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보고 뽕도 딴' 장쩌민 방북 외교 쇼
  • 베이징·주장환 통신원 ()
  • 승인 2001.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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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방문으로 양국 관계 회복·개인 위상 강화 꾀해…
"퇴임 이후 겨냥, 국제 지도자 변신 첫발"
9월3일부터 5일까지 100명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공식 친선 방문'한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장쩌민(江澤民)이 귀국했다. 1990년 3월 총서기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지 11년 만의 일이다. 그의 이번 방북은 지난해 5월과 올해 1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데 답방하는 형식이었다. 지난 8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를 통해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과 같은 '역사적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장 총서기는 현재 자신의 정치 역정 중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가 이번 방북을 계기로 국내를 '완전' 평정하고, 총서기와 국가주석 직 사퇴 이후를 고려한 '국제적 지도자'로서 본격적 활동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베이징(北京) 외교가에 나돌기도 했다.




언론은 장 총서기가 방문하기 전부터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특별하다고 강조하는 기획 보도를 내보내 분위기를 띄웠다. 관영 신화(新華) 통신은 방문 4일 전인 8월31일부터 북한 관련 기사를 계속 실었다. 특히 '북한과 중국의 관계' 기사에서는 중국의 역대 지도자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여러 차례 상호 방문해 양국 관계가 긴밀하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 9월2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기획 기사에서 한국전쟁 때 중국 인민 의용군과 북한군이 같이 싸운 것을 기념해 평양시 순안구에 세운 '저안(澤菴) 북·중 우호 합작 농장'을 집중 소개하면서, 양국이 '혈맹' 관계임을 부각했다.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를 등에 업고, 9월3일 오전 북한에 도착한 장 총서기는 '이번 방문이 양국의 공동 번영과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는 의례적인 인사 외에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외교 메시지를 담은 도착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 따라 장 총서기는 두 가지 방향, 즉 양국 공동 관심사와 주변국 문제를 북한 지도부와 협의했다. 우선 장 총서기는 도착 직후인 9월3일 오후 쌀을 비롯한 양곡·석유·화학 비료 무상 지원과 경제 협력을 약속했다. 중국은 실무 협의에서 식량 20만t과 디젤유 3만t을 북한에 제공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무상 원조·경제 협력' 선물 안겨


무상 원조와 경제 협력이라는 선물 꾸러미를 안겨주고, 장 총서기는 양국과 관련된 국제 현안을 김위원장과 논의했는데 상당한 소득이 있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3일 오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김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장 총서기는 남북한 관계 개선 및 북·미, 북·일, 북·유럽연합(EU) 관계 개선을 촉구한 것으로 신화 통신은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위원장은 '정치 경제 등 각 영역에서 북·중 우호 협력 관계를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북·중 양국의 이익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적극적인 공헌'이라고 화답했다. 그리고 타이완이 중국의 일부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며, 장 총서기가 최근 들어 제창한 통치 이념인 '3개 대표론'을 높게 평가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장 총서기는 김위원장이 '3개 대표론'을 지지한 것에 크게 흡족해 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김위원장은 1990년대 초 중국의 개혁 개방을 '수정주의'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적이 있다.


9월4일 오전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위원장은 장 총서기의 위상을 높여 주기라도 하려는 듯, 미사일 발사 실험 유예 방침을 천명했다. 이어 열린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는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또 우호적인 분위기 덕분인지 장 총서기는 전날 미국 등 서방 세계와 관계를 개선하라고 촉구한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관계 정상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장 총서기는 만수대 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등 북한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 6월 남북한 쌍방은 한반도 분단 후 최초로 정상회담을 개최해 새로운 국면을 창조했다. 이는 한반도 남북 쌍방 인민의 공동 소망과 이 지역 각국 인민의 근본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며,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유리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는 간접적으로 김위원장에게 한국 답방과 남북 대화 조기 재개를 촉구한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해석했다. 중국 외교부 주방자오(朱邦造) 수석 대변인도 이 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남북 대화가 조기에 재개되기를 희망한다"라고 장 총서기의 발언을 뒷받침했다.


4일 밤 양국 정상은 10만 명이 펼친 대집단 체조와 '백전백승 조선노동당' 예술 공연을 관람한 뒤 예정에도 없던 비공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두 정상은 비교적 자유롭게 상호 관심사인 국제 외교와 개혁 개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문 마지막 날인 5일에도, 김위원장은 장 총서기와 비공개 회담을 가졌으며, 직접 공항까지 배웅했다. 장 총서기는 매일같이 숙소로 찾아온 김위원장에 대해 매우 깊은 호감을 표시했으며, '국제 정치 감각이 있고, 다정다감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고 알려진다.


장 총서기 일행의 2박3일 북한 방문에 대해 〈런민르바오(人民日報)〉는 9월6일자 사설에서 '우의와 평화를 위한 여정'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평화와 안정과 공동 번영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장 총서기가 매우 고무되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베이징 외교가 일부에서는 그 흔한 공동성명이나 그 밖에 눈에 보이는 성과가 별로 없었다는 점을 들어 이번 회담의 성과를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 총서기가 이번 방북을 통해 '북·중 우의 회복'과 '장 총서기의 국제 위상 제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를 거두려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1992년 8월 한·중 수교 이후 처음 이루어진 이번 장 총서기의 방북을 계기로 양국은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완전 관계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김위원장이 '3개 대표론'을 긍정 평가한 것이 그 대표적인 증거이다. 이는 또 북한이 개혁 개방의 길로 완전히 방향을 정했음을 의미한다고 소식통들은 분석했다.


이번 방북으로 중국과 북한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서로 과거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끈끈한 우의를 공유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로써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강화하게 되었으며, 북한은 미국과 본격적으로 협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중국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얻게 되었다.


이번 방북을 통해 장 총서기는 국제 사회에 자신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인물인지 과시하려는 듯했고,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현재 국내에서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독주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제 정치 무대에서도 화려한 조명을 받고 싶어했던 것 같다.


'북한 갔다 오면 실각' 징크스 일축


그는 화궈펑(華國鋒)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즈양(趙紫陽) 양상쿤(瘍尙昆) 등 역대 지도자들의 사례에서 유래한 '북한에 갔다 오면 실각한다'는 베이징 정계의 징크스를 일축했다. 게다가 차기 권력 구도 재편을 논의할 15기 6중 전회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방북을 강행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해내지 못한, 세계에서 몇 안 남은 '정통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을 포용해 관계 진전을 이루어 국제적 지도자로 검증 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총서기와 국가 주석 직을 내놓는 2003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국제 업무에 치중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이라고 소식통은 풀이했다.


또 이번 방북을 계기로 차세대 트로이카 중의 하나인 쩡칭훙(曾慶紅) 역시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분석한다. 장 총서기의 오른팔이자 당 조직부장인 그는 지난해 북·중 우호협력협정 조인 40주년과 '캉메이위안차오(抗美援朝) 출정' 50주년 조직 사업을 도맡았고, 북한을 직접 방문해 북·중 관계 진전에 진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중국 언론은 장 총서기가 환하게 웃는 얼굴을 자주 내보낸다. 이번 방북 이후에도 그는 크게 웃었다. 특히 북한측의 환대에 "11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세계도 변하고 중국 국내 정세도 변했건만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은 중·북 우의뿐이다"라며 감격했다.


그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처럼 성공적으로 국제 지도자로서 떠오를 수 있는가 없는가는, 어느 정도는 김위원장이 어떤 행보를 하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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