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플레이' 노린 미국 언론사 테러
  • 김은남 기자 (ken@e-sisa.co.kr)
  • 승인 2001.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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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분위기 조성 '효과 만점'…인종 편견 등 원한 폭발
미국 생물 화학 테러의 첫 번째 희생자는 플로리다 주 소재 아메리칸 미디어(AMI)가 발행하는 타블로이드판 신문 〈더 선〉의 사진 편집인 보브 스티븐슨이었다. 탄저균 감염이 확인된 두 번째 희생자는 생후 7개월된 영아로, 미국 ABC 방송 프로듀서의 아들이었다. 이어 NBC와 CBS 방송사를 대표하는 인기 앵커 톰 브로커와 댄 래더의 비서가 탄저병 환자로 잇달아 판명되었다. 10월18일 현재 탄저균 감염이 확인된 환자는 모두 6명. 이 중 우편 배달원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언론계 종사자이다.




언론사가 테러의 직접적인 표적이 된 것은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언론사라는 상징성 때문에 1차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뉴욕에 본부를 둔 언론인보호위원회(CPJ)의 앤 쿠퍼 집행이사는 이번 테러가 미국 언론을 겨냥한 전례 없는 공격이라며, 누군가 언론을 이용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언론사를 타격한 효과는 상당했다.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가 된 미국 언론은 생물 화학 테러 사태를 날마다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자국민, 나아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심리적 공황까지 불러일으켰다. 탄저균으로 의심되는 흰색 가루를 배달받았던 〈뉴욕 타임스〉 중동 전문 기자 주디스 밀러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탄저균 테러의 배후이건, 그들은 값싼 비용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가 언론을 적으로 돌리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크다. 테러 집단 또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도시 게릴라전의 대부로 알려진 브라질의 마리겔라는, 미디어와 테러리스트가 본능적인 상호 의존성과 공생 관계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테러리즘과 미디어〉). 테러리스트는 미디어를 이용해 자신의 존재와 대의 명분을 전달하고자 한다. 미디어는 그 대가로 극적이고 스펙터클한 화면을 얻는다. '가장 비참한 유혈극을 만드는 자가 가장 큰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아이러니는 지난 9·11 뉴욕 대참사에서도 어김없이 재연되었다.


그런데 이번 테러범들은 공생의 불문율을 깨뜨려 버렸다. 이번 테러가 미국의 거대 언론을 응징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일부 언론은 '문화 테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미국 언론에 대한 이슬람권의 불만은 심각한 수준이다. 가까이는 이번 테러 사태에 대한 보도부터가 그랬다. 세계무역센터가 공격을 받은 직후 미국 언론들은 확실한 물증도 없는 상태에서 이슬람권을 범죄 집단으로 지목하며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여론으로 압박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물 화학 테러가 터진 직후 〈월 스트리트 저널〉은 뚜렷한 물증 없이 이라크가 탄저균을 생산·공급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연방 수사당국의 조사 결과 그럴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를 돌아보자면, 미국 언론에 대한 이슬람권의 불신이 심해진 결정적인 계기는 1990년에 일어난 페르시아 만 전쟁이었다. '전세계에 생중계된 최초의 전쟁'이었던 이 전쟁에서 미국 언론들은 전쟁을 '쇼'로 만들어 버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한 치 오차 없이 목표를 정확하게 명중시킨다는 크루즈 미사일의 위용에 시청자들이 넋이 나가 있는 동안 언론은 다음과 같은 진실들을 은폐했다(〈이미지의 승리:페르시아 만의 미디어 전쟁〉).


△크루즈 미사일의 단지 8%만이 목표를 명중시켰다. △이라크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사용된 것보다도 더 많은 폭탄에 의해 융단 폭격을 당했다. △이라크의 전체 사상자는 25만명에 달했다. △연합군은 퇴각하는 이라크 군인을 무참히 살육했다.


이는 상당 부분 군 당국의 보도 통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정부의 검열을 받아가며 기사를 송고했다고 CNN의 피터 아넷 기자가 비난받았던 것과 달리 연합군의 뉴스 조작 내지 왜곡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국내에 번역·소개된 〈글로벌 텔레비전〉의 저자 크리스 바커(호주 울런 공대 교수)는, 여기에 서방 언론인의 문화적 편견이 개입해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이 보도 통제를 받아들이며 군 당국이나 정부와 담합한 것은, 궁극적으로 언론이 이 전쟁을 지지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이번에도 미국의 주요 방송들은 백악관의 요청을 받아들여 오사마 빈 라덴의 메시지를 생방송하지 않기로 하는 등 정부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언론 자본의 핵심부에 유태인이 있다"


반 이슬람적인 보도 태도는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1995년 오클라호마 시에서 1백66명이 사망한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나, 그 이듬해 뉴욕∼파리를 운항하는 TWA 여객기가 폭발했을 때 미국 언론은 즉각 이슬람 단체를 주요 용의자로 지목했다. 조사 결과 오클라호마 사건의 진범은 극우파 백인이었고, 여객기 폭발은 기계 결함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초국적 매체들은 전세계 매체 시장의 60% 이상을 독점하는 막강한 전파력을 기반으로, 이같은 이데올로기적·인종적 편견을 전세계에 확산했다.


김승수 교수(전북대·신문방송학)는, 미국 언론이 이렇게 편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 소유 구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언론의 상당수를 금융·군수·석유 자본이 지배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JP 모건·록펠러·뒤퐁 등은 디즈니·ABC·CBS·타임워너 같은 글로벌 매체의 지분을 일정하게 소유하고 있다. 이번에 탄저균 테러를 당한 NBC의 경우 미국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매체로 꼽히는데, 이 방송사의 배후에는 제너럴 일렉트릭이 있다.


이들 자본은 정부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인사를 간부로 채용하고, 이들을 자기가 소유한 언론사에 겸직 이사로 파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초국적 기업체인 엑슨의 이사이면서 〈시카고 트리뷴〉 〈LA 타임스〉 등을 발행하는 트리뷴 컴퍼니의 이사를 겸직한 경력이 있다. 상원 군사위원장을 지낸 전 민주당 상원의원 샘 넌은 거대 석유 회사인 텍사코 이사인 동시에 NBC 이사이다.


더욱이 이들 자본의 핵심부에는 유태인이 있다는 것이 김승수 교수의 지적이다. 유태계 자본과 밀접하게 연관된 이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상 언론이 반 이슬람·호전 성향을 띠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번 테러는 미국 언론 내부에 '치명적인 약점'이 숨겨져 있었음을 폭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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