  • 승인 2001.08.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세계화 운동에 정체불명 집단 가담…
"음모 드러나자 시위대 본부 초토화"


일요일 새벽, (제노바에서) 그 현장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내 말을 믿지 못할 것이다.' 지난 7월23일 (월요일) 이탈리아 신문 〈레푸블리카〉의 첫 머리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일요일이라면 G8 정상회담도 끝나고 도시도 정적에 잠긴 때인데 어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장소는 '제노바 사회 포럼' 본부. 사회 포럼은 G8 정상회담 중에 '반세계화 운동'에 참여한 사회운동 조직의 협의기구이다. 여기에 참여한 인물들은 무려 20만∼30만 명이 참가했던 시위에 만족하며 잠에 빠졌다. 바로 이 순간, 경찰·특수부대 요원 천여 명이 습격했다. 두 시간에 걸친 기습 작전을 〈레푸블리카〉는 이렇게 전했다.


'헬기가 하늘에서 조명을 비추고 장갑차가 엄호하는 가운데 건물 유리창이 깨지고 비명이 계속 울렸다. 들것에 실려 나오는 부상자만 30명이 넘었다. 첫 번째 들것에는 의식을 잃은 듯한 소녀가 머리가 깨진 채 묶여 있었다. 들것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핏물이 떨어졌다. 어느 들것에는 하얀 천이 덮여 있어 부상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요원 4 명이 큰 부대를 들고 나올 때는 주변에서 시체라고 수근대기도 했다. 아직도 온기가 남은 침낭이 널려 있는 텅빈 건물 바닥 곳곳에는 핏자국이 진했다. 계단 위에서 바닥 구석까지 한 줄기 붉은 띠가 그려져 있다. 누군가 머리가 깨진 채 굴러 떨어진 것 같다. 어느 방문 앞에는 기타 악보가 핏물에 젖어 있었다.'


이 날 체포된 사람은 2백여 명, '두 다리로 걸어 나온' 사람들 중 일부는 군대 막사로 끌려가 혹독한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신문 〈디 벨트〉 7월27일자에서 피해자들은 이렇게 증언했다. '특수부대 요원들은 '비바 피노체트'(피노체트 만세)라고 외치며 구타했다. 나는 다리가 부러졌다. 그들은 어느 프랑스 사람을 담뱃불로 지졌다. 나머지 사람들은 벽에다 세워놓고 타격을 가해 벽이 피로 물들었다. 계속 토하고 있던 어느 여자는 피까지 토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요원들은 곤봉을 휘두르며 강간하겠다고 위협했다…. '비바 두체'(무솔리니 만세)라고 외친 그들은 환각 상태에 빠져 있었다.'


베일에 싸인 '복면 집단' 블랙블록




체포된 사람들은 7월25일 대부분 석방되었다. 그러나 '사회 포럼'에 따르면 체포 현장에서 중태에 빠져 아직도 병원에 있는 환자를 빼고도 아예 행방 불명인 사람이 20명을 넘는다.


이 사건을 저지른 난동자들은 과연 무엇을 노린 것일까? 피해자들의 입을 영원히 막지 않고서는 이 사건에 책임을 지게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기습 작전이 폭력 시위범들의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몇 년 전부터 반세계화 시위에는 어김 없이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나 '블랙 블록'(검은 무리)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있다. 흔히 폭력 시위를 선동하는 무정부주의자들로 알려진 이들은 제노바 시위에도 천여 명이 참가했다고 보도되었다.


이탈리아 당국은 시위대가 극렬한 파괴 활동을 벌여 6백억원의 재산 피해가 생겼는데, 사회 포럼이 바로 블랙블록과 손을 잡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증거로 현장에서 압수했다는 쇠파이프와 망치는 학교 옆 공사판에 널려 있었다. 이것만으로 사회 포럼을 폭력범으로 몰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사회 포럼은 G8 회의를 너무나 '효과적'으로 방해해 보복당한 것일까?


사회포럼은 그들 자신도 놀랄 만큼 동원력을 과시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회의 장소 주변 4백∼5백m를 시위 금지 구역으로 묶어 방어선을 쳤고, 그것도 못미더워 협상 장소를 유람선으로 옮겼다. 이런 회의를 계속 열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과, 다음부터는 노조 대표를 초대하겠다는 유화론이 G8 내부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반면 사회 포럼은 반세계화에 호응하는 국제 운동 조직들을 효과적으로 묶었다. 시위 전술에 대해서는 누구나 호응할 수 있도록 마지막 결정까지 반드시 공개 토론을 거친다는 원칙을 지켰고, 그 결과 평화 시위를 통해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한다는 전술도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G8 회의 첫날, 시위 대열의 선두에 섰던 청년이 총격을 받아 사망한 것은 바로 경찰 저지선이 뚫리는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가스총을 쏘는 경찰차에 맞서 소화기를 들고 달려나가던 이 청년은 저지선 2∼3m 앞에서 총격을 받아 쓰러진 후 돌진해 오는 경찰차에 깔렸다.


한 청년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탈리아 당국과 사회 포럼은 팽팽하게 맞섰다. 사회 포럼은 이 사건을 경찰의 도발이라고 보고 발포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요구했다. 벨루스코니 총리는 '불행한 일이지만 피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맞섰다. 책임져야 할 쪽은 폭력 시위를 벌인 사회 포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의 사건 해석에 의문을 던지는 정보가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금요일 오전, 블랙블록 단원들이 몇 시간 동안이나 거리를 활보하며 폭력을 휘둘렀다, 그들의 난동으로 은행이나 상점이 불길에 휩싸여도 경찰은 보고만 있었다." 이런 정보를 확인이나 하듯, 시위 행렬이 시내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화염으로 뒤덮여 있었고 경찰은 이때부터 가스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 후 블랙블록의 정체를 밝히는 새 정보가 속속 떠올랐다.


"시위대에 네오 나치들도 섞여 있었다"


'블랙블록이 경찰과 만나 정보를 주고받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시위 행렬이 경찰의 습격을 받아 흩어질 때 시위대를 체포했다' '그 속에는 네오 나치들도 섞여 있다.' 이런 정보가 사회 포럼을 지원하는 인터넷 유럽신문(www.indymedia.org)을 통해 전세계로 알려질 때마다 벨루스코니가 내세우는 공식은 여지 없이 흔들렸다. 사회 포럼측은 반세계화 운동을 분열시켜 저지하려는 음모가 드러나자 이 음모를 추적한 사회 포럼의 정보를 압수하는 작전이 벌어졌다고 본다. 그러나 그 음모를 폭로할 결정적인 정보는 여전히 안전한 곳에 보관되어 있으며 곧 검찰에 전달될 것이라고 한다.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는 '지금까지의 정보로 미루어 벨루스코니가 내전에 버금가는 정세를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주장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 포럼을 폭도로 낙인 찍고 반세계화 운동에 동조하는 야당도 약화시키려는 이중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G8 회의 선언문에는 '세계화 비판자들과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며 '평화적인 시위를 보호한다'는 구절이 있다. 그들이 제노바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의 진상을 밝혀 내지 않는다면 이 구절은 그들의 이중성을 입증하는 사례가 될 뿐이다. 올해는 유람선, 내년에는 로키산맥. 쫓겨 다니듯이 회의 장소를 바꾸어가는 G8 회의, 그들이 마음 놓고 만날 곳은 어디인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